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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1970~ )

그때는 좋았다
모두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사람들의 말 하나 하나가
풍요로운 국부國富를 이루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말할 권리를 뜻했다
그때는 좋았다
사소한 감탄에도 은빛 구두점이 찍혔고
엉터리 비유도 운율의 비단옷을 걸쳤다
오로지 말과 말로 빚은
무수하고 무구한 위대함들
난쟁이의 호기심처럼 반짝이는 별빛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
희미한 웃음의 분명한 의미
어렴풋한 생각의 짙은 향기
그때는 좋았다
격렬한 낮은 기어이
평화로운 밤으로 이어졌고
산산이 부서진 미래의 조각들이
오늘의 탑을 높이 높이 쌓아 올렸다
그때는 좋았다
잠이 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사람이 사람의 여린 눈꺼풀을
고이 감겨준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지난 시절은 대체로 좋다. 사는 일이 힘겹고 고단했어도 행복했다. 지났으니까. 서로 이해하고 힘내라고 했으니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버겁고 힘겨울 ‘지금’도 훗날 ‘그때’가 될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이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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