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은 스포티파이와 공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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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파이’가 국내 음원 시장에서 넷플릭스처럼 될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전 세계 구독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굳건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스포티파이도 전 세계에 3억4500만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확보하며 최대 음원 스트리밍 업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두 업체가 국내 시장에서 서 있는 자리는 사뭇 다르다. 넷플릭스는 국내 OTT 시장의 성장을 이끌며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를 굳혔고, 스포티파이는 불과 한달 전 국내 서비스를 시작해 경쟁이 치열한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서 아직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스포티파이 한국 서비스 화면 / 스포티파이 제공

스포티파이 한국 서비스 화면 / 스포티파이 제공

국내 시장에서의 성패만 놓고 보면 스포티파이에겐 아직 갈 길이 멀다. 음원 스트리밍 업계는 멜론과 지니뮤직, 플로까지 3강 구도가 형성돼 있고 벅스나 소리바다, 네이버 바이브 등 국내 업체와 먼저 국내 진출한 애플뮤직, 유튜브 뮤직 등 글로벌 업체까지 혼전을 벌이고 있다. 모바일인덱스 분석자료를 보면 스포티파이의 일간 사용자 점유율은 2월 말 기준 0.5%에 그쳤다. 1위 멜론(33.8%)과 2위 지니뮤직(17.0%)에 크게 못 미친다. 게다가 스포티파이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할 때 아이유와 임영웅 등 카카오엔터테인먼트(구 카카오M)가 유통하는 국내 가수들의 음원을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던 한계도 있었다.

카카오엔터와 글로벌 라이센싱 재계약

스포티파이는 국내 진출 이전부터 K팝에 큰 관심을 나타내며 자사의 주력 서비스 콘텐츠로 내세웠다. 그러나 국내 최대 음원 유통사인 카카오엔터와 음원 공급 계약을 맺지 못한 채 2월 2일 국내 서비스를 개시했고, 이어서 2월 28일로 만료되는 양측의 해외 라이센싱 계약도 갱신되지 않았다. 해외 스포티파이 이용자들이 3월 1일부터 카카오엔터가 유통하는 K팝 음원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사태는 3월 11일 양측이 국내 및 해외 음원 유통을 위한 계약을 맺으며 일단락됐다. 당초 카카오엔터의 모회사인 카카오가 국내 음원 스트리밍 업계 1위인 멜론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스포티파이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반영돼 음원 사용 협상이 순항할 수 없었을 것이란 업계 안팎의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양측이 글로벌 라이센싱 재계약에 합의하면서 각자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스포티파이는 카카오엔터 음원을 국내외에 유통하지 못하는 동안 이용자들의 불만도 샀지만 그만큼 주목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게다가 지구상의 모든 음원을 서비스한다는 지향을 실현했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었다.

업계 내부에선 카카오엔터 역시 협상에서 밀린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 세계 음원 스트리밍 시장 중 4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스포티파이를 통해 자사 음원이 유통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카카오엔터가 굴복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과거 애플뮤직이 국내 진출하던 당시에도 카카오엔터 등 국내 음원 유통사들은 음원 공급을 거부했으나 당시엔 애플뮤직이 제시한 계약 조건을 국내 음원 유통사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차이점이 있다. 때문에 양측의 계약 조건을 명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스포티파이가 음원 수익 중 카카오엔터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을 후하게 쳐줬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포티파이의 계약·수익 배분 방식이 국내 음원 스트리밍 업체들과는 다소 다른데, 어쨌든 스포티파이가 제시한 조건이 다른 국내 업체들보다 좋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64개국에 현지화된 K팝 제공

다만 스포티파이가 국내 시장에서 정상적인 서비스를 재개하고, 세계적으로도 K팝을 이용한 마케팅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그들의 모델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특히 스포티파이가 해외에서 광고를 듣는 대신 무료 음원 감상이 가능한 형태의 서비스로 이용자들을 모았지만, 국내에선 이런 방식의 무료 이용을 막아둔 상태다. 일정기간 무료체험 서비스 외엔 프리미엄 1인 청취 월 1만900원, 2인 청취 월 1만6350원(부가세 별도) 요금을 내야 해 다른 업체들보다 가격도 높은 편이다.

넷플릭스는 세계 각지의 현지 콘텐츠 제작업체들과 손을 잡으며 다양성과 주목성이란 두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이렇게 만든 독점 콘텐츠가 흥행하며 새로운 시장을 넓히는 주무기가 됐다. 그러나 스포티파이는 팟캐스트 등 음성 기반 콘텐츠를 한데 모아 제공하기도 하고, 이용자의 관심에 따라 장르와 음악인을 추천하는 특화된 서비스로 호평을 받고 있기는 해도 음악 콘텐츠를 자체 생산하는 시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넷플릭스와 달리 스포티파이는 별도의 레이블을 세우거나 하는 형태로 직접 음원 제작에 나선 것은 아니어서 차이가 난다”며 “국내 시장을 선점한 업체들이 각종 할인혜택과 함께 다양한 음악 관련 교양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후발주자가 격차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세계 1위 서비스 업체를 발판삼아 K팝이 좀더 도약할 수 있는 여지는 크다. 스포티파이는 2014년부터 K팝 음원 재생목록(허브 플레이리스트)을 이용자들에게 선보인 이래 K팝의 성장과 함께 자신들의 매출 역시 크게 늘려 왔다. 지난해 말 기준 스포티파이가 밝힌 K팝 이용자 청취 비중은 첫 서비스 당시인 2014년과 비교해 2000% 이상 증가했고, 총 스트리밍 시간 1800억분 돌파, 플레이리스트 추가 1억2000만회 이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세계 64개국에 현지화된 K팝 허브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스포티파이 코리아도 국내 음악 창작자들과 음악산업 관계자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및 시장분석 플랫폼을 제공해 K팝과의 공생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팟캐스트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국내 팟캐스트 콘텐츠를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한국만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까지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박상욱 매니징 디렉터는 “국내 서비스 수년 전부터 스포티파이는 이미 한국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음악이 전 세계에 소개될 수 있도록 가장 큰 글로벌 무대이자 파트너의 역할을 해왔다”며 “창작자에게는 더욱 강력한 성장 발판을 제공함으로써 국내 음악 시장의 동반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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