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남녀와 1인 가정이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해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 형태로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 MBC <나 혼자 산다(나혼산)>의 기획의도다.
2013년 <남자가 혼자 살 때>라는 제목의 파일럿 방송이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기러기 아빠, 비혼남, 아내와 떨어져 사는 비자발적 독신남까지 다양한 형식의 싱글라이프를 영위하는 이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당시 파일럿에 참여했던 한 연예인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제작진의 개입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진정한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는 개그맨 이경규의 표현처럼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들의 일상을 그저 ‘관찰’하기만 했다.
하지만 일상은 반복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씻고 볼일 보고 밥을 먹는 게 기본인 삶.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으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게 관찰 예능의 약점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유일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이어나가는 나영석 PD의 작품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률이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3년 3월 정규편성된 뒤 제목을 바꾼 나혼산은 조금씩 포맷을 바꿔 나갔다. 제작진은 출연진과의 교감을 통해 이들의 삶에서 콘셉트를 만들어냈다. 출연자들은 매일 특별한 이벤트를 벌였고 집에서 혼자 큰소리로 중얼거리곤 했다. 간혹 게스트로 출연한 연예인이 말을 하지 않아 오디오가 비는 사태가 벌어지면 어김없이 ‘무음방송’, ‘침묵방송’이라는 자막이 붙곤 했다.
나혼산은 2017년 전현무, 한혜진, 박나래, 기안84, 이시언 등으로 진용을 갖춘 뒤부터 본격적으로 관찰을 표방한 캐릭터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사실상 코믹 상황극이지만 하루 종일 사람의 삶을 관찰하다보면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진심이 묻어나오게 마련이다. 시청자들은 다큐와 쇼의 경계에 있는 이 프로그램에 열광했다. 할리우드 스타로 거듭난 다니엘 헤니나 우아한 삶을 영위하는 여배우 김지수와 김사랑, 한류스타 동방신기와 곱창여신으로 거듭난 화사 등은 나혼산을 통해 더욱 시청자들과 친숙해졌다. 나혼산은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무리함도 엿보인다. 나혼산이 ‘승츠비’로 부추긴 승리는 클럽 버닝썬 사태의 주역으로 전락했다. ‘짠내’나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 잔나비도 “금수저가 가난까지 탐했다”며 뭇매를 맞고 있다. 마이크로닷이 출연 뒤 ‘빚투’ 사건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제작진이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승리 사태 때는 ‘똥 밟은’ 기분일 것 같은 제작진의 불운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잔나비까지 세 번째 사건이 터지면서 캐릭터쇼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관찰의 표피를 쓴 상황극을 믿은 시청자들은 출연자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조작을 의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쯤 되면 연예인의 일상을 캐릭터화해 콘셉트에 맞게 찍는 나혼산 식 관찰 캐릭터쇼도 방향을 선회할 때가 아닌가 싶다.
<조은별 브릿지경제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