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 감았던 눈을 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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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건축 현장이나 식당은 물론 요양병원 간병인의 90%를 중국동포가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이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 대해서 우리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서울 대림동이나 경기 안산 원곡동의 차이나타운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강력범죄와 불법체류자 문제에 관한 주요 언론의 사건 보도나 상업영화의 광고영상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서 만든, 하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는 미완성의 모자이크 작품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필자 제공

필자 제공

서울 마포구에 있는 대안공간 루프가 일본의 타쿠지 코고의 국제 협업 아트플랫폼 ‘캔디 팩토리 프로젝트’를 초청해 6월 9일까지 열고 있는 전시 <캔디 팩토리 프로젝트 인 서울>은 앞에서 말한 구멍 난 모자이크를 다 채워 넣을 때 우리 일상의 풍경이 얼마나 낯설어 보일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는 싱가포르에서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는 싱가포르의 이주노동자 법을 사운드 및 텍스트 애니메이션으로 읊어 주거나, 그들의 일자리를 중개하는 인력사무소가 밀집해 있는 싱가포르 ‘부키티 티마 쇼핑센터’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풍자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싱가포르 이주노동자들은 체재기간 중 싱가포르 시민과 결혼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임신도 할 수 없다. 심지어 이러한 모든 규정은 근로 허가가 종료된 이후에도 준수되어야 한다. 도시국가이며 강대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사회 시스템을 통해 국력을 키워야 하는 역사적·지정학적 특수성이 이러한 이민 규정에 영향을 준 것이리라.

다만 영어로 “그녀는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텍스트가 묘한 흥얼거림에 가까운 디지털 음성과 함께 차례차례 흘러가는 것을 보자면, 그러한 이민 규정이 갖는 무게감이 이상하리만큼 실감이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로 남아있기 위해 타인을 규정하고 경계선을 그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일상 너머의 타인의 사정은 법조문보다는 노랫말이나 액션영화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최장 10여년 가까이 일하면서도 정작 가족과 계속 헤어져 지내야만 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논의나 난민인정을 둘러싼 찬반 양론 또한 정작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주한미군 병사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나 이탈리아 등에 주둔 중인 미군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들을 읊어 주는 이번 대안공간 루프 전시 작품들처럼 이방인의 눈과 입으로 한국 사회를 보고 듣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도 싱가포르와 유사한 법률 준수를 요구받고 있다. 이를 ‘캔디 팩토리 프로젝트’ 식으로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이 된다. “그들은 가족과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회사를 네 번 이상 옮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곡조로 읽어볼지는 독자 여러분께 맡기겠다.

<정필주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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