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은 허상, 평준화 교육이 더 낫다
학생의 잠재적 능력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하향 평준화’라는 검증되지 않은 프레임에 현혹되어 특목고를 통한 엘리트 교육에 ‘올인’해왔다.

김대식, 김두식 지음·창비·1만3800원
30여년 전 샀던 수학문제집 표지에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란 경구가 있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아이의 참고서에서도 유사한 문구를 봤다. 시험은 불로불사인가 보다. 하기야 시청률이 한 자릿수를 넘기 힘든 요즘 대학입시를 다룬 드라마 <SKY 캐슬>은 20%대를 찍었다. 해서 모든 정권은 들어설 때마다 입시개혁을 내걸지만 애초부터 불감당이다. 그런데 모든 입시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히고설킨 문제를 단칼에 잘라서 전국민을 만족시키는 묘책은 없다. 차라리 왜 공부를 하는지, 시험으로 학력을 평가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등을 묻는 것이 입시문제를 개선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김대식, 김두식 두 형제 교수의 <공부논쟁>은 시험, 엘리트, 고교 평준화, 서울대 개혁 등 교육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난상(爛商)토론을 거듭한다. 가장 뜨거운 이슈인 입시제도와 관련한 처방은 명쾌하다. 수험생이 덜 피곤하게 하는 단순한 시험이 낫다는 데에 박수를 보낸다.
단, 전제가 있다. 중등교육의 완전한 평준화다. 특목고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영재교육은 일종의 ‘사기’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뒷받침돼 ‘만들어진 천재’는 신기루다. 실제 미국에서 이른바 조기교육을 받은 ‘영재’들은 나이 서른이 넘어가면 대부분 학계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 두뇌가 ‘번아웃(burnout)’, 소진됐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90%가 일반 고등학교 출신인데 10대 청소년을 쥐어짜봤자 무슨 효과를 거두겠냐며 ‘소년등과(少年登科)’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천재가 과학계를 이끌고 엘리트가 대중을 지도한다는 통념을 깨뜨리는 형제의 주장은 쾌도난마처럼 거침없다. 중·고교에서 암기나 주입식 공부를 상대적으로 많이 안 한 아이들은 머리가 굳어 있지 않아서 30대에 인재가 될 공산이 크다며 이 땅의 대다수 부모에게 위안(!)을 준다. 법학을 전공한 동생이나 물리학을 가르치는 형은 선거나 보수·진보의 문제에서는 일합을 겨루지만 교육에서는 한목소리다.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론에 대해 이들은 천재 한 명을 만들기 위해 만 명의 ‘인력풀’이 필요하다고 반박한다. 기초과학의 경우 성과나 발견의 80%가 우연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먼저 수많은 씨앗을 뿌려놓을수록 결실이 알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육은 평준화의 간증대상이다. 학생의 잠재적 능력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제각각이다. 떡잎부터 다른 재목도 있지만 꽃 없이 열매를 맺는 무화과 같은 늦깎이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하향 평준화’라는 검증되지 않은 프레임에 현혹돼 특목고를 통한 엘리트 교육에 ‘올인’해왔다. 그 결과 예전의 KS(경기고-서울대)가 간판을 바꿔 등장하고, 학교는 ‘사회통합(social mix)의 장’에서 계층 격차의 아이콘으로 전락했다. 형제는 호소한다. 창의성과 우수성을 키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평등이고, 따라서 아이들은 평준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이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