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났는가?” 자막이 떠오른다. “윤리적 평가를 할 수 없는 게 바이러스이지만”, “혹자는 우리를 일깨우려는 신의 처분이라 믿는다.”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아룬다티 로이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컨버전스-위기 속의 용기>는 코로나19에 맞선 전 지구적 대응상황을 소개한다. 중국 우한의 봉쇄 시기, 거대 도시의 인적 없는 초현실적 풍경 속에서 자원봉사자는 의료진을 픽업하는 중이다. “2020년 1월 확진 9,896명×사망 213명.”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던 순간에도 세계 곳곳은 아직 평화롭고 마스크를 쓴 이는 드물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는 통념을 초월했다. “4월 확진 3,110,786명×사망 229,579명.” 이제 거리에서 사람이 픽픽 쓰러져 나간다. 영국 런던, 미국 마이애미, 브라질 상파울루, 이란 테헤란…. ‘대공포-팬데믹’의 현장 스케치가 시청자에게 전염돼온다.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게 확실해졌다.
“5월 확진 5,950,947명×사망 384,060명.” 바이러스 재난의 공포가 폭발하는 시기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참상 소개에서 조금씩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설전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던 세계보건기구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의 인터뷰 중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운 게 극단적 민족주의와 불평등, 가난’ 내용과 함께 영화 속 상황을 중계하던 이들 각자의 대응이 소개된다.
영국 무상의료체계 NHS 소속 병원 청소부로 일하던 시리아 난민 출신 다큐 감독은 청소부, 포터, 조리사 등 비정규직을 생명보험 혜택에서 제외하는 정부 조치에 반대하는 영상을 올린다. 반향을 일으키자 4시간 만에 정부는 적용범위에 포함시킨다. 미국 마이애미병원 의사는 노숙인 천막촌에 위생센터를 운영하며 샤워와 세면을 지원한다. 상파울루 ‘파벨라’ 주민은 빈민가가 응급지원에서 배제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시위를 계획한다. 코로나19는 갑자기 발생했지만, 전쟁이나 재난이 늘 사회에서 배제된 존재들에게 더 가혹했던 역사는 반복되는 중이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마이애미의 의사는 집 앞에서 경찰에게 흑인이란 이유로 강제 체포되고 폭행을 당한다. 모든 순간은 CCTV로 생생히 공개된다. 그리고 곧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한국에서의 동조 시위도 한컷 나온다). 노숙인 구호에 헌신하던 의사는 분노에 차 공권력의 어긋난 대응에 항의한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 또한 소개된다. 백신의 완성까지 예전에는 가장 빨랐던 게 4년 걸렸다는 설명과 함께 카메라는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이 주도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탄생 과정을 소개한다. 백신 제작도 문제지만 보급 또한 그 못지않은 난제라며 고민하는 전문가들의 풍경은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12월 확진 82,654,704명×사망 1,870,924명.” 숨 가쁜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세계 곳곳은 보이지 않는 적과 투쟁 중이다. 최전선에서 맞서는 의료진의 고난, 어느 병동엔 대부분 입원환자가 그 병원 의료진이라는 기막힌 초상. 하지만 퇴원하는 환자를 보는 병원 직원들의 뭉클한 표정으로 영화는 역병에 가려진 사회적 차별을 끄집어내는 임무를 완수한다. 바이러스는 불가항력이지만 불평등과 빈곤은 의지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며.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