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스파이게임
원제 unlocked
감독 마이클 앱티드
출연 누마 라파스, 올랜도 블룸, 토니 콜렛, 마이클 더글라스
상영시간 9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7년 9월 14일
가만히 보자. 이 제목, 이전에도 있지 않았나. 스파이게임.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2002년 영화만 있는 줄 알았는데, 포털 네이버 영화를 검색해보니 리뷰할 영화를 포함해 다섯 편이나 있다. 흔한 일은 아니다. 보통 영화를 구별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제목을 다르게 짓는다. ‘모큐멘터리’의 효시 격으로 이제는 영화학 교과서에도 실린 <블레어윗치>(1999)의 리메이크작의 한글 제목은 <블레어 위치>(2016)다. ‘ㅅ’ 하나로 구분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에 리뷰하는 영화의 원제는 ‘unlocked’, 문자 그대로 자물쇠가 풀린, 비밀해제된 정도의 뜻을 담은 제목이다. 역시 네이버로 검색해보니 비밀해제 같은 한글 영화 제목은 없는데 왜 이렇게 상투적인 영화 제목, 꼭 ‘극장 개봉 못하고 비디오로만 출시된(direct to video)’ 영화처럼 성의 없이 제목을 달았을까. 게다가 등장인물도 무명배우가 아니다. 주연은 <프로메테우스>(리들리스콧·2012)의 여주인공 누미 라파스다. 올랜도 블롬, 존 말코비치, 마이클 더글라스…. 말할 것도 없이 쟁쟁한 배우들이다.
영화의 시작 장면. 영국 런던이다. 테러 하면 떠오르는 런던의 상징물, 런던아이나 빅벤은 신통하게도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해 개봉한 유사한 첩보물인 <런던 해즈 폴른>에서 빅벤을 포커싱 했기 때문? 그건 알 수 없다. 기사를 마무리하며 영화포스터를 다시 보니 두 상징물이 그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안 보이는데?
대신 스케치하는 중국인들. 시끄럽다. 관광객들이다. 그리고 도시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사람들. 중동계 이민자들이다. 영화는 시작 장면부터 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전직 CIA 요원 앨리스 라신(누미 라파스 분)은 파리 테러 대응작전에 실패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은 데 대해 강한 죄책감을 가지고 쉬고 있다. 이주민 지원상담일을 하는 하급공무원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종종 CIA뿐 아니라 영국 정보기관 MI6도 돕고 있다. 그리고 잡히는 테러 징조들. 미국 CIA 유럽지부에서 테러 지령을 전달하려던 ‘메신저’를 신문하는 데 라신을 소환한다. 그런데 뭔가 꼬였다. 미국 본부에서 그녀를 부르기 전에 누군가 중간에서 ‘하이재킹’해 그녀를 끌어들인 것이다. 이 ‘음모’는 누가 꾸민 것일까. 누가 CIA의 접선연락망을 깨고(unlocked) 들어온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1급 배우들을 데리고 들어와 말아먹고 있다. 너무나 상투적인 스토리와 플롯은 보고 있는 관객들을 심드렁하게 한다. 이 ‘게임’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끼어들어와 앉아 있는 잭 올커드(올란도 블롬) 캐릭터는 채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내기 전에 이야기에서 퇴출된다. 그래도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꽃미남 요정 레골라스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낸 점은 박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인종주의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는 고색창연하고 비루해 보이는 ‘내부의 악’을 등장시킨다. 그래, 나쁜 놈들은 역시 조작을 위한 조작을 하는 관료조직이었어라고 대충 넘기기엔 돌이켜보면 무리수다. 일단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누군가 닥치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음모를 감당하기엔 ‘작당질’에 가담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설마 앨리스 라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성 첩보물 시리즈의 1편으로 이 영화를 만든 것일까. 말리고 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