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이 지난해 11월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선조 8~23년(1575~1590년) 당쟁이 격화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 책이 나올 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었다. 조선의 당파싸움이라는 부정적 소재를 다룬 책을, 지식인이 아닌 나쁜 사람이 나쁜 정치를 한 것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가 끓어오를 때 낸 것이다. 새 정권 출범을 앞둔 2017년 5월 이 연구위원이 ‘타이밍 나쁘게’ 던진 질문을 다시 끌어올릴 때가 됐다.
지난달 25일 JTBC와 한국정치학회 주최로 열린 4차 TV토론에서 대선후보들은 ‘닮고 싶은 역사 속 인물’을 묻는 질문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고 모두 조선시대 인물을 꼽았다. 정도전(심상정), 정약용(유승민), 세종(문재인·안철수 후보)이 그 대상이었다.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인물”(심상정), “민초의 고통을 헤아리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능력”(유승민), “백성들에게 의견을 묻고 정책을 추진하는 소통 능력”(문재인), “장영실 등 능력에 따른 인재 발탁”(안철수)이 각각 이유였다. 홍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다. ‘좋은 리더’가 ‘좋은 정치’를 만든다는 상식적 신념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사에 대한 통념도 드러난다. 고려 말~세종 대로 이어지는 여말선초(麗末鮮初)와 18세기 정조의 시대는 대중들에게도 친숙하다. 인기 사극 상당수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뛰어난 군주가 태평성대로 이끈 시대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300년은 군주는 무능하고 신하는 당파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한 시대로 이해된다. ‘좋은 리더’를 갈망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여말선초와 정조 시대의 사이 ‘인기 없는 시대’의 사료를 20년 넘게 탐독하고 있다. 2004년 고려대에서 대동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역사비평사·2010년).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들>(역사비평사·2013년)을 출간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너머북스·2016년)는 세 번째 책이다. 세 권의 책 모두 과거의 인물과 사건을 충실하게 복원하는 것에 집중한다. 현대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명을 듣다보면 현재의 정치가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다. 순도 높은 성실성과 진지함으로 ‘인기 없는 시대’에서 사회를 운영하는 보편적 원리를 끄집어내는 역량 때문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대동법은 조선 건국처럼 스펙터클한 재미는 없지만 성공한 개혁이었다. ‘붕당’은 그저 이미지가 나쁘다. 이 주제로 책을 낸 계기는 무엇인가?
“첫 번째 책은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한 학술서였다. 두 번째 책은 대동법 추진과정을 사람을 중심으로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주변사람들에게 선물도 좀 하면서 내가 뭐 하고 사는지는 알려주려고 썼다. (웃음) 한 신문에서 두 번째 책 서평 제목으로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제목을 달았다. ‘왜 당대의 훌륭한 지식인들이 대동법 같은 개혁정책을 반대했는가?’ 그런 궁금증을 담은 질문인 것 같다. 이 책은 신문사에서 던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조선 선비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추적하다보니 시대가 올라갔다. 5월의 광주, IMF 외환위기, 세월호 사건 같은 것이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들을 추적한 끝에 나름 한 권의 책을 낼 때가 되니 그냥 그 시점이었다. 핵심은 갈등이 도덕의 이름으로 전개됐다는 점이다. 도덕에 대한 열망이 가장 높았고, 누구도 원치 않았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 책에서도 사림의 실패, 개혁의 실패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무엇의 문제일까?
“리더십의 문제다. 리더십의 문제 역시 선악의 문제로 이해돼선 곤란하다. 붕당이 발생한 선조 초의 특징은 ‘리더십’의 공백상태였다. 이것은 앞 시대의 정치적 파행과 관련이 있다. 조선의 관료는 크게 ‘언관(言官)’과 ‘대신(大臣)’으로 나뉘어 있다. 언관은 비판기능을 담당하고, 대신은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언관으로 입문하고, 지방관을 거친 뒤 나이가 들어서는 대신으로 출세하는 것이 조선시대 관료들의 엘리트 코스였다. 언관과 대신이 긴장관계에서 균형을 잡아야 국정이 잘 돌아간다. 헌데, 선조 대에는 대신의 권한이 무척 약했다. 이 시기 젊은 언관들은 평생 제 역할을 통해 존경받고 권위 있는 대신을 본 적이 없었다. 선조 이전 중종과 명종 때 반정공신들과 외척이 집권하면서 국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됐던 탓이었다. 사림들은 훈척들의 부도덕을 비판하며 정계에 입문했고, 그 결과 몇 차례 대규모로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사화’다. 이런 사건을 50년 동안 겪다보니 조정에 존경할 만한 대신들은 사라진 반면, 시비와 원칙에 민감한 비타협적 지식인들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치다’는 인물평이 많다. 이이는 민생, 국방개혁을 위해 타협을 중재하다 이 비타협적 지식인들에게 구신(舊臣)으로 몰려 낙향해야 했다. 이이가 추진하던 민생, 국방개혁은 중단됐다. 뒤늦게 선조가 국방문제의 시급성 때문에 등용했으나 급사했다.”
- 개혁이 중단됐을 뿐 아니라 지배권력 사이에 증오가 재생산됐다.
“사림들은 개별 인물들에 대한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하더니 또 서로를 ‘소인’으로 규정하며 갈등이 격화된다. 선조는 이 상황에 책임을 지는 대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책임은 지지 않았다. ‘기축옥사’(1589년 동인이던 정여립이 난을 일으킨다는 밀고를 계기로 수사가 진행되며 동인 측 선비 1000여명이 죽거나 귀양가는 등 화를 입은 사건)라는 비극적 사건을 거치며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원한관계로 치달았다. 붕당 형성 초기 동인이 서인을 ‘소인’으로 규정하자 구신들이 동인과 결합하면서 이들의 책임이 면제된다. 언관들은 대신을 탄핵할 권한이 있지만 직급이 낮아 실제 권력은 약하다. 동인과 결합한 구신들이 젊은 언관들의 실제 권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도덕적 확신에 찬 사림은 결국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磁場)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 조선판 적폐 청산 혹은 과거사 청산과 그 실패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청산이란 과거의 시스템을 대신해 새로운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지 과거의 시스템을 없애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은 무조건 일을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리더를 갖다 앉히면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고 탄핵했다. 과거가 청산됐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하지만 시스템은 없어지지 않는다. 부정적 과거가 내려오는 방식이다. 누구도 입증할 필요가 없는 도덕적 옮음은 갖고 있지 않다.”
- 적폐 청산이냐, 통합이냐는 다음 정권에도 던져진 중요한 질문이다. 무조건적 청산이 개혁을 보장하지 않지만 무조건적 통합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배우는 성공한 개혁의 조건은 뭘까.
“역시 리더십의 문제다.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세력이 필요하고, 세력을 만들려면 정치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 개혁이 성공하기까지에는 네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해결책은 모르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 지방 차원에서 소규모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는 단계, 실험 결과와 데이터 중 유의미한 것을 뽑아 표준화하고 이론으로 만드는 단계,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이론을 정책으로 책임 있게 만드는 단계. 이 단계들을 수행하고 이어가는 것이 리더십이다.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는 대동법 실현과정에서 각 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을 선정해 추진과정을 그린 것이다. 인조 대에 대신 김집은 대동법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김육을 신뢰해 찬성으로 돌아선다. 이런 종류의 리더십이 개혁을 성공시킨다. 이런 리더십은 제도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고 또 이이의 좌절에서 보이듯 개인의 의지만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라 ‘사안’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전제가 돼야 리더십이 생겨날 수 있다.”
- 선명한 도덕적 경쟁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책경쟁이 결국 나라의 운명도 구하고 선비들도 원한과 보복의 사슬에서 구제해 살아남도록 한 길로 봤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대체 뭘까.
“관행이라고 하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본다. 부패 문제가 있으면 주로 관행과 연결된다. 그런데 관행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순간 다수의 사람들이 하게 되는 행동방식이다.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현실성을 놓쳐선 안 된다. 대동법도 핵심은 세금을 현물로 납부하지 못하니, 농민은 관아에 쌀로 납부하고, 관아가 그 쌀로 관과 결탁한 상인들에게 현물을 사서 중앙조정에 납부하던 ‘관행’에서 출발했다. 법안의 현물 조항을 폐지하고 처음부터 쌀로 내도록 일원화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간상인들이 낄 자리를 대폭 줄여 세금부담 자체를 줄였다. 이런 개혁이 급진적이지 못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실제로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케이스들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 국내 대동법 박사 1호다. 주목받지 못하던 주제를 오래 공부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고민에 빠졌었다. 이미 흘러가버린 사실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꼭 알지 않아도 되는 ‘기호품’ 같은 사실들을 붙잡고 5~10년씩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가 있을까.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지식인들은 있었을 것이고, 그런 지식인들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무작정 조선왕조실록을 쭉 읽기 시작했는데, 200년 분량쯤 읽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구체적 정책이 눈에 들어왔고, 나중에는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하는지, 국가 운영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는 ‘제도’와 ‘가치’를 탐구하게 됐다. 무엇이든 지금의 고민을 담은 연구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후학 연구자들에게도 믿음을 주고 싶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