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추모 열기 속에 사인·자녀와 관련한 각종 루머 쏟아져
![[문화]마이클 잭슨 ‘신화’는 죽지 않는다](https://img.khan.co.kr/newsmaker/833/62_a.jpg)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전 세계적으로 각종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니고 있다. 6살 때 ‘잭슨파이브’로 데뷔한 이래 늘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의 주목을 받아온 그는 사망 후에도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 그리고 가슴 속에 여전히 맴돌고 있다.
그의 육신은 모든 작동을 멈췄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사인(死因)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또 세 자녀의 양육권에 대한 분쟁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2002년 그가 작성한 유언장이 발견돼 유산에 대한 분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유언장에서 마이클 잭슨은 5000억~6000억 원으로 알려진 자신의 전 재산을 ‘마이클 잭슨 가족신탁기금’에 맡겼다. 신탁기금에 맡겨질 마이클 잭슨의 재산 중 잭슨의 어머니 캐서린 잭슨은 재산의 40%를 갖게 되고, 마이클 조지프 잭슨 주니어(12), 패리스 마이클 캐서린(11), 프린스 마이클 잭슨 주니어(7) 세 자녀는 총 40%를 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20%는 어린이 자선단체에 보내진다. 유언장에서 마이클 잭슨은 세 자녀의 후견인으로 어머니 캐서린 잭슨을 지목했지만 잭슨의 두 번째 부인 데비 로우가 자신의 두 자녀에 대한 양육권을 갖겠다고 밝히면서 잭슨 부모와의 법정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두 자녀 양육권 법정공방 전망
마이클 잭슨의 돌연한 죽음이 알려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국은 추모의 열기로 뜨겁다. 필리핀의 한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추모 공연을 펼쳤는가 하면 프랑스에서는 수천 명이 잭슨의 트레이드마크인 ‘문 워크’ 댄스를 선보였다. 일본에서도 수백 명이 모여 촛불로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다. 잭슨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여러 명소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음반 판매량도 급증, 빌보드 차트 1위부터 9위까지 마이클 잭슨의 앨범들이 차지했다. 마이클 잭슨의 앨범 판매량 증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마이클 잭슨 추모 특별호를 6월 29일 발행했다. 타임이 특별호를 발행한 것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처음이다.
잭슨은 6월 25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사망한 후 두 차례나 부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경찰의 공식적 1차 부검 외에 유가족이 독자적으로 2차 부검을 독립적인 검시기관에 의뢰해 실시했기 때문이다. 잭슨의 사인을 둘러싸고 가족이 품고 있는 각종 의혹 탓이다. 지난 6월 27일 미국 ABC 방송은 사법당국 관련자를 인용해 “잭슨이 생전 진통제 옥시콘틴에 중독됐고 또 다른 진통제도 복용해왔다”고 보도했다. 또 “잭슨이 사망 1시간 전에 진통제 데메롤 주사를 맞았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가장 흔히 쓰이는 진통제인 옥시콘틴과 데메롤을 동시에 투약할 경우 호흡 정지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잭슨가의 변호인인 브라이언 옥스만의 말을 인용해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노래와 비틀즈 소유권(잭슨은 비틀즈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소니/ATV 뮤직 퍼블리싱 카탈로그 지분의 50%를 보유하고 있다)을 노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두려움 속에 떨었고, 이런 잭슨을 조종하기 위해 익명의 측근이 마이클을 계속 마약에 취해 있도록 했다는 사실을 잭슨의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잭슨은 다양한 종류의 강력 마취제를 복용했으며 대부분 마약은 그의 스태프와 비서들이 구해다준 것으로, 결국 마약이 잭슨을 죽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검 시 잭슨의 몸 속에서는 수십여 종의 알약이 나오고, 몸에는 진통제 주사 흔적으로 보이는 바늘상처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잭슨의 가족은 이와 관련한 사안들에 대해 LA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LA경찰의 요청으로 미국의 연방 마약수사국이 마이클 잭슨의 사망 수사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찰의 정확한 사인 발표는 독극물 검사 등의 결과가 나오는 5주 후에나 나올 예정이다.
앨범 7억5000만장 판매고 기록
마이클 잭슨이 세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는 주장도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잭슨의 피부과 전문의이자 잭슨의 전 부인인 데비 로우의 상사였던 아놀드 클라인이 장남 마이클과 딸 패리스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말이 돌고 있다. 그뿐 아니다. 잭슨의 장남 마이클과 딸 패리스의 생모로 알려진 데비 로우 역시 대리모였을 뿐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자 데비 로우가 발끈하고 나섰다. 최근 미국 NBC와 인터뷰에서 데비 로우는 “두 아이는 물론 대리모를 통해 얻은 것으로 알려진 막내까지 키울 용의가 있다”며 “내가 두 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임을 입증하기 위해 DNA 등 어떤 검사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문화]마이클 잭슨 ‘신화’는 죽지 않는다](https://img.khan.co.kr/newsmaker/833/62_d.jpg)
마이클 잭슨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주 게리시에서 평범한 노동자 가정인 잭슨 가(家)의 아홉 형제 중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6살 때인 1964년 형제들로 구성한 그룹 ‘잭슨파이브’의 리드보컬이 돼 일찌감치 천재성을 드러났다. 5년 후 잭슨파이브 소속으로 자신의 첫 번째이자 역사상 최연소 빌보드 1위 히트곡인 ‘아이 원트 유 백’(I Want You Back)을 발표했다. 1978년 스타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오프 더 월>(Off the Wall)을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했다. <오프 더 월>은 1000만 장 이상 팔렸다. 특히 1982년 낸 앨범 <스릴러>(Thriller)는 전 세계에 마이클 잭슨 돌풍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늑대로 변신하는 영상이 압권인 ‘스릴러’를 비롯해 이후 잭슨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안무 ‘문 워크’를 선보인 ‘빌리 진’,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대한 오마쥬 영상이 담긴 ‘비트 잇’(Beat It) 등이 포함된 앨범이다. 이중 ‘스릴러’는 발매 후 지금까지 1억400만 장 이상이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돼 있다. 마이클 잭슨은 생전에 그래미상을 13차례나 수상했고, 7억5000만 장에 이르는 전체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인연도 깊어 1996년 첫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1999년까지 4년간 매년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1990대 이후 잭슨은 아동성추행 혐의, 성형부작용 등 음악 외적인 일로 자주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고 같은 해 비슷한 혐의로 경찰에 또 체포되는 수난을 겪었다. 1994년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와 결혼하면서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19개월 만에 이혼했고, 이후 간호사 데비 로우와 재혼했으나 역시 파경을 맞았다. 아버지와 닮는 게 싫어 끊임없이 성형을 한 것으로 전해진 잭슨은 심각한 성형부작용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잇따른 소송으로 사망 직후 그에게 2000억 원의 빚만 남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AP통신은 각종 음반 저작권과 주식, 그리고 네버랜드를 포함한 부동산 등 재산이 5000억~6000억 원이어서 빚을 제하고 나면 순재산은 약 3000억 원이라고 전했다.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은 7월 7일 오전 10시 로스앤젤레스의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치러진다. 잭슨이 최근 복귀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했던 곳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