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살아있다(#ALIVE)
제작연도 2020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98분
장르 공포, 드라마
감독 조일형
출연 유아인, 박신혜, 전배수,이현욱, 오혜원
개봉 2020년 6월 2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좀비영화는 더 이상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가 아니다. 점점 많은 편수의 좀비영화가 쏟아지고 새로운 시도가 접목되다 보니 이제는 그 안에서도 세부 장르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질 만큼 거대해졌다. ‘좀비’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정의해도 큰 무리는 아닐 지경이다.
외국의 열광에 비해 꽤 오랫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해오던 한국 관객들과 영화계에서도 지금은 좀비를 주목해야 할 소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당연히 이런 판도에 결정적 초석이 된 것은 2016년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의 성공이다. 여기에 넷플릭스가 제작한 좀비사극 <킹덤>을 향한 글로벌 팬덤의 가세는 순식간에 한국을 좀비물의 신흥강국으로 극상시켰다. 그리고 올해, <부산행>의 속편 <반도>가 많은 관객의 기대 속에 개봉을 준비하고 있고, 이에 앞서 또 한 편의 좀비영화 <#살아있다>가 공개됐다.
느지막이 침대에서 일어난 준우(유아인 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식탁 위에 용돈과 함께 남겨진 어머니의 메모와 창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아비규환의 풍경. 비명을 지르며 몰려다니면서 물어뜯고 뜯기는 사람들의 기괴한 모습을 목격한 준우는 현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시간이 지나면서 먹을 것은 부족해지고 물·전기·인터넷도 끊기면서 준우는 난감한 고립생활에 피폐해져만 간다. 결국 마지막 결단을 실행하려는 순간 그의 옆으로 한 줄기 빛이 날아든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 분)이 보내온 메시지는 새로운 희망이 된다. 더불어 휴대폰에 찍힌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 문자는 그의 삶에 절대 목표가 된다. “꼭 살아남아야 한다.”
통속성과 현실성이 적절히 안배된 오락영화
<#살아있다>가 관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재미는 크게 두 개의 갈래로 기대할 수 있다. 먼저 그동안 좀비영화들이 전형적으로 제공해왔던 괴팍하고 폭력적인 비주얼과 역동적인 상황에서 촉발되는 액션과 공포가 그것이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듯하다. 그동안 좀비물에서 필수적인 요소처럼 등장해온 폭력과 피 칠갑은 적절히 분배되어 제공된다. 좀비 묘사에 있어서도 다소 과하다 싶은 아쉬움도 있지만, 외형이나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어떻게든 이전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을 적절히 활용한 아이디어도 눈에 띈다. 소형 드론이나 컵라면 같은 일상 속 소품들이 주는 잔재미가 만만치 않다.
두 번째는 외부의 끔찍한 재앙을 피해 본의 아니게 고립된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드라마라 할 것이다. 요소요소에 인물이 느끼는 공황이나 비애의 감정을 유도하는 장면들도 시도되지만, 기본적으로 무거움보다는 만화를 보는 듯한 파편적 경쾌함과 유머의 기조가 주를 이루는데 이는 결말까지 유지된다.
영화 전체를 홀로 이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아인의 연기는 영화 속에 수시로 발견되는 오류를 덮어버릴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내면적으로 쉽지 않았을 캐릭터를 소화해낸 박신혜의 호흡도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특이한 형태의 글로벌 프로젝트
이 작품의 원안은 미국 각본가 맷 네일러의 시나리오다. 이제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되는 것이 꽤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조금 모양새가 다르다. 애초부터 시나리오 상태에서 국내 영화사가 영화화 판권을 사왔고, 미국과 한국이 각각 동시에 개별적인 영화제작을 진행했다. 한국적 특색을 고려한 감독의 각색 작업이 추가됐음에도 <#살아있다>가 먼저 완성되었다.
<얼론(Alone)>이란 제목으로 개봉을 앞둔 미국 작품은 스턴트 배우 출신으로 연출가로서도 왕성한 활동 중인 조니 마틴이 메가폰을 잡았다. TV 시리즈 <틴 울프>로 인기를 얻고 <콜래트럴 데미지>·<트루스 오어 데어> 등에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아역배우 출신 타일러 포시가 주연을 맡았고, 원로배우 도널드 서덜랜드 등도 출연하는데 구체적 공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
았다. 영화 <#살아있다>는 전체적으로 아직 설익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다. 전체를 아우르며 강력하게 이끌어나가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오락영화로서 무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평소 좀비영화에 애정을 가진 관객에게 더 즐거운 작품으로 와닿을 것 같다.
제작 규모와 국적에 상관없이 매년 수십 편이 만들어지는 좀비영화. 꾸준히 각광받는 글로벌 아이템이 되다 보니 그 안에서도 세부 분류가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접목과 변주가 이루어졌다. 그중 ‘고립’은 꽤나 사랑받는 요소다.
2000년대 말 비슷한 시기에 유럽의 세 국가에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좀비 바이러스가 들끓는 세상 속에 고립된 인물들을 내세운 작품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시대 생활 속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지금의 우리에겐 더 크고 씁쓸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2017년 완성된 이탈리아 영화 <디 엔드?>는 중요한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서둘러 출근하던 성공한 사업가가 회사건물 엘리베이터에 갇히며 시작한다. 좁게 열린 문을 통해 내다보는 공간 밖 사무실 안 상황은 말 그대로 지옥경이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관습적 설정과 장면들의 나열로 흥미로웠던 아이디어에 미치지 못한 결과물을 남겼다.
이듬해 만들어진 프랑스 <워킹 데드 나잇>(2018)에서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에 방문했다가 홀로 남겨진 젊은 작곡가가 주인공이다. 끔찍한 현실이 그의 생존본능을 일깨우면서 유일한 안전지대였던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은 그가 뛰어넘어야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의외의 철학적 사색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덴마크 영화 <쥬>(2018)에 등장하는 젊은 부부는 첫 아이를 잃은 후 깊어진 갈등으로 이혼을 준비 중이다. 어느 날 아침 창밖으로 내다본 세상은 좀비로 인해 아수라장이고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머물러야 하는 이들은 이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둘만의 시간을 함께하며 진정한 생존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