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보는 서로 다른 눈 ‘이해와 오해’
정신과 육체의 이탈을 겪고 있는 그의 상태를 통해서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이해하는 것일까. 결국은 그 모든 오해가 이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널 지켜보고 있어>의 주인공인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병. 약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는 있으나 가끔은 몸이 그의 의지와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다. 범인을 뒤쫓는 입장이라면 크나큰 약점이다. 하지만 핸디캡 때문에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읽는 재미는 한층 배가된다. 모든 것에서 완벽한 영웅보다는 약점을 끌어안고 극복하거나 난관을 돌파하는 독특한 상황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파킨슨병 앓는 주인공의 추리·관찰기

<널 지켜보고 있어>의 한국어판 표지 | 북로드
탐정에게 핸디캡을 주면 색다른 긴장감을 줄 수가 있다. 20세기 초반, 어니스트 브래머가 ‘셜록 홈즈의 라이벌’로 창조한 맥스 캐러도스는 시각장애인이다. 단편집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에서는 앞을 볼 수 없는 대신 얻은 탁월한 청력 그리고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의 활약을 만날 수 있다.
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로 시작되는 ‘링컨 라임’ 시리즈의 링컨은 전신마비 상태다. 뉴욕시경 과학수사팀 반장이었던 링컨은 폭발사고 때문에 전신마비가 된 후에도 범죄사건의 자문을 하고 있다. 링컨은 아예 움직일 수 없어 현장을 직접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멜리아 색스 경관이 현장 수사를 대행한다. 두뇌와 육체의 관계로 보이지만 이미 <본 컬렉터>에서부터 아멜리아는 단순히 손발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생각한 것과 경험한 것을 주고받으며 ‘링컨 라임’ 시리즈는 나아간다. 약점을 가지고 있기에 서스펜스도 급증한다.
안락의자 탐정도 일종의 핸디캡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한 약점. 하지만 약점을 능가하는 장점이 있기에 자신감이 넘친다. 엠마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사건집>에 나오는 무명의 노인이나 렉스 스타우트의 <요리사가 너무 많다>의 네로 울프 등등. 안락의자 탐정은 주로 귀찮거나 앞에 나설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현장을 기피하는 것이기에, 소설은 스릴보다 추리 ‘게임’에 집중한다. 현장을 볼 수 없는 독자와 소설 속의 탐정에게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여 누가 먼저 범인을 찾아내는지 겨루게 하는 것이다.
조 올로클린의 파킨슨병은 절대적인 약점이라고 하기 힘들다. 언젠가는 심해질 수 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파킨슨병에 걸린 조 올로클린이라는 캐릭터가 의미심장하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직업을 가진 조는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그들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한다. 거역할 수 없는 병을 앓는 조이기에 더욱 그렇게 된 것도 같다. 조의 절친한 친구이자 퇴역 경찰인 빈센트 루이츠는 생각한다. ‘교수는 비루먹고 길 잃은 영혼을 주워 오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아내인 줄리안이 떠났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애초에 그것 때문에 남편과 사랑에 빠졌겠지만. 그만하면 인생의 비극적인 부조리의 예시로 내세울 만하지 않나?’
<널 지켜보고 있어>에서도 상담을 하러 온 마니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이성적인 관계는 아니다. 마니는 1년여 전에 남편 다니엘이 실종되었고, 사춘기의 딸 조이와 10살의 아들 일라이자를 돌보느라 당장이라도 붕괴해버릴 것만 같다. 남편의 도박 빚 때문에 강제로 몸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조 올로클린은 마니를 도와주려 한다. 그런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마니를 폭행한 포주가 살해되고, 조의 사무실에서는 마니의 의료 파일이 도난당한다. 남편은 실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일까? 그렇다면 마니를 위협하는 자는 누구일까?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저자 마이클 로보텀 | 마이클 로보텀 페이스북
제목에서부터 대강의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 오랜 기간 마니를 지켜보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자가 있다. 다니엘의 행적을 쫓던 빈센트 루이츠는 그가 마니가 과거에 만났던 모든 이들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니엘을 쫓아 마니의 지인들을 찾아간 루이츠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다. 마니를 시기했던 동급생, 그녀를 배신한 연인과 친구 등은 모두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모두 마니가 미쳤다고, 두 번 다시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아마도 스토커의 짓일 거다. 그 자는 과연 누구일까? 언제쯤 정체를 드러낼 것인가.
독자와 게임을 하듯 시종 긴장감 팽팽
미스터리와 스릴러는 독자와 게임을 하는 장르다. 정보를 주면서 추리를 하게 만들고, 어느 정도 가설이 세워지면 다시 기존의 논리를 뒤집는 정보를 제시하고, 다시 뒤집으면서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빨리 사실을 알고 싶어 다음 장을 넘기게 한다. 스토커의 정체를 궁금해 하면서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마니에게 이중인격이 있었던 것이다. 맬컴이라는, 대단히 폭력적인 남자. 그게 사실이라면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포주를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쩌면 스토커는 그저 마니의 마음속에만 있었던 것일까?
마이클 로보텀은 교묘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진짜 스토커가 있을 수도 있고, 마니의 이중인격일 수도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 당장 판단할 수 없다. 진실이 궁금해서 끝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조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자기 경력의 바탕을 두고 있다. 비록 사람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는 쪽이 더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말이다.” 조는 심리학자다. 조가 마니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독자는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사실과 반드시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조가 틀릴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은폐된 과거 때문에 그릇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조의 뇌가 내린 명령을 파킨슨병에 걸린 육체가 거역하거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조 올로클린’ 시리즈는 정신과 육체의 이탈을 겪고 있는 조의 상태를 통해서 현실의 사건과 상황들이 겹쳐지기 때문에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이해하는 것일까. 아니 나 자신은 과연 알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그 모든 오해가 이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지극히 흥미롭고 도발적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