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전형적인 파운드 푸티지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밀하게 장르적 규칙성을 따르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이제는 B급을 넘어 C급, Z급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표방하는 ‘쌈마이 영화’에 가깝다.
제목 아나운서 살인사건
감독 오인천
주연 김보령, 윤주, 조은, 노이서, 이정원, 김종철
장르 추적 공포 스릴러
상영시간 82분
제작/제공 영화맞춤제작소
공동제공 웨스트센텀시네마
배급 블리트필름
개봉일 2019년 6월 13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벌써 8편이나 장편을 찍은 다작 감독인데도 이번 <아나운서 살인사건>을 통해 그의 영화세계에 처음 입문했다.
오인천 감독. 영화를 본 첫 감상은 “뭐야 이게”였다. ‘쌈마이스러운’ 폭발 장면이라든가 국어책을 읽는 듯한 ‘발연기’ 같은 것 말이다.(사담을 하자면 이종철 편집장을 ‘연기’한 익스트림무비의 김종철 대표는 필자의 20년 지인이다. 그가 배우로 나오는 영화는 개인적으로 처음 봤다.)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려 보이는 시나리오. 이 아나운서들은 도대체 연쇄살인마 안보령이 보낸 휴대폰의 발신 확인을 왜 하려 하지 않는가. 적어도 ‘발신제한표시’가 뜨는 장면이라도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초등학교에서 살인마에게 쫓기던 여성 아나운서들과 기자는 한꺼번에 정신을 잃었다가 교실에서 몸에 폭탄이 장착된 채로 비슷한 시간에 정신을 차리는데, 도대체 어떤 마법을 이 연쇄살인마가 썼길래 3명이 동시에 정신을 잃고 또 깨어나게 되는 건지…. 또 인트로이자 엔딩 장면. 비슷한 자리를 뱅뱅 도는 택시에서 아나운서들이 반발을 하자 ‘놀랐지!’ 하는 식으로 얼굴을 들이대는 ‘하회탈’은 도대체 뭔지…. 그리고 그 장면에 이질적으로 삽입돼 있는 날카로운 금속음(아마 낫 같은 것을 다른 금속과 마찰시키는 소리인 듯한데)은 도대체 또 무슨 농간인지….
눈에 띄는 전작들의 변주
궁금증을 안고 그의 전작들을 감상했다. 오호라. 변주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전작 <야경: 죽음의 택시>(2017)와 연결되어 있다. 비슷한 설정의 변주다. ‘하회탈’ 남성은 이 전작의 살인마다. 그렇다면 스크린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나운서들이 탄 택시는 재수없게도 38번 국도의 진짜 연쇄살인마가 운영하는 택시였고, 그는 이 아나운서들의 탈출에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영화의 폭탄 연쇄 여성 살인마 안보령과 ‘하회탈’은 한패였다. 3명의 여성이 정신을 잃은 사이, 그들을 한 교실로 끌고 들어가 몸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도운 것도 그 ‘하회탈’일 수 있다.
가만. 그렇다면 영화 가운데 흑백으로 찍은 장면은 또 뭔가. 전작들처럼 계속 찍기를 강요당하는 촬영조수(영화감독 오인천이다)가 배제된 이 흑백 시퀀스는? 때때로 묶여 있는 여성들의 내면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이 장면들은 도대체? 영화는 전형적인 파운드 푸티지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밀하게 장르적 규칙성을 따르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이제는 B급을 넘어 C급, Z급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표방하는 ‘쌈마이 영화’에 가깝다. 아울러 영화는 컬트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감독의 작품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전작에서 변주되어 재조립되는 요소들이 눈에 뜨일 것이다. 단독 특종 욕심에 집착하며 경찰 신고를 끊임없이 미루는 주인공들, 공중파에서 밀려나 유튜브로 갈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 언론인들, 나이와 소속사에 따른 암묵적 서열경쟁…. 확실히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곳곳에서 번뜩이는 설정들.
컬트를 넘어선 영화의 가능성
과거 영화라는 예술, 또는 제3의 언어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세계 인류에게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성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지극히 한국적인 자신의 영화가 과연 세계 사람들에게 통할까 걱정했었다. 칸에서 그가 확인한 것은 자신이 그리고 있는 반지하의 삶과 비슷한 삶의 형태가 영국 런던에도, 중국 홍콩에도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젊은 독립영화 감독이 큰 꿈을 꾸기엔 억누르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크다. 의도된 것이지만 카메라를 들고 목소리로 출연하는 영화 속 촬영자(감독)는 자신의 사수로부터, ‘클라이언트’로부터 끊임없이 지시를 받고 망설이고, 공포를 느끼고 도망친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일본 독립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One Cut of the Dead)>(2018·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에서 카메라를 계속 돌리라고 다그치는 영화 속 히구라시 감독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나마 <카메라를…>은 지난해 일본의 ‘히트상품 30선’에 뽑혔다. 장르영화 팬 커뮤니티를 넘어 오 감독의 작품에 눈도장을 찍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목한다. 자기가 좋아서 특수효과 장비를 직접 만들어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 같은 영화를 찍던 뉴질랜드의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 연출로 세계적 거장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소수의 장르영화 팬들은 처음부터 그 가능성을 눈치챘기에 저 괴상한 컬트영화를 사랑했지만 말이다.
<아나운서 살인사건>에 이어 바로 찾아본 영화는 <월하>였다. 권철휘 감독이 연출한 한국고전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1967)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즉 영화의 시작과 엔딩에 나오는 ‘기생월향지묘’라고 적힌 묘비가 실제로 발견되었고, 한 일본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경기 파주의 어느 숲속에 있는 그 묘비를 찾으러 떠나는 사람들의 여정이 담긴 필름, 정확히 말하면 SD카드 속 동영상이 발견된다는 ‘파운드 푸티지’물이다.
작고한 권철휘 감독은 생전 인터뷰에서 저 영화의 구상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며칠 밤을 샜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그 장소는 망우리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 <월하의 공동묘지>를 다시 보면 한국 공포영화의 클리셰 대부분을 담고 있다. 인트로에서 일자리를 잃은 변사는 늑대인간의 몰골이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열정의 제국(愛の亡靈)>(1978)에서도 써먹은 수백 년 전통의 ‘인력거 괴담’이 택시 괴담으로 변주돼 1960년대의 액자 스토리로 들어간다.
파운드 푸티지물로 재번역된 이 이야기는 <월하의 공동묘지>의 형식을 영리하게 재해석한다. 왜 난데없는 ‘광산업으로 성공한’ 일본인 클라이언트가 등장하는지는 원작을 보면 유추 가능하다. 미쳐가는 흥신소 남자가 ‘기생월향지묘’ 묘비 앞에서 내뱉는 광란의 대사는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여동생의 묘비를 돌로 박고 떠나며 황해가 남긴 한 맺힌 울부짖음과 대비된다. 볼 만한 작품이다. 권철휘의 작품은 고맙게도 영상자료원이 유튜브에 올려뒀고, 오 감독의 <월하>는 IPTV 등으로 서비스되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