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영화 <나는보리> 만든 김진유 감독 “내 삶에서 장애랑 비장애인 경계는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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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보리의 소원은 ‘소리를 잃는 것’이다. 매일 등굣길 서낭당에 들러 소원을 빈다. 축제 날 가장 큰 폭죽이 터질 때도 두 손을 모았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게 해달라고. 강원 강릉 바닷가 마을에 있는 보리네 집은 조금 조용하다. 엄마·아빠·남동생이 모두 농인(聾人)이다. 유일하게 소리를 듣는 보리는 외롭다. 짜장면 주문도, 택시에서 행선지를 말하는 것도 보리의 몫. 하지만 부모와 남동생의 수어 대화를 보면서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낀다. 어느 날, 보리는 소원이 이뤄질지도 모르는 방법을 실행에 옮긴다.

김진유 감독이 5월 12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 있는 <나는보리> 포스터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김진유 감독이 5월 12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 있는 <나는보리> 포스터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5월 21일 개봉하는 영화 <나는보리>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聽人),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이야기다. 소리를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보리의 모습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문다. 영화는 농인 부모를 둔 김진유 감독(32)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5월 12일 서울 용산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내 삶에서 장애랑 비장애인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우리 옆집에 지체장애인이 살고, 옆옆집에도 농인 가족이 있는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똑같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2015년 농아인협회에서 진행한 토크콘서트 ‘수어로 공존하는 사회’에 참석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현영옥씨가 연사로 나섰다. 그는 어렸을 때 소리를 잃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현씨 가족은 모두 농인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청력이 나빠지면서 농인이 됐다. 가족은 안타까워했지만 현씨는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는 마음에 뛸 듯이 기뻤다고 했다. “저도 어렸을 때 소리를 잃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현씨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했다가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점점 제 이야기랑 겹쳤어요.”

영화의 배경은 그가 나고 자란 주문진이다. 보리가 엄마와 함께 시장 옷가게에 간 장면은 감독의 경험에서 나왔다. 보리 엄마가 듣지 못한다는 걸 아는 주인은 실제 옷값보다 5000원을 더 받는다. 옷가게 장면은 전작인 단편 <높이뛰기>에서도 다뤘다. 이번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화를 해소한다. 강릉 단오제에서 가족을 잃고 경찰서에 가는 장면도 그의 이야기다. 영화는 2018년 초여름 한 달여간 촬영했다. 바다를 보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수어를 잘하진 못한다. 집에서는 주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홈사인(Home Sign)’으로 소통한다. 영화 속에도 정식 수어는 아니지만 그가 사용한 홈사인이 들어가 있다. 보리와 아빠는 농인 부모에게서 청인 아이가 태어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는 보리가 내심 청각장애인이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네가 들리든, 안 들리든 우리는 똑같아”였다.

“<높이뛰기>를 만들고 나서 농인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대부분의 농인 부모들이 농인을 낳고 싶어하더라고요. 청인은 자기와 소통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요. 한국영화가 청인 위주로 돼 있다 보니 농인이 아니면 모르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 얘기를 영화 속에서도 풀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영화제는 감독과 배우들이 합심해 만든 좋은 영화를 알아봤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농아인협회가 주최하는 제20회 가치봄영화제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도 수상했다.

영화 <나는보리> 포스터. 농인 관객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모든 대사에 한글 자막을 달았다. /영화사 진진

영화 <나는보리> 포스터. 농인 관객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모든 대사에 한글 자막을 달았다. /영화사 진진

강릉에 삽니다

공부엔 흥미가 없었다. 성적표를 보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해볼까’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5년부터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했다. “그때 영화에 대한 사고가 조금 넓어졌어요. 만날 스릴러나 상업영화를 보다가 독립영화를 접하면서 이런 것도 영화가 될 수 있구나 알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영화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냈어요.”

대학은 한 학기도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무작정 서울로 왔다. 초반에는 방송 예능프로그램 FD로 일했다.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부모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 가면 됐지만 한국영화에는 자막이 달리지 않는다. 부모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다는 얘기다. “일주일에 한 번 방송이 나오니까 저 프로가 내가 하는 거야, 쉽게 설명할 수 있었어요. 한번은 상업영화 촬영팀에서 일했는데 밤도 많이 지새고 환경이 폭력적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영화 자체가 싫어졌던 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다시 영화를 만들게 되더라고요.”

<나는보리>에 보리 아빠로 나온 배우 곽진석씨는 2008년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곽씨는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로 영화제에 왔다. 두 사람은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낮에 축구를 하며 친분을 쌓았다. 자원활동가이던 김 감독은 영화제 기록팀장이 됐고, 단편영화를 만들더니 장편 시나리오까지 썼다. 두 사람은 한 편의 작품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곽씨는 보리 엄마로 나온 배우 허지나씨와 실제 부부다.

“원래 하기로 했던 배우가 못 하게 되면서 곽 배우에게 같이하자고 제안을 했죠. 허 배우도 같이했으면 좋겠다고요. 처음 전화를 했더니 ‘너 미쳤어?’라고 하더라고요. 개봉까지 생각하려면 인지도 있는 배우가 좋지 않겠냐는 거였죠. 난 모든 걸 생각하고 결정한 거니까 같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김 감독은 지금도 강릉에 산다. 2017년 강릉에서 뜻이 맞는 영화인들과 함께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를 창립했다. 독립영화를 주요 사업으로 한다. 지난해에는 춘천·원주의 감독들과 함께 ‘강원독립영화협회’를 만들었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끼리 농담삼아 ‘독립영화도시 강릉’을 만들자고 해요.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있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지 않을까요. 서울 기반으로 영화산업이 발전돼 있는데 지역에서도 영화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강릉에 사는 감독의 하루가 궁금했다. 바다와 산, 자연과 함께한단다. “저는 가는 곳만 가거든요. 극장은 신영극장(독립예술극장), 카페는 봉봉방앗간, 술집은 <나는보리> 음악감독이 운영하는 라이브바 러쉬. 세 곳이 루틴이에요. 낮에는 카페 가서 글 쓰다가 심심하면 영화 보고, 밤엔 바에서 술 마시고 집에 가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걸로도 충족이 돼요. <나는보리>를 신영극장에서 상영했을 땐 주민들이 다 왔었어요. 영화 볼 때 에티켓이 무시됐는데도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같이 사는 사람들 주변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그것도 가치 있는 일이겠다 생각했어요.”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 어떤 감독이 되겠다기보단 ‘동료들이 같이하고 싶어하는 감독’이었으면 한다. “같이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영화를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배우가 같이하고 싶어하는 감독, 이건 욕심나네요.”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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