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의 <기지촌> 살면서 놓친 ‘반음’들 복원 어려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서산마루에 시들어지는 지쳐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튼 위에
희미하게 넘실거리네
어두움에 취해버린 작은 방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 것도 뵈질 않네

[내 인생의 노래]김민기의 <기지촌> 살면서 놓친 ‘반음’들 복원 어려워

1986년 수배자가 됐을 때, 강원도 춘천을 간 적이 있었다.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산책을 하다 공지천을 건넜는데, 때마침 mbc 근처에서 야외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던 무렵의 밤, 호숫가에서의 문화 공연, ‘도바리’ 처지로는 난데없는 호사였다. 그 때 한 가수(한영애로 기억된다)가 기타 반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읊조리는 김민기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그의 노래와 함께 밤은 깊어갔고, 돌아오는 길에 동행한 이와의 팔짱은 쌀쌀한 날씨가 아니어도 자연스러웠다.

이 노래는 너무 서정적이다. 국가의 관리 아래 외국 군대를 위안하던 곳, 한·미동맹의 중력장에 의해 뒤틀려버린 공간을 배경으로 한 노래치고는. 그럼에도 70년대 검열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기지촌에 세상의 관심이 모이는 걸 두려워한 것이리라. 심의를 통과하느라 제목과 가사가 바뀌었으나, 대학가에서는 원곡 그대로 불렸다. 군가풍의 투쟁가들이 학생운동의 문화가 되어 가던 때,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진 비감과 불안한 정서를 위로하는 노래였다.

하지만 이 노래는 부르기가 쉽지 않다. 선배들 입을 따라 배운 탓도 있으나 소절마다 나오는 반음을 살리기가 어렵다. 반음을 제대로 쳐야 노래의 맛이 사는데, 흥얼거리다보면 넘치거나 모자라기 십상이다. 우리의 세상살이도 그런 면이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 어떤 일에서 ‘반음’을 쳐야 하는 순간에, 그걸 놓쳐 관계나 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래는 다시 부르면 되지만, 살면서 놓친 ‘반음’은 복원이 잘 안 된다.

난 황혼이 넘실거리는 창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 살던 곳의 창밖은 늘 다른 집의 벽이었다. 어쩌다 앞이 트인 창을 가져도 바깥 풍경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낡은 창문은 들어오는 햇빛도 낡게 만든다. 그 안의 모든 것을 낡게 한다. 낡은 비키니장, 낡은 이불과 냄비 그리고 낡은 몸. 가사 1절의 시각적 이미지가 내 살던 공간의 분위기 그대로인 듯해 젊은 시절부터 자주 이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았나 싶다.

80년대 말, 비밀조직의 일원으로 울산에 가게 됐다. 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병영이란 곳에 방을 얻었다. 커다란 화물차부터 경운기까지 오르내리던 길가에 붙은 창고를 개조한 방이었는데, 길가로 난 창을 따라 먼지가 뿌옇게 들어왔다. 장님의 노래도, 짙은 화장으로 서성대는 젊은 여인도 없었지만, 방 분위기만은 노래 그대로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10여분 걸어 올라야 하는 길을 5분씩은 더 걸려 집에 돌아오곤 했다. 혹시 미행이 있을까, 이 골목으로 돌고 저 골목으로 빠져 뒤를 확인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던 때였기에. 그 어둑한 골목길을 걸을 때면 이 노래가 두서없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때 나를 울산으로 보낸 이가 노회찬 선배였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서산에 해가 아직 높은데 그리 서둘러 가시니, 그와의 만남에서 내가 놓친 반음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그립다. 영면하는 이에게도 꿈이 찾아오면, 오늘밤 그는 무슨 꿈을 꿀까.

<<알류샨의 마법> <모두 다 문화야> 최영민 작가>

내 인생의 노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