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서울 서교동의 한 극장에서 열린 가수 이승환의 데뷔 30주년 음악감상회를 취재했다. 행사 직전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고 바람잡이로 나온 주진우 전 <시사인> 기자가 “저한테 조국 장관에 대해 묻지 마세요”라고 시시껄렁한 농을 쳤다.

JTBC
마감을 마치고, 동료기자와 스태프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타사 기자가 전화 한 통을 받은 뒤 사색이 돼 말했다. “설리가 죽었대요.”
기자가 된 뒤 수많은 연예인의 죽음을 지켜봤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든, 사고든 죽음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고 최진실과 그의 가족들이 그랬고 배우 김주혁의 사고나 샤이니 종현, 배우 전미선의 안타까운 선택도 갑작스러웠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별은 더 이상 고인에게 안녕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설리의 죽음도 그랬다. 막상 부고기사를 쓰려고 보니 설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쏟아지는 타사의 부고 기사를 살펴보니 설리는 ‘투사’처럼 묘사됐다. 사회적으로 격화된 젠더 갈등 속, 속옷 착용을 비롯한 여성을 옥죄는 수많은 금기에 분투하며 편견에 맞섰고 여성 아이돌 스타에 대한 폭력적인 관음증과 악성댓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기사를 쓴 누구도 그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마치 영화 제목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사들은 서로를 질책하고 힐난한다. 기사 때문에, 악성댓글 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그의 유작이 된 <악플의 밤> 때문에 설리가 숨졌다며 비난에 비난을 거듭한다.
불과 석 달 전 이 지면에 <악플의 밤>에 대해 썼다. 제작진의 러브콜에 흔쾌히 응했던 설리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인간 최진리의 속은 어두운데 연예인 설리로서 밖에서는 밝은 척해야 할 때가 많다”며 자연인 최진리와 연예인 설리 사이의 괴리감을 고백했다.
20대의 치기로 여겨진 설리의 소셜미디어(SNS) 게시물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의미가 전달됐다. <악플의 밤>은 설리와 대중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통로였다.
수많은 독자들이 기자들을 향해 ‘기레기’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분노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그가 생전 얼마나 아팠을지 다소나마 짐작해본다.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것은 더 이상 고인과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 제작진에 대한 돌팔매질을 멈춰달라는 것이다. 2년 전 샤이니 종현을 떠나보냈던 스태프들은 다시금 일어난 비극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악플의 밤>은 제목처럼 성난 누리꾼들의 악플로 프로그램의 존폐가 위기에 쳐했다.
그러나 지금 가장 힘든 사람들은 상을 치러야 하는 그들이다. 생전 악성댓글로 괴로워했던 설리도 자신과 함께 일했던 이들에 대한 혐오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설리. 그곳에서는 연예인 설리가 아닌 인간 최진리로 마음껏 끼를 발산하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은별 브릿지경제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