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실 ‘소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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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사라진 포크 1세대 싱어송라이터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속에서 방황했었다오
시골의 황톳길을 걸어다녔다오
어두운 숲 가운데 서 있었다오
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내 인생의 노래]이연실 ‘소낙비’

꽃들은 피고 지고, 계절은 시나브로 바뀐다. 그 사이사이에 수많은 노래가 숨어 있다. ‘내 인생의 노래’를 한 곡만 꼽아보라는 건 가혹하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한 가지만 골라 먹으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래야 한다면 이연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도 ‘소낙비’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소낙비는 소나기의 전라도 방언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치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는 기분이 된다. 이연실의 청아한 목소리는 끈적끈적한 우울을 날려버린다. 사실 이 노래를 얘기하려면 먼저 두 사내를 호출해야 한다. 밥 딜런과 양병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의 곡 ‘거센 비가 오려 하네(A hard rain’s A-gonna fall)’를 가수 양병집이 번안했기 때문이다. 밥 딜런은 1963년 자신의 두 번째 앨범에 이 노래를 수록했다. 평자들은 ‘거센 비’가 당시 미국사회를 들끓게 한 쿠바 미사일 사태를 의미한다고 해석했고, 실제로 전쟁과 핵개발을 반대하고 불평등과 지구오염 등을 우려하는 현장에서 많이 불려졌다.

포크계의 송라이터로 혜성처럼 등장한 양병집은 이 노래의 원곡이 가진 맛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감쪽같은 솜씨로 모국어의 맛을 살려 재탄생시켰다. 1973년 발표된 이연실의 2집에는 ‘소낙비’, ‘역(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타박네’ 등 양병집이 번안했거나 만든 노래들이 수록돼 있다. 양병집도 이듬해 자신의 독집앨범 <넋두리>를 내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쯤 해서 지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연실을 얘기해야 한다. 전북 군산 출생. 포크 1세대인 그는 홍익대 미대 시절 라이브클럽에서 노래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1971년 가수로 데뷔한다.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위해서 대구로 내려가 ‘다방 종업원’ 체험을 하고, 노래하다가 시비 거는 취객과 맞붙어 싸우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데뷔곡 ‘조용한 여자’나 훗날 발표한 ‘목로주점’에서 볼 수 있듯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도 탁월하다. “봄이 되어서 꽃이 피니 갈 곳이 있어야지요/ 여름이 와도 바캉스 한 번 가자는 사람 없네요/ 나는 괴롭힐 사람 없는 조용한 여자”라고 노래하고,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라고 노래하는 독특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갓 스무 살 넘은 소녀의 외로움을 역설적으로 담아내거나, 허름한 주점에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사막으로 여행하는 꿈을 꾸는 얘기를 노래에 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포크계의 송라이터로 명성을 날렸던 이연실은 1975년 대마초 사건 때 연루되어 주춤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연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대중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강원도 어디선가 감자농사를 짓고 있다는 풍문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잠행 중이다. 몇 년 전에 그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게 전부다.

<오광수 시인·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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