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그 시절이 떠오르다
낮선 그 길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푸른 바람의 시작 푸르른 길 위의 여행
마음이 마음으로 전하는 가난한 노래
도시의 구름 저 편 하늘을 날아가리
먼 어제의 꿈들 다른 시간의 친구
길 위의 작은 노래 꽃을 피우리
먼 어제의 꿈들 다른 시간의 친구
길 위의 작은 노래 푸른 숲이 되리
![[내 인생의 노래] 바드의 <길 위에 자란 숲>](https://img.khan.co.kr/newsmaker/1282/20180618_66.jpg)
‘인생의 노래’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노래를 떠올려보라는 말에 나는 세 노래가 떠올랐다. 그 노래들은 어떤 장면을 품고 있었으므로 노래를 다시 듣고 있자 점점 과거의 그 시절이 되살아나기도 했는데 첫 번째 노래는 바드의 <길 위에 자란 숲>이었다.
나는 몇 해 전 강가에 있었다. 강가에서는 잔치가 벌어졌고 그랬으므로 공연이 열렸고, 하지만 공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무대 근방에서 아무렇게나 행동하며 앉아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노래하고 연주하고 행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 무대의 관람객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면서도 객석인 공터 위에서, 그러니까 밭과 소로와 비닐하우스 옆에 난 공간에서 제멋대로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돌아다녔고 웃고 속삭이고 떠들고 했다. 마치 공연은 배경이라는 듯이, 무대의 공연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들도 저대로 흐르는 듯이, 나 역시 이 풍경 속에 참여해서 춤을 췄다.
그러다가 일순 내 속에서 어떤 정적이 일어서 모든 걸 멈추고 멈춘 후 이 상황과 동떨어져 지켜보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라 나는 다시 그 장면에 복무하며 충실하고자 마음 먹으며 몸을 움직였고 주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강바람이 일고 갈대가 흔들리고 옷깃이 휘날리고 하늘과 구름은 서서히 색과 모양을 바꾸고 있을 때 <길 위에 자란 숲>은 그 풍경의 일부로 흘러나왔던 것 같다. 그건 내 기억 속 일이고 이제 그 공간은 사라졌다. 훗날에는 서서히 변해갈 공간이고 언젠가는 사라질 텐데도 지지난 정권은 억지를 부려 애를 쓰고 떼를 쓰고 기를 써서 그곳을 철거한 후 아스팔트를 깔고 비석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또 다른 노래. 그 노래는 박지윤의 <바래진 기억에>다. 그날 노래는 내 방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학교 뒤 자취방에서 살 때 나는 그날 기말고사 기간인데도 몇몇 수업을 빼먹으며 그러니까 학교에 가지 않고 시험도 치르지 않고 방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눕다가 앉았고 앉았다가 창문을 바라봤던 것 같고 그러다가 다시 누워서 멍하니,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자꾸 어떤 머뭇거림, 라일락 냄새, 카메라, 노랗고 붉은 양말, 점점 희미해져 둘 중 한 명만 기억하는 어떤 것, 새들과 새벽과 고양이, 산책… 같은 것들이 어른거렸고 그걸 신열에 들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럴지도 모르고 여하간 몸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데 머릿속으로 어떤 이미지가 범람하듯이 지속되고 있었을 때 그 노래 역시 배경처럼 흘러들었다.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아름다운 가사를 놓치고 허밍과 흥얼거림으로 갈음해서 음만을 따라 목소리를 내며 한적한 밤에 혼자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즈음의 밤바람과 잘 어울린다.
<안태운 (시인·'감은 눈이 내 얼굴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