<최재천의 공부> 펴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사회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행동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68)가 최근 <최재천의 공부>(김영사)를 펴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교육개혁을 해야 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주장을 담은 책이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가 묻고 최재천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 책에서 최 교수는 ‘국영수’로 대표되는 입시공부를 과감히 깨부수자고 말한다. 고교 때까지는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자는, 가히 ‘혁명적’인 주장을 펼친다. 4차 산업시대에 필요한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란다. 그는 토론교육과 환경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난 5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주입식으로 아이를 가르쳐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세상을 보고 습득하도록 어른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바른 교육”이라고 말했다.
-생태학자가 왜 공부에 대한 책을 냈습니까.
“10년 전부터 생각한 일이에요. 저는 대학(서울대 동물학과) 시절 공부를 안 했어요.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유신체제와 이에 맞서는 학생 시위로) 휴교하고 탱크가 학교에 들어오고…. 그렇게 배운 것도, 공부한 것도 없이 어쩌다 대학교수가 됐고, 지금은 과분하게 석학 소리까지 듣고 있어요.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그 옛날 저보다 10배, 100배 열심히 해요. 그런데 자꾸 미래가 없다고 해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교육시스템이 문제죠. 그런데 쓸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왜요.
“너무 문제가 커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암담했으니까요. 교육의 문제를 극적으로 확인시켜준 게 기획재정부 요청으로 제가 2018년 초부터 2020년 중반기까지 제4기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으면서 겪은 일이에요. 사회 각계 리더 20명과 매달 한 번씩 모여 ‘10~20년 후 우리 아이들이 사는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어떤 주제를 놓고 시작해도 끝에 가면 반드시 ‘교육이 문제’라는 말로 귀결됐어요. 그만큼 심각성이 크다는 거죠.”
-문제의 핵심이 뭐라고 보나요.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3.5세(남자 80.5세·여자 86.5세)예요. 유치원부터 따지면 교육에 쏟아붓는 시간이 약 20년이에요. 이게 말이 되나요? 인생의 4분의 1을 과열 경쟁 속에 희생과 투자만 하는 거잖아요.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아이는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쳐요. 살자고 하는 공부인데, 주객이 전도된 거죠. 게다가 지금 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 양성과는 거리가 멀어요. 현 교육시스템을 완전히 부숴버려도 잘못되지 않을 것으로 저는 확신해요.”
그는 8년 전쯤 하버드대 과학센터 카페에서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뒤에 앉은 한 무리의 학생 중 한명이 ‘학교를 언제쯤 때려치울지 고민 중’이라고 말하자, 친구들이 맞장구를 쳤다.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 대학에 입학했으면서 왜 저런 생각을 할까, 하고 처음에는 놀랐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른 하버드대 학생들과도 얘기를 나눠본 결과, 이해가 됐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모두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학력이 모든 것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오래전 지났다. ‘창의적 실력’이 중요한 시대다.
-그러면 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교육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국가교육위원회가 7월에 출범하잖아요. 지금 고등학교에선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고 쓸데없는 것을 반복 훈련하느라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어요. 그런데 체조 선수처럼 평행봉에서 한번 삐끗하면, 즉 수능에서 한 문제만 실수하면 좋은 대학에 못 가요. 인간의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가 10대 후반이에요. 그 시기를 창의적 일이 아니라 똑같은 것을 반복해 외우며 보내고 있어요. 너무 억울한 일이에요. 정말 꼭 배워야 하는 게 뭔지 전문가들이 논의를 통해 추려줬으면 해요. 아이들이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로, 진짜 미니멈(최소)하게요.”
-국가교육위원회가 그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거로군요.
“솔직히 위원회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아요. 상상해보면 서울대 교육학과 나온 어느 선생님이 전체를 총괄하고 교육 전문가라는 분들이 모이겠죠. 그러면 과연 그 위원회가 교육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싶거든요. 그래도 그 안에 소위원회가 여러개 만들어질 텐데, 그중 한곳에서 이 작업을 해줬으면 해요.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추려주고, 나머지는 학생이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맘껏 경험하게 하면 좋겠어요. 4차 산업시대에 성공한 젊은이들은 전부 그런 사람들이에요.”
-교육의 본보기가 될 만한 나라가 있습니까.
“핀란드, 이스라엘 등 우리가 교육시스템을 배우려는 나라가 있긴 하지만 그들조차 잘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교육을 배우라고 했잖아요. 한국 교육이 엉망이라는 것을 잘 알 텐데, 참 얄밉더라고요. 한국을 추켜줘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여하튼 저는 교육시스템을 제대로 바꾸면 우리 아이들이 굉장히 탁월한 퍼포먼스를 할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요. BTS, 손흥민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듯이요.”
-어느 국가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우리가 해보자는 건데, 서열이 매겨진 대학 진학을 앞둔 입장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또 대학은 학생을 어떻게 변별해 선발할 수 있을까요.
“20년 전부터 제 수업에선 학생들이 시험을 안 봐요. 대신 10여가지, 그야말로 온갖 것으로 평가해요. 과정을 무시한 채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물론 학생들 간에도 평가하게 해요.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게 잘못된 평가방식이라면 학생 중 누군가 저를 고발하든, 대들든 할 텐데 그런 일이 없었어요(웃음). 저는 고등학교에 가서 강의할 때면 ‘대학에 꼭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해왔어요. 다만 일단 대학 문턱을 넘은 학생들은 성실과 지식을 채울 수 있도록 양적으로라도, 공부를 많이 시키는 틀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면, 학교폭력이나 왕따 등의 문제도 줄어들까요.
“어디서 읽은 얘기인데요. 인디언 보호구역에 백인 선생님이 부임해 오늘 시험이다, 했더니 아이들이 둥그렇게 둘러앉더래요. 그래서 ‘이놈들아, 시험이라는데 붙어 있으면 어떻게 하니? 떨어져 앉아’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어, 우리는 어른들한테 어려운 문제는 항상 같이하라고 배웠는데요?’라고 하더랍니다. 인류가 성공한 건 어려운 일을 함께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사회에 나가서도 함께 일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교육은 철저히 각개전투만 가르쳐요.”
-해결 방법은요.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제 수업 과제의 절반은 학생 혼자서, 나머지 절반은 학생들이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내게 하고 그걸 성적으로 매겨요. 협업 과제를 위해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위원회를 만들고 캠페인도 해요. 이런 과제를 내주는 건 내 주변 사람들을 짓누르고 내가 잘되는 게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예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이 부각되면서 진화에 대한 오해가 생겼지만 다윈 이론의 핵심은 상대성이에요.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적응을 잘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설명했어요.”
그는 <최재천의 공부> 서문에서 “촛불집회를 하나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 “이 땅에서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을 모두 불러모아” 촛불을 들고 이렇게 선창하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 이 순간부터 우리 아이들을 입시학원에 보내지 맙시다”, “이 순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즐길 권리를 되찾아줍시다”, “이 순간부터 정상적인 가족생활을 누립시다.”
-촛불집회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몹시 이상적인 주장이죠. 사교육을 없애자는 건가요.
“사교육은 인류 역사 내내 존재했기 때문에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다만 공교육을 완벽하게 키우면 사교육은 조력 역할만 하게 되겠죠. 정부는 교육에 투자하는 예산만은 아끼지 말아야 해요. 공부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는데, 어차피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어요. 약 20명의 학생을 놓고 선생님 3명 달려들어 가르치면 좋겠어요. 제가 이 책보다 먼저 쓰려 한 책은 토론에 관한 거예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마지막 요소가 저는 토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이유에서요.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결과를 담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이 있어요. 그런데 우등생들의 답이 한결같더란 겁니다. 자기 생각을 집어넣으면 망한다, 철저히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쏟아내면 성적을 잘 받는다는 거예요. 가장 뼈아픈 대목이 뭔 줄 아세요? 이 학생들 모두가 스스로 창의적이지 않다고 답한 거예요. 서울대에서는 그런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는 거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런 학생들이 국제무대에서 경쟁이 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토론이 창의력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군요.
“미국의 대학은 거의 모든 수업이 토론으로 이뤄져요. 교육 내용은 교과서에 이미 다 있어요. 누구나 읽어야 하는 거죠. 그 외에 필요한 책들도 읽어야 하고요. 그런 다음 모여서 쌓은 지식을 다 꺼내놓고 자기 언어로 토론을 해야 집단지성이 생겨요. 미국·유럽의 교육은 다 그렇게 하는데 우리 대학만 여전히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받아적고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시험지에 적어내고 있어요. 창의성이 생길 리 만무하죠.”
-토론을 통한 합의가 보편적 문화가 되면 민도가 더 높아지고 민주주의도 더 성숙해지겠네요.
“그렇죠. 정치인들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토론하라고 하면 누가 옳으냐를 가리려고 싸움만 해요. 남의 이야기는 꼬투리 잡기 위한 것일 뿐, 자기 말만 죽어라 하고 쏟아내죠. 그건 토론이 아니에요. 토론의 역사는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해왔고,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Agora)’라는 광장에서 마음껏 토론한 후 합의를 이끌어냈어요. 한국이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대학은 물론 초·중·고에서도 보편화돼야 해요.”
-토론을 잘하는 방법은 뭘까요.
“토론을 잘하려면 말이 짜임새 있어야 하고 논리적 사고를 해야 하니 글쓰기 훈련이 돼 있어야 해요. 글을 잘 쓰려면 책 읽기가 필요하고요. 독서는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빡세게 해야 해요. 또 평소 관찰도 많이 해야 하고요.”
6월 5일은 환경의날이다. 최 교수는 기획재정부 요청으로 제4기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았을 때 “전국 모든 학교에 환경교사를 반드시 넣자”는 주장을 했다. 또 “환경을 연구할 수 있는 밑받침을 세우도록 환경과 자연과학 연구비를 따로 지원하자”는 요청도 했다. 당장 돈이 벌리는 연구에만 연구비가 집중되는 바람에 자연 분야 연구는 상대적으로 외면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아져 지금은 전체 연구비 예산의 10%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증명했듯, 국영수를 열심히 배우다가 바이러스에 걸려 죽는 세상에서 계속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환경교사 제도를 만들긴 했다고요.
“그랬지만 지금은 환경교사가 전국적으로 20명 남짓밖에 안 남아 있어요. 이를 복원해 한 학교에 한명씩 두자는 거죠. 환경 과목을 입시 과목에 넣는 것은 반대해요. 그러면 문제풀이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각 학교 교사 중 한명을 환경교사로 지정해 예산을 지원해주고 아이들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그 제안에 대해 정부 반응은 어땠습니까.
“(한숨을 쉬며) 얼마 후 전국 지자체 교육청에서 생태전환교육을 해달라는 강연 요청이 저한테 쇄도했어요. 엉뚱하게 생태전환교육 예산만 배정하고 관련 프로그램 개발 및 교사 훈련은 도외시하다 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난 거예요. 또 환경과 자연과학을 위한 독립된 연구비 책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반면 미국국립보건원은 130여년 동안 기초 과학 연구에 투자했어요. 중국도 이미 생태학 연구비를 따로 책정해 관리하고 있고요.”
화제를 바꿔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2020년 10월 해당 채널을 개설해 매주 한개씩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다루는 주제는 자연 생태계와 인간 생태계를 넘나든다. 5월 26일 현재 구독자 수는 26만명이다.
-유튜브 채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2013년에 제가 제인 구달 선생님과 함께 생명다양성재단이라는 공익재단을 설립했잖아요. 그런데 운영이 참 힘들더라고요. 월급을 제대로 못 주니까 열심히 같이하던 젊은 친구들이 많이 떠났어요. 남은 친구들은 월급의 절반만 받고 버티겠다고 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잖아요. 1년에 적어도 2억원은 있어야 공익재단을 운영할 수 있겠는데,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누군가 ‘유튜브를 해 그 수익으로 재단을 운영해보라’고 해 시작하게 된 거예요.”
-결과적으로 재단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나요.
“1년이 넘도록 구독자가 1만명도 안 됐어요. 6개월 전 어느날 빵 터지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라는 제목으로 출산문제를 거론한 게 폭발적 반응을 얻었어요(5월 26일 현재 해당 영상 조회수 136만회). 덩달아 다른 동영상들도 인기를 얻었고요. 지금은 제법 돈이 되고 있어요. 참 모를 일이다 싶은데 많이 배워요(웃음).”
그는 “공부가 재밌다”고 말했다. 또 “현재 학교 교육이 왜곡돼서이지, 공부는 원래 재밌는 것”이라고도 했다.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서 일한다는 그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매일 아침 연희동 집에서 학교 연구실까지 3.5㎞를 30분 내에 걷는다. 또 오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서너 시간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으로 사용한다. 이 시간만큼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관심 있는 자료도 찾아 읽는다. 일에 휘둘리지 않고 삶을 지키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한다. 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엎자며 내놓은 그의 여러 제언은 이 땅에선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는 실현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정책 입안자들과 학부모들이 충분히 귀 기울여 새길만 한, 의미 있는 이야기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