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서 ‘들리지 않는 사람’과 ‘수화’를 이해하는 ‘입구’가 된다면 저자로서 기쁠 것이다.” 작가 마루야마 마사키는 데뷔작 <데프 보이스>에서 ‘작가의 말’을 빌려 자신의 바람을 이렇게 전했다. 그의 말대로 <데프 보이스>는 농인들의 문화와 고충, 그들의 내밀한 세계를 미스터리의 중심에 놓고 17년 간격으로 벌어진 두 살인사건의 진실을 좇는다. 농인 사회를 배경 삼아 면밀한 시선으로, 그것도 시시때때로 꽤 많은 정보를 동원하면서까지 전달하려는 것은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란 호칭이 아닌 ‘농인’과 ‘청인’이란 표현이 상징하는 바와도 정확히 맞닿는다. 농인이 스스로를 농인으로 일컫는 것은 들리진 않지만 말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에 대응하는 말로 단지 ‘들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청인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수화는 손으로 의사소통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국어, 일본어와 같은 또 다른 언어일 뿐이다.

<데프 보이스>의 표지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 황금가지
<데프 보이스>의 주인공 아라이 나오토는 오랫동안 근무하던 경찰 사무직을 그만둔 뒤 몸에 밴 수화 기술을 살려 수화통역사로 새 출발을 한다. 머지않아 아라이는 농인들 사이에서 호평받는데 그건 그가 청인임에도 ‘일본어대응수화’가 아닌 ‘일본수화’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선천적 농인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일본수화는 음성일본어 문법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언어체계가 있어 일본수화에 익숙한 농인이 일본어대응수화를 사용하려면 자연히 피로감이 따른다. 이는 아라이가 곧 법정통역까지 의뢰받아 17년 전 기억과 다시금 맞닥뜨리는 것이 우연인 듯 필연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사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는 은근한 ‘지연 효과’다. 청인인 아라이가 일본수화에 익숙한 것은 그가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즉 농인 부모의 청인 아이였기 때문이다. 경찰직을 쫓겨난 듯 그만둔 배경에는 경찰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임이 공개되며 주위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어두운 과거가 존재한다. 과거 농인이 얽힌 살인사건에 통역으로 나섰다 경찰의 나태한 수사에 무력감을 느꼈던 아라이가 용의자의 아이가 수화로 전달한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이란 말에 왜 그리 오래 얽매일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할 만하다.
농인의 언어나 문화가 낯선 탓에 그 체계를 설명하는 작품 고유의 태도는 이미 충분히 흥미롭다. 예컨대 고유명사를 수화언어로 표현하기 복잡해 가족 사이에서는 간단한 ‘홈 사인(home sign)’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의외의 사실인 동시에 중요한 진실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로도 활용된다. 여기에 농인에게 입술을 읽는 구화법을 강요하는 청인 사회의 크고 작은 편견 또한 곳곳에 드러나며 메시지는 한층 더 정련된다. 사건의 진실이 결국 농인을 향한 직간접적인 폭력으로 수렴하면서 참담한 기분이 쉬이 가시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작가 마루야마 마사키는 ‘장애인은 불쌍하다’, ‘그럼에도 노력하고 있다’라는 두가지 시선과 무관하면서도 훨씬 보편적인 갈등을 그리고자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도 좋은 ‘입구’가 되고 있다. 곧 그의 또 다른 바람대로 멋진 ‘출구’ 또한 반드시 낼 수 있을 것 같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