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미술 전시에 가보고 싶은 마음으로 방문할 때, 그냥 한 작품당 일단 3초씩 보라고 추천해요.” 국내 1호 도슨트인 김찬용 전시해설가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을 때 부담부터 버리라고 조언했다.
“한번 미술 전시에 가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을 때는 대단한 걸 느끼려 집중하지 말고 그냥 한 작품당 일단 3초씩 보라고 추천해요. 가볍게 산책하듯 지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어 이건 좀 궁금하네’ 하고 잠깐이라도 더 멈춰서게 되는 작품이 몇개 생기거든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관심 있는 장르를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국내 1호 전업 도슨트인 김찬용 전시해설가(38)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을 때 부담부터 버리라고 조언했다. 한여름에 접어들고 있는 시기,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관람객들이 미술작품에서 작지만 확실한 휴식과 치유를 기대하며 전시장으로 몰려드는 때다. 하지만 장구한 예술의 역사와 이른바 ‘관람매너’라는 장벽은 자칫 ‘이것도 모르면서 의미 있는 감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걱정을 불식시키며 예술작품과 관객 사이 문턱을 낮춰주는 일에 앞장서는 이들이 바로 도슨트다.
이름난 몇몇은 아이돌 수준의 인기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일정한 교육을 받거나 전문지식을 갖추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혹은 일을 뜻한다. 도슨트라는 직업명이 낯선 이들에게는 도슨트의 이름 역시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전시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 사이에선 김찬용 도슨트를 비롯해 몇몇 이름난 전시해설가들이 아이돌 수준의 인기를 이미 누리고 있다. 눈높이에 맞춘 해설과 함께 흥미를 끄는 작품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대형 전시일 경우 많게는 해설 1회당 100여명의 관람객들을 몰고 다닐 정도로 나름의 팬층도 확보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큐레이터나, 미술계 내부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평론을 주로 하는 미술평론가에 비해 도슨트가 보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 관람객들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역할은 도슨트의 몫이다. 특히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미술로 갈수록 사전에 미술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는 의미를 짧은 감상시간 안에 포착해 해설하는 도슨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현대미술은 오히려 이전 시대보다 더 자유롭고 대중적인 예술을 추구한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김찬용 도슨트는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솔직하게 느꼈을 때 난해하기도 하면서 일면 이상하다고도 느낀 그 느낌이 잘못된 게 아니”라며 “오히려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감상이 있다면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에 담긴 취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관객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 자체로 훌륭한 감상법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느낌이 가는 대로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꽂히는’ 작품 위주로 감상하는 방법도 있지만, 최소한의 미술사적 흐름을 알아두고 가면 더 다양한 면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는 달리 여러 미술관에서 도슨트 해설 프로그램을 전시의 필수요소로 인식하게 된 것이나, 한발 더 나아가 미술 애호가가 될 수 있도록 이해를 돕는 미술사 강좌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찬용 도슨트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여는 예술특강을 통해 인상주의 미술 이후 근·현대 미술사를 개괄하는 강의를 여는 등 국내 도슨트들이 예술교육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려는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더 많은 관객이 전시에 관심 갖게 순기능
이러한 국내 미술계의 움직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전시 해설을 두기 시작한 시점이 국내에서는 1995년 무렵부터였고, 당시 초기 도슨트 역할은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는 재능기부에 가까웠다. 전업으로 활동하는 도슨트만 따지면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니 바닥이 좁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산업 전반에서 저변이 넓어지면서 애호가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이 분야 역시 성장하는 추세다. 고흐와 모네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에 편중됐던 대중의 취향이 다양한 장르와 시대로 범위를 넓혀가면서 국내에서도 그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색다른 전시를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된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현재로서는 도슨트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전시는 대체로 대형 미술관을 중심으로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선보이는 대형 기획전시일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수요층이 확보된 전시일수록 해설 인력까지 보강해 더 많은 관람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 규모와 관계없이 일반 관객과 작품을 이어주는 도슨트만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미술계 내부의 목소리도 점차 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미술관 전시 기획자는 “대형 전시는 대부분 특정 장르나 사조에 해당하는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선보이거나 아예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틀어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입담 좋은 도슨트의 해설이 녹음된 오디오 가이드보다 관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때가 많다”며 “한 전시가 끝난 다음에도 다시 더 많은 관객이 전시에 관심을 갖게 하는 순기능이 크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