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대형 온라인서점 홈페이지마다 ‘최대 90%까지!’와 같은 자극적인 문구가 걸렸다. 그달 21일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마지막 대폭 할인행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출판·서점업계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경기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내 도서관 ‘지혜의 숲’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올해 11월 ‘일몰’을 앞둔 도서정가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두고 출판·서점·콘텐츠업계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출판업계와 서점업계가 저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같은 업계 안에서도 규모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동네서점부터 인터넷 대형서점까지, 소규모 단행본 위주 출판사부터 실용·학습서를 주로 펴내는 대형 출판사까지 각기 도서정가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도 하다.
공개토론회서 저마다 다른 목소리
도서정가제 개정은 출판업계의 숙원이었다. 처음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2002년 이래 책의 정가는 높은 할인율 때문에 유명무실했다. 이전까지의 도서정가 정책에 실효성이 부족했던 탓에 책 한 권을 팔아 출판사에 돌아오는 액수도 갈수록 줄어들어 출판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오던 때였다. 이에 따라 당시 출판계는 신간 할인폭을 낮추는 방향으로 도서정가제를 개정하면 소비자들에게 다소 비용 부담이 전가되지만 그만큼 영세 출판인들과 지역 서점에 돌아가는 책값이 늘어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도서정가제가 강화되기 직전 대규모 할인행사를 진행한 출판·서점업계는 남은 재고를 상당 부분 떨고 그해 큰 폭으로 매출을 늘렸을까. 아니면 도서정가제 도입을 주장하던 출판업계의 바람대로 이듬해인 2015년부터 서서히 매출이 늘어났을까.
도서정가제 시행 전후 나타난 변화를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지만 일단 숫자로 파악되는 변화상은 뚜렷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해마다 발간하는 ‘출판시장 통계’ 보고서를 보면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 대규모 할인행사까지 진행했음에도 2014년 주요 86개 출판사의 총매출액은 5조501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 본격적으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2015년에는 73개 주요 출판사의 총매출액이 5조2184억원으로 전년 대비 1.3% 줄었다.
집계에 활용된 주요 출판사의 수가 줄어든 탓에 총매출액 역시 줄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출협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감사보고서를 공시한 출판사의 자료만을 분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시자료를 낼 출판사의 수가 줄었다는 것 자체가 출판시장의 위축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최근 자료인 지난해 통계를 보면 주요 출판사 수는 70개로 2015년보다 줄었지만, 이들 출판사의 총매출액은 5조3836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서정가제 시행 전보다는 적은 액수다. 도서정가제가 출판시장 위축을 막는 데 뚜렷한 효과를 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때문에 현상을 보고 대책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분분하다. 지난 7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개최한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는 각 업계 당사자와 정부 관계자, 소비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체까지 나서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 토론회에서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여론 역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양상이었다. 현행 도서정가제를 ‘긍정’한다는 답변은 36.9%로 ‘부정’한다고 응답한 비율인 23.9%보다 높았으나, 도서정가제를 개선·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체의 62.1%로 과반을 차지했다. 현행 도서정가제 할인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답도 70.7%로 나와 ‘현행 유지’ 26.0%보다 높았다.
요컨대 ‘도서정가제의 골격 자체는 유지하되 할인율을 높여야 한다’는 쪽에 더 많은 국민이 손을 들어준 셈이다. 사실 이러한 여론은 도서정가제가 처음 도입된 초기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도서 간행물의 정가와 할인율을 법으로 정하는 제도의 틀은 2002년부터 유지돼왔다. 2014년의 시행령 개정안이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최대 할인율을 이전 19%에서 15%로 축소했기 때문이었다. 책 가격에서는 10%, 마일리지 등의 환급으로는 5%까지만 할인을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형서점 차지하는 몫 과다’ 여론
정부로서는 도서정가제를 아예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해 올라와 답변 요건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던 점에서 보듯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합의에 가깝게 논의가 진전된 사항은 출판사가 정가를 내려 판매할 수 있는 시점을 현행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하는 방안, 지역 서점을 지원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구매하는 도서는 할인율을 10%까지만 허용하는 방안 정도다. 여기에 새 책을 중고책방에 유통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과 사실상 판매에 가까운 장기 대여를 제한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행 도서정가제에 손대는 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출판계에서는 당국이 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맞춰 보완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이 6년째 접어들었지만 출판업계에 제대로 된 몫이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일부 대형서점이 차지하는 몫이 과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옥균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은 “주류 기업들의 독과점 횡포를 먼저 봐야 한다”며 “도서정가제에 대한 왜곡된 여론을 국가가 따라가면 결국 독과점으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점업계에서도 이미 시장 영향력이 커질 대로 커진 대형서점 때문에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지역 서점 쪽에선 도서정가제보다 독과점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종복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은 “독일 같은 나라에선 아마존을 포함해도 온라인 점유율이 18%를 넘지 않지만 한국에선 60%를 넘는다”며 “국내에선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에 이미 동네서점들이 사라졌는데, 현행 도서정가제를 통해 지역 서점이 그나마 산소호흡기를 달고 버틸 수 있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에 소비자단체들은 도서정가제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할인율을 제한한 이후로도 출판업계의 위기가 그치지 않는 데엔 이전보다 높아진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이 도서 구입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김주원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사무처장은 “도서정가제는 소비자에게 좀 더 좋은 문화적 가치를 전파하는 게 목표지만 오히려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제도”라며 “장기 재고 도서나 도서박람회에서 파는 책에 대해선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