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죄>를 쓴 레이미는 현직 경찰학교 교수로 범죄심리학과 수사학을 가르친다고 한다. 현실의 범죄와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레이미의 <심리죄> 시리즈는 기괴한 연쇄살인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근래 중국어권 범죄소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홍콩 출신인 <13.67>과 <망내인>의 찬호께이가 높은 평가를 받았고 대만 작가인 <4번째 피해자>의 천지무한과 <탐정, 혹은 살인자>의 지웨이란, 중국 작가인 <사신의 그림자>의 마옌난과 <사악한 최면술사>의 저우하오후이 등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원작을 영화화한 <길티 오브 마인드>의 한 장면. | (주)코리아스크린
범죄소설 강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영국과 유럽, 캐나다, 드물게는 아프리카의 작품들까지 한국에 소개되었고 인기를 끌었지만 중국어권의 범죄소설은 아직 낯설다. 범죄소설 중에서도 미스터리보다는 액션스릴러가 더 어울릴 것도 같다. 홍콩 누아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하드보일드 혹은 무협지 풍의 액션이 등장하는 스릴러. 그런데 생각해 보니, 고룡의 초류향 시리즈는 일종의 추리 무협소설이었다.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비롯한 무협지에도 비급의 수수께끼나 의문의 살인자를 추적해가는 설정이 유난히 많았다. 정확하게 진실이 가려지지 않는 상황을 던지고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가 많다는 점에서는 중국도 미스터리나 스릴러에서 뒤처질 이유는 없다.
1980년대 이미 일어난 중국 SF붐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이나 강소국으로 잘나갔던 대만에서 범죄소설이 인기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륙은 어떨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범죄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다룰 것인가. 범죄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다루는 방식이나 수사의 형식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 소설인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를 보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연쇄살인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의 악이 반영된 자본주의와는 달리 한 단계 발전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적 모순을 대부분 제거했기 때문에 사악한 범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허튼 소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허무맹랑한 주장도 얼마든지 사회 전체를 옭아맬 수 있었다. <차일드 44>는 연쇄살인범의 존재를 부정하는 상부의 지시를 부정하고 고독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의 이야기였다.
중국 SF소설이 높은 성취를 이룩했다는 것은 휴고상을 받은 류츠신의 <삼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80년대 중국에서 SF붐이 불었다는 류츠신의 말도 있었다. 과학기술의 영역은 체제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반면 범죄소설은 흑백논리와 권선징악으로 일관하지만 않는다면 사회의 모순을 파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체주의가 심했던 개방 이전의 중국에서 사회적 모순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범죄소설이 발전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 레이미의 <심리죄>를 비롯한 중국의 범죄소설을 읽으면 그런 선입견이 깨진다. 완성도나 대중성 모두 서구나 일본 범죄소설에 뒤처지지 않는다.
총 5권인 ‘심리죄’ 시리즈는 중국에서 누계 약 130만부가 팔렸고, 웹드라마로 만들어져 9억3000만회 뷰를 기록했으며, 두 편의 영화로 각색되어 5억2000만 위안의 수익을 올렸다. 이번에 출간된 <심리죄>는 주인공인 팡무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새로운 범죄에 얽히는 두 번째 이야기다. 아직 1권은 나오지 않았지만, <심리죄>를 읽다 보면 과거 사건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대학 도서관에서 동일한 책을 빌린 사람들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팡무가 사랑했던 여인도 죽음을 당한다.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끔찍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팡무는 대학원에서 범죄학을 전공하지만 여전히 악몽에 시달린다. 이유를 알게 되는 것과 실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팡무는 프로파일러로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셜록 홈즈가 그랬듯이 현장을 보고, 연속 범죄의 특징을 파악해서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척척 그려낸다. 팡무는 경찰을 도와 연쇄살인범을 잡게 된다. 학교에서 유명해지고, 그를 좋아하는 여인도 생긴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팡무의 친구와 그의 애인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대학에 관계된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연쇄살인의 목적이 팡무 자신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팡무를 도발하고, 겨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리죄>의 한국어판 표지 | 한스미디어
도발적 사건 제시, 선정적 전개
<심리죄>는 도발적으로 사건을 제시하고 선정적으로 이끌어간다. 그럼에도 허황되지는 않다. <심리죄>를 쓴 레이미는 현직 경찰학교 교수로 범죄심리학과 수사학을 가르친다고 한다. 실제 사건과 수사에 정통한 레이미는 우연히 도서관의 대출카드를 보고 생각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같은 공간을 드나들면서도 다른 접점이 없는 이들을 어떻게 하면 서로 모으고, 관계를 맺게 할 수 있을까? 그 교집합은 이들에게 어떤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인가? 그 발상이 ‘심리죄’ 시리즈의 출발점이었다. 현실의 범죄와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레이미의 <심리죄> 시리즈는 기괴한 연쇄살인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심리죄>를 읽으면서 미국의 범죄 드라마를 떠올렸다. 인간의 심리나 주변 상황을 깊숙하게 파고들기보다 목적이 정해지면 맹렬하게 달려가며 흥미를 북돋우는 스타일이다. 정보를 제시할 때도 늘어지지 않는다. 딱 필요한 정보만을 보여주고, 사건의 구조와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심리죄> 역시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팡무가 지난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과정을 깊이 보여주면서 균형을 맞춘다. 지난 사건에 이어 팡무 자신이 살인사건에 깊숙이 얽혀 들어가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능숙하게 그려낸다. 직선적이고, 영리하다.
<심리죄>를 읽으면서 중국의 다른 범죄소설들이 궁금해졌다. 범죄소설은 단지 ‘범죄’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다. 범죄가 벌어지는 사회,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보여준다. 중국의 범죄를 통해서 다양한 얼굴의 중국을 보고 싶어졌다. <심리죄>는 그 출발점으로 적합한 범죄소설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