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윤상의 <이별의 그늘>-1991년 5월의 잊을 수 없는 기억](https://img.khan.co.kr/newsmaker/1256/20171219_69.jpg)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념과 진영 대립이 끝나가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풍경. 1991년 크리스마스날 저녁, 고르바초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해체를 선언했다. 그와 함께 붉은 광장에 펄럭이던 소련 국기는 내려가고 러시아 삼색기가 올라갔다. 냉전 종식의 대단원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1991년은 온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던 때다. 매일 시위가 있었고, 매일 사람이 죽었다. 매일 거리로 나서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1991년 4월 26일부터 5월 25일까지 11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공권력의 폭력이 시민들의 죽음과 뒤엉키며 더욱 거세져만 가는 동안 성균관대 김귀정양이 시위 진압에 목숨을 잃었다. 전교조 교사 해직을 주도했던 정원식 총리에겐 밀가루 투척사건도 일어났다.
5월 4일 전국 21개 지역에서 열린 ‘백골단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궐기대회’에 20만명, 5월 9일 87개 지역에서 열린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회’에는 55만명, 5월 18일 ‘강경대 장례식’에 81개 지역 40만여명이 참여했다. 나 역시 그 수십만 명 중 한 사람이었다.
죽음과 분노가 극에 달하는 동안 국가는 모든 죽음과 분노를 대신할 대상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스물일곱의 강기훈이었다. 고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쓰고 죽음을 방조했다는 사법사상 유일무이한 방조혐의였다. 이른바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재야운동권을 죽음을 조장하는 패륜집단으로 낙인 찍는 기억의 원형이었다.
‘1991년’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나서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대한 예의> 영화를 상영했다. 1991년부터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2015년 대법원은 강기훈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진범은 국가임이 밝혀졌지만 강기훈은 암에 걸려 있었다. 강기훈은 스무 해를 넘도록 되풀이해야 했던 말들을 멈추고 기타를 들었다. <국가에 대한 예의>는 1991년 살아남았던 또 다른 젊은이들이 봉인해둔 기억을 증언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권경원 감독도 살아남았던 젊은이 중 한 사람이다.
1991년의 거리 풍경 한 구석엔 불법복제 카세트 테이프를 길거리에서 팔던 리어카가 서 있다. 그해 5월, 길과 빌보드의 합성어인 ‘길보드 차트’ 1위를 휩쓸었던 노래는 윤상의 <이별의 그늘>이었다. 길거리마다 늘어선 리어카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지던 그 노래.
“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 난 아주 먼 길을 떠난 듯했어.” 바이올린 선율 속에 불안한 듯 가냘픈 듯 떨리는 윤상의 톤이 너무 잘 어울렸고 감성이 살아있는 최고의 발라드였다. 그 <이별의 그늘>은 아이러니하게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으로 오버랩되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인생 노래가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밝음’은 또 다른 곳에서 희생한 이들이 있기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난 아주 먼길을 떠난 듯했어
만날 순 없었지
한 번 어긋난 후
나의 기억에서만
살아있는 먼 그대
난 끝내 익숙해지겠지
그저 쉽게 잊고 사는 걸
또 함께 나눈 모든 것도
그만큼의 허전함일 뿐
<윤창원 서울디지털대 교수·북한종교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