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이혼할 뻔>은 취향의 전쟁 이야기다. 각자의 세계가 명확한 부부는 치열하게 서로의 진지를 탐험하고 때로는 공격한다. 하지만 일상에는 별일이 없다. 하지만 취향의 전쟁은 치열할수록 재미있다.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의 한국어판 표지. | 정은문고
21세기는 취향의 시대다. 계급이 취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 선택이 취향을 결정한다. 과거에는 나이, 지역, 계층 등 비슷한 환경에 속했을 때 다른 문화를 접하고 선택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아무런 연고가 없고, 주변 사람들 아무도 관심 없는 문화일지라도 혼자 접하고, 몰두할 수 있다. 만인의 인정보다 개인의 주관적 만족이 더욱 중요해지는 트렌드도 한몫 했다.
하지만 사람은 어울려 살아간다. 함께 어울려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돌입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은 중요하고, 개인의 취향은 절대적이지만 공동의 시공에서는 적절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나의 절친한 벗과 동반자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싫어할 수 있다. 취향을 고수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주장하고 강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만 이해는 필요하다고 다들 생각한다. 함께 생활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의 독서 취향이 전혀 다른 부부
함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부부에게 취향이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벽이다.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SF작가인 엔조 도와 호러소설 대상을 받은 호러 작가 다나베 세이아 부부에게 서로의 취향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큰 책장의 반을 갈라 남편 구역에는 PC 관련, 물리와 수학, 요리와 수예 책 등이 있고 아내 쪽에는 요괴나 저주 관련, 르포르타주, 실화 괴담 등의 책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책을 꽂거나 배치하는 습관도 판이하게 다르다. 식탁 위에서 호러 소설 등 무서운 이미지의 표지를 보게 된 남편은 아내의 고의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의 연재기획이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읽히고 싶은 책을 추천하고, 감상문을 써서 웹에 연재하는 방식이다. ‘내가 읽은 책을 남편이나 아내가 읽는다면 날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남편이 권하는 책은 테리 리슨의 <곰이 불을 발견하다>, 앨리슨 베이커의 <내가 서부로 와서 그곳의 주민의 된 이유> 같은 SF 판타지류의 소설이나 미타니 준의<입체 종이 접기 아트>, 기무라 슌이치의 <연분수의 신비>, 엔리코 모레티의 <연봉은 사는 장소에 따라 정해진다> 등 실용, 경제·경영, 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아내의 책은 스티븐 킹의 <쿠조>와 쓰노다 지로의 <공포신문> 등 자신의 전문분야인 공포에서 나카지마 라모의 <서방용토 간사이 제국의 영광과 쇠락>, 진 마졸로의 <찾아라! 언제까지 놀 수 있는 숨바꼭질 그림책> 등 이건 대체 뭘까 의문이 드는 책들까지 종횡무진 펼쳐진다.
책이나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만인이 좋아하는 책도 영화도 없다. 엔조와 다나베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할 만한 책이라 생각하는 것들도 추천한다. 그런데 묘하다. 부부로서 어느 정도 상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의 취향이라 생각했던 책들조차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취향이란 지극히 미세하고 주관적인 호오의 과정을 통해서 구축되고, 한 번 만들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증축되고 개선된다. 의도적인 과정만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자신의 취향은 계속 다듬어진다. 물론 한 번 취향을 결정해 놓고, 오로지 한 길만 소비하는 화석들도 있기는 하지만.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을 읽으면서, 부부의 서로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즐겁게 경험할 수 있었다. 웹에 자유롭게 쓴 감상문에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왜 나에게 이런 책을? 왜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고 이런 글까지 쓰게 된 것일까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이 생생하게 전개된다. 두 사람이 너무 달라서, 아주 재미있다. 부부의 이해가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을 보면 스릴러 영화의 복선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른 존재들이 어울려 산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그렇구나’ 하는 마음

<책 읽다가 이혼할 뻔> 일본어 원서 표지 | 겐토샤
남편인 엔조 도는 손으로 만지고 실제로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머리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영문을 모르는 존재를 찾아 헤매거나 조우하는 이야기.’ 반면 아내인 다나베 세이아는 현실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를 진행하는 필드워크를 좋아한다. 괴담을 좋아하는 것도 황당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일상에 걸친 무서운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엔조 도의 결론은 이렇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의사가 소용돌이치는 세계라는 말을 할 때 나는 ‘다른’ 부분이 신경 쓰이고, 아내는 ‘다양한’ 쪽에 신경을 쓴다고 봐야 할까… 결국 아내는 마지막까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역시 모르는 상태 자체를 좋아함을 깨달았다.”
서로의 이해를 위한 교차 연재의 과정과 결말을 한마디로 한다면, ‘몰라도 된다’라고 할 수 있다. 엔조 도는 연재의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부부가 서로를 딱히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별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상호 이해가 달성되면 해산’이 돼버리는 가정일지도 몰라.” 단순하게 우리는 ‘서로 달라, 도저히 모르겠어’라며 낙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가 다르고, 다른 취향은 개인의 다른 성격과 사고방식,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다나베 세이아는 연재 초반 엔조가 추천한 렘 쿨하스의 <수영장 이야기>를 읽고, ‘무슨 소리인지 당최 알 수가 없네’라고 말하는 분들은 이 단편을 읽어보라면서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바로 그것이다. 부부만이 아니라 친구나 파트너나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구나’라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이해가 아니라 인정.
<사쿠란> <슈가슈가 룬> <워킹맨>의 만화가 안노 모요코가 안노 히데아키와의 결혼생활을 그린 <감독부적격>도 <책 읽다가 이혼할 뻔>과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었다. 안노 히데아키는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었고, 일본의 오타쿠 4대 천왕의 하나로 손꼽혔다. 엄청난 오타쿠의 취향에 놀라다가,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 오타쿠 성향에 대해서 인정하고, 결국은 그의 취향을 이해는 못해도 인정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은 취향의 전쟁 이야기다. 각자의 세계가 명확한 부부는 치열하게 서로의 진지를 탐험하고 때로는 공격한다. 하지만 일상에는 별일이 없다. 연재를 읽은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냐고 걱정해준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정말, 정말 치열한 트러블이니까. 하지만 취향의 전쟁은 치열할수록 재미있다.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고, 세상에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인정이니까. 위대함을 평가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에게 자신만의 취향이 존재하고 그것이 모여 거대한 문화적 자산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 이렇게나 많은 (취향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경이이고 무한한 즐거움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