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메이크는 결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작품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파격으로 인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제목 인랑(人狼/The Wolf Brigade)
제작연도 2018년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139분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김지운
출연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개봉 2018년 7월 2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80~90년대는 영화계를 비롯한 근래 문화 전반의 중요한 화두다. 주소비층이라 할 수 있는 세대가 당시를 경험하며 성장한 이유도 있지만 그에 앞서 창작자들 역시 그 시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작품들이 머지않은 과거를 배경으로 선택하고, 그 시절 히트작들을 소환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우리는 앞선 유사 전례들이 남긴 교훈을 익히 체험해 왔다. 아무리 잘해낸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 전편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작품을 즐기고 평가하는 데 있어 냉정하게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게 마땅함에도 불구, 이런 작품들을 어쩔 수 없이 원작과 비교하는 상대평가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불공평한 상황은 애초 인지도에 있어 원작의 명성으로 조금이나마 득을 볼 수 있다는 장점과 동반된 숙명이므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경계해야 할 금기는 아무리 자신 있어도 감히 손대지 말아야 할 신성한 대상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024년 남북 정상은 통일에 전격 합의한다. 이에 외세의 견제가 드세지고 내부적으로 정치·경제적 불안이 증폭되면서 급기야 급진 반정부 무장테러단체인 ‘섹트’가 등장해 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진다. 보통의 경찰조직으로는 심화되는 혼란과 섹트가 주도하는 과격폭동을 제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대통령 직속의 새로운 특수경찰조직 ‘특기대’를 창설한다. 하지만 이들의 무자비한 진압은 또 다른 문제와 시민들의 불만을 초래하고, 각자의 입지를 놓고 반목하던 정보기관 ‘공안부’와 특기대의 대립은 특기대원 임중경(강동원 분)에게 잔인한 운명을 강요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대체역사 세계관의 정점
이번 리메이크는 좀 더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기 위해 원작과 다른 노선을 선택한 흔적들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결말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작품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드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파격으로 인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축적해온 감정의 폭발이 큰 힘을 발휘했던 만큼 근본 없이 닭살 돋는 낭만만 가득하고 그래서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작품의 결말은 더욱 우매해 보인다. 하지만 각색 과정에서의 문제는 결말만이 아니다.
김지운의 작품을 언급할 때 늘 뒤따르는 단어가 ‘스타일’이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폭넓은 작품활동 속에서도 일관된 세련미를 유지한다는 것이 대중과 몇몇 비평가들의 평가이고, 그를 작가로 대접하는 이들이 신뢰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그의 작품 내면에 대한 의문을 꾸준히 동반해 왔다. 과연 그는 자신만의 화려한 스타일로 어떤 이야기를 해 왔는가?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여러 장비와 기술의 조합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의 참여를 의미한다. 외형적 아름다움이란 미술, 세트, 음악 등 전문 협업자들의 재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조력자들을 규합하고 통제해 하나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며 재능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런 시스템을 성사시키는 것은 자본임이 자명하다.
여전히 나아가지 못하는 스타일리스트의 한계
시사 후 기자간담회 시간, 한 기자가 작품 속 등장인물의 ‘눈물’에 관하여 질문을 하자 감독은 ‘신파’라는 의미의 질문이라며 섭섭하단다. 이전까지 자신의 작품들은 매우 건조하게 연출했으며 이번 작품 역시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감독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다. 애초 원작 <인랑>은 한 개인이 군중과 이데올로기 안에서 물리칠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처절한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파괴되고 단절될 수밖에 없는 개인 간의 관계가 동반하는 슬픔의 정서, 즉 신파는 작품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속고 속이며 잡아먹히고 잡아먹는 ‘빨간 망토의 비극’은 인간늑대에게 있어 변할 수 없고 감히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운명이며 이 영화의 주제다.
김지운은 특기대가 뒤집어쓴 특수복과 기관총처럼 원작의 폼 나는 외형에 우선 매력을 느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안에 침잠한 정서의 고귀한 가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이번 리메이크된 <인랑>과 더불어 중견감독 김지운이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근본적 문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케르베로스 사가
![[터치스크린]인랑-1990년대 걸작 애니메이션 외피복제](https://img.khan.co.kr/newsmaker/1288/1288_75.jpg)
원작 <인랑>이 국내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일본 근대사의 혼란과 개인적 성찰을 아우른 영화 자체의 뛰어난 완성도에 기인한다. 하지만 여러 외적인 상황들의 영향도 크다. 199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작된 일본문화 개방으로 이전까지 음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일본영화들이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는 시기였다. 떠들썩했던 우려와 화제에 비해서는 의외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저조한 흥행을 기록했지만, 3차 개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대 일본문화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고, 이러한 현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2000년 9월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사무라이 활극 <무사 쥬베이>가 첫 공식 개봉의 기록을 남겼고, 12월 <인랑>이 개봉했다.
또 다른 외적 요인은 당시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최고의 전성기로 기억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거론되는 걸작의 상당수가 이즈음 만들어지고 공개되었으며 그만큼 폭넓은 관객층의 사랑을 얻어냈다.
<인랑>의 아버지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와 <공각기동대>로 널리 알려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다. 그는 1987년 <붉은 안경>이라는 실사영화를 시작으로 만화책 <전랑전설>(1988)의 대본, 또 다른 실사영화 <케르베로스: 지옥의 파수견>(1991)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가상의 대체역사 세계관을 꾸준히 확장시켰고, 이는 ‘케르베로스(cerberus: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지옥의 문을 지킨다는 개) 사가’로 통칭된다. 그가 원안과 각본을 맡은 <인랑>은 네 번째 결과물이며 이후에도 영화, 소설, 라디오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로 계속 이어졌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