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녀사냥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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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연극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아서 밀러의 <시련>은 그 기능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등을 통해 동시대 사회 비극에 천착해오던 작가 밀러가 갑자기 먼 과거인 17세기의 마녀사냥 이야기를 끄집어낸 데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 광풍이 발단이 됐다. 냉전의 긴장이 첨예하던 시절, 당시 공산권 국가들의 강한 영향력에 예민해져 있던 미국은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명분하에 무차별한 공포정치를 펼쳐나갔고 수많은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주)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바로 이러한 시대에 아서 밀러는 <시련>을 발표함으로써 17세기 세일럼의 마녀재판이란 연극적 프리즘을 통해 당대의 비극적 상황을 날카롭게 지적하고자 했다. 그는 이 작품 안에서 사소한 거짓말이 사람들의 이익과 사회구조와 얽히면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비극의 과정을 통째로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당대 미국에 몰아친 매카시즘의 집단적 광기와 비겁한 소시민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시련>은 17세기 세일럼에서 일어난 마녀사냥 사건을 통해 ‘두려움’이 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어떻게 지배하고 다스리는지, 그리고 여기에 욕망과 탐욕이 더해지면 어떤 끔찍한 비극이 만들어지는지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 세일럼. 엄격한 청교도 윤리에 의해 다스려지는 이 마을에서 어느 날 밤 소녀들이 숲속에서 발가벗고 춤을 추며 혼령을 불러내는 금지된 놀이를 벌인다. 이것을 지나가던 목사에게 들키게 되자 소녀들은 불호령이 두려운 나머지 악마에 홀린 척 연기를 꾸며댄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었지만 어른들이 소녀들의 거짓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간다.

자신들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상황과 마주하게 된 소녀들은 더욱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더 필사적으로 마귀에 들린 연기를 펼친다. 여기에 개인적인 원한이나 이익관계에 놓인 이웃들을 고발하는 사람들까지 합세하면서 사건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변질된다. 사람들은 악마와 대항해 싸운다는 확고한 명분 아래, 오랫동안 억눌러 온 이기심을 드러내며 잔인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복수를 시작했다. 결국 마을 법정은 무시무시한 마녀재판소로 변질해가고, 교수대까지 등장하게 된다. 집단적 광기라 불릴 만한 이 마녀사냥으로 최소한 175명이 희생되었고, 작은 도시 세일럼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낸 끔찍한 비극의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 연극 <시련>의 카피라이트는 ‘우리는 모두 세일럼에 살고 있다’이다. 아서 밀러의 <시련>이 17세기 세일럼의 마녀사냥을 통해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비추는 거울로서 기능했다면, 동시대의 <시련> 공연은 인터넷 마녀사냥이나 악성 댓글 등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단죄하고자 하는 오늘날의 우리를 비추어보고자 한다. 2월 26일부터 3월 31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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