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이니 금지’해야 하나, ‘창작의 자유 침해’인가.
지난해 12월 18일 첫 전파를 탄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방영 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2월 29일 현재 34만명을 넘겼다. 뿐만 아니라 방영 첫날부터 사흘간 781건의 방송심의 민원이 접수됐다. 한 시민단체는 법원에 방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모두 민주화운동을 폄훼(역사 왜곡)하고 간첩과 안기부를 미화했다는 이유에서다.
유난히 잦았던 역사 왜곡 논란 광고와 협찬을 한 기업들은 자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자 줄줄이 협찬을 중단했다. 이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의 KBS <UHD 역사스페셜> 출연까지 반대하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설강화>는 안기부 요원에게 쫓기던 남파간첩 임수호(정해인 분)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한 여대생 은영로(지수 분)가 기숙사에 숨겨주면서 시작되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드라마·영화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유난히 잦았다.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방영된 tvN 드라마 <철인왕후>부터 3월 방송된 SBS <조선구마사>, 가을 개봉을 앞뒀던 중국영화 <1953 금성 대전투>(원제: 금강천) 그리고 이번엔 <설강화>까지.
이중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설정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방영 중단 청원이 오르는 등 반발이 거세자 기업들의 제작 지원·광고가 끊기고 배우들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결국 SBS는 방송 2회 만에 드라마를 폐지했다. 감독과 배우들도 사과해야 했다. 중국영화 <1953 금성 대전투>도 수입사가 사과문 발표와 함께 상영 계획을 철회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을 중공군 입장에서 다뤄 ‘중공군 미화·찬양 논란’이 일었다. 과거와 달리 역사 왜곡 문제가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집단행동을 통한 직접적인 압박과 철회로 이어진 것이다.
시대상이 담긴 문화콘텐츠가 제작되는 한, 역사 왜곡 논란과 논쟁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종의 ‘신문고’ 역할을 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비롯해 인터넷 댓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 개인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시민의 목소리는 더 크고 강해질 수밖에 없다. 긍정적·부정적 요소가 공존한다. <설강화>를 계기로 생산자와 수용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설강화> 논란과 관련해 전문가들의 견해는 크게 엇갈린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역사가 들어간 창작은 일정 부분 시대상에 따라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해방 후에도 득세한 친일파가 독립운동세력을 숙청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게 반공이었고, 이런 분위기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돼왔다”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도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1987년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간첩이 등장하는 <설강화>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구마사>와 <1953 금성 대전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방영·상영 철회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고 했다.
“예쁘게 꾸며서는 안 되는 사건”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드라마 일부만 보고 역사 왜곡을 논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면서도 “논란에 따른 제작진의 해명을 보면 역사 왜곡으로 드라마가 전개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 왜곡을 좁게 해석하면 역사와 다르게 그려내 직접적으로 왜곡하는 것만으로 볼 수 있지만, 넓게 해석하면 역사의 시대성을 배제하는 것도 간접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방영 중단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앞서 JTBC는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을 다루지 않으며,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 또한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설강화>는 현실의 많은 맥락을 차용하고, 가치 판단을 애매하게 뒤섞고, 권력자의 논리가 진실인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의 미학화 사례로, 세상에는 결코 예쁘게 꾸며서는 안 되는 사건이 있고, 서사를 주지 말아야 할 가해가 있다. 비극적인 시대상에 휘말린 청춘들의 사랑 하나를 표현하고자, 너무 많은 것을 오염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청자들이 <설강화>의 문제점을 영어로 번역해 알리고, ‘미화된 나치와 유대인 여성의 로맨스’라는 비유로 외국인의 이해를 도우며, 불매 리스트를 작성해 광고주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 “정치의 미학화에 대항하는 ‘예술의 정치화’”라고 평가했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드라마는 역사 왜곡의 요소를 분명히 갖고 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소비자들이 광고·협찬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를 통해 드라마 방영을 금지시켜야 하는가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설강화>는 의도적 역사 왜곡으로 보일 만큼 문제가 많기 때문에 방송사와 기업에 대한 압박은 계속돼야 한다”며 “그 결과로 <조선구마사> 사례처럼 여론에 대한 굴복이든 존중이든 방송사 스스로 작품을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방영 중지 압박은 폭력”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방영 중지 압박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설강화>를 보면서 작가가 역사의식이 결여돼 있고 접근 방식이 올드하며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져 흡입력이 약하다고 판단했다”고 운을 떼었다. 이어 “비평적으로 이 작품에 담긴 이념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논쟁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기업들이 줄줄이 사과와 함께 후원을 중단하게 하고 작품 자체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행위는 폭력이자 폭압이고 검열”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화운동이 군부독재의 폭력과 폭압을 항거를 통해 저지하고 자유를 쟁취하려는 행위였는데, 기업에 압력을 가하고 작품을 폐기하라고 압박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은 ‘절대 선’이라는 믿음과 ‘역사 왜곡은 아주 나쁜 것’이라는 전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청소년들과 외국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입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군대 내 폭력을 다룬 드라마 <D.P.>도 나오고 그와 반대되는 작품도 나온다. <설강화> 한 작품을 두고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민주화운동에 간첩이 잠입하는 설정은 왜 안 되나. 또 안기부 요원 한명이 정의로우면 안기부라는 기관 자체를 미화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런 논리라면 영화 <피아니스트>와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 집단 전체를 미화한 극악한 영화라 비난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졸지에 드라마 볼 기회를 빼앗긴 다른 시청자들의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라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창작자들은 자기검열을 강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미학적으로 치명적 결과를 낳게 된다”고 주장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시대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대중이 움직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사례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를 들었다. 이 영화는 ‘근친상간’을 소재로 했다. 전 평론가는 “당시 정치적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넘어갔지만 여론이 물고 늘어졌으면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평론가는 “<설강화> 등에 대해 논란이 이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방증이고 대중의 비판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설강화>는 계속 방영돼야 한다”고 했다. 표현의 다양성과 창작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깊어진 창작자들의 시름 창작자들의 시름은 더 깊다. <말아톤> 등을 연출한 정윤철 영화감독은 페이스북에 “소재가 기분 나쁘면 보지 않으면 될 것을 무조건 상영금지까지 간다면 앞으로 80년대 운동권 소재 영화 및 북한 간첩, 안기부 직원이 등장하는 영화는 기획 자체가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예술과 창작은 불가능한 상상을 가능하도록 해줘야만 한다”며 “전체를 보지도 않고 발상조차 아예 막고 그런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조장한다면 그것은 지금껏 창작자들이 온몸으로 싸워온 독재정권 및 꼰대주의 참담한 검열과 다를 바 없다”라고 했다.
주류언론의 게으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조선구마사>, <설강화> 등을 둘러싼 논란을 논쟁적 사안으로 인식하고 방송사를 비롯한 주류언론이 적극적으로 전문가를 섭외해 발언의 장을 마련해야 함에도 이를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구마사>, <설강화> 등의 논란에 대해 토론되지 않을 때 한 사회에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에 대해 주류언론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2020년 말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논란이 됐듯이 우리 사회는 이른바 도덕전쟁을 벌이며 사실에 대한 해석마저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을 펴는 이를 억눌러 말하지 못하게 만들기보다 토론과 논쟁을 통해 차이와 이해의 지점을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법원은 한 시민단체가 제기한 <설강화> 방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해 12월 29일 기각했다. “드라마가 일부 왜곡된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더라도 시청자가 맹목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방영 중지 압박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화운동이 군부독재의 폭력과 폭압을 항거를 통해 저지하고 자유를 쟁취하려는 행위였는데, 기업에 압력을 가하고 작품을 폐기하라고 압박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