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로부터 탄핵 받고 역시 검찰의 직접수사를 받았으며 결국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구속까지 되었음에도 텔레비전 생중계로는 악에 받친 듯 프로파간다의 소음으로 군가들이 들려온다. 그것이 실로 우울한 것이다.
지금은 외부 활동이 뜸하지만 한때는 정통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날카로운 시선과 특유의 일그러진 냉소로 번득이는 비평을 썼던 이재현이 오래 전에 쓴 글이 생각난다. 문화는, 특히 음악, 그 중에서도 노래는 귀로 들려오는 게 아니라 몸으로 스며든다는 것이다.
이재현은 이렇게 썼다. 무슨 모임을 끝내고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그 당시 풍습대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아직 술기운이 번지기 전이므로 안치환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노래방이라도 가게 되면 술기운에다 노래방 특유의 분위기에 의해 저마다 마음속에 저장해둔 노래를 부르게 된다. 송창식이나 양희은이나 김광석의 노래가 아마도 선택될 것이다. 그렇게 어울려 노래하고 마시고 돌아오다 보면 이윽고 몸속 저 깊은 기억의 골짜기에 스며든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남성의 경우 대체로 군가나 ‘새마을노래’나 트로트를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태극기 집회에서 들려오는 군가나 새마을노래는 한국 사회의 정서적 퇴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슬픈 노래'다. 3월 1일 광화문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 모습. / 연합뉴스
독재정권 시절 숱하게 불렀던 노래
실제로 그러한가? 과연 그러하다. 나는 그것을 지난 3·1절 광화문 일대에서 체험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결정 심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래서 광화문 일대는 지난 겨울 내내 탄핵을 요구해온 촛불집회와 이에 반대하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헌재의 결정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두 집회 모두 팽팽한 긴장으로 맞선 상황이었다. 나는 태극기를 흔드는 집회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확인해 보기 위해 이순신 동상 아래쪽으로 걸어가려 했으나 두 가지 이유로 포기해야 했다. 경찰의 차벽이 광화문 네거리를 막고 섰는데, 그 너머로 태극기 집회가 바짝 올라와서 진행되고 있었다. 건너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건너가지 않아도 그쪽에서 넘어오는 온갖 구호와 노래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엄청난 데시벨로 울려퍼지는 노래 때문에 같이 걷던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도 어려웠다. 몸은 촛불집회의 장소에 있지만 압도적인 데시벨로 밀려드는 소리에 의하여 흡사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내 몸속 어딘가에 저장된 오래된 노래, 저 독재정권 시절에 숱하게 들었고 군생활 때도 자주 불렀던 노래를 나도 모르게, 따라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침략의 무리들이 노리는 조국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이으랴
남북으로 끊어진 겨레의 핏줄
내 이성은 그 노래를 가로막고 있었으나 내 몸은 그 노래를 따라하고 있었다. 후렴구의 가사, 즉 “아아 피땀 흘려 싸워 지킨 그 얼을 이어 전우여 굳게 서자 내 겨레를 위해”는 내 몸이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츰 이성을 되찾고, 그 노래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런 노래보다 더 슬픈 노래는 없을 것이다. 20세기 중엽에 일시 중단된 전쟁의 그늘이 21세기 초엽의 한반도에 여전히 드리우고 있음을 그 노래들이 확인시켜 준 셈인데, 더 슬픈 것은 그것이 이성적인 장소이거나 이해할 만한 상황의 소산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는 관점에서 참여한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이 집회에 참석하여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 사람들에 대하여 “이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은 그 무슨 ‘강철대오’니 ‘투쟁조직’이니 하는 전체주의적 규율에 매여 거리로 나온 ‘떼‘나 “패’가 아니다. 그야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깨어나 걸어 나온 개인들이다. 이게 자유-민주-공화의 자산”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실제 상황을 고의적으로 왜곡하여 읽은 섣부른 역설에 불과하며 이후 전개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과 대한민국 검찰의 소환조사,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31일 새벽 3시의 상황, 즉 대한민국 법원에 의한 박근혜 구속 결정이라는 법치적 진행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상적 수사일 뿐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 노래들은 한동안 쉼없이 울려 퍼지면서, 이 나라의 퇴행적 정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런 경우를 지난겨울에 파주의 임진각에서도 생생히 느낀 바 있다. 분단의 상징적 장소인 임진각 일대는 평화누리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크고 작은 조형물들이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의외의 형상으로 방증하고 있었다. 특히 2015년 12월 조성된 ‘평화의 발’ 조형물은 평화누리라는 이 일대의 명칭마저 무색케 하는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해 8월 4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때 다리를 잃은 김정원·하재헌 중사를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효성그룹이 제작지원을 한 이 조형물에 대해 군당국은 “통일과 분단을 상징하는 임진각에 평화의 염원을 표현하는 발걸음이며 동시에 북한의 도발을 강조하기 위한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임진각에 조성된 섬뜩한 ‘평화의 발’한
그 뜻은 소중하고 또한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러나 그 형상은 섬뜩했다. 절단된 신체, 잘려나간 발목. 더 이상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차마 마주 보기 어려운, 너무나 즉물적이고 노골적인 형상이다. 전쟁과 분단, 그 이후 전개된 남북한의 긴장과 특히 남한의 사회 상황 전개과정을 두루 생각한다면 이토록 직접적으로 2m 크기의 황동 재질로, 절단된 신체 그 자체를 노골적으로 조형화하는 일은 삼갔을 것이다. 그렇게 직접적인 형상으로 재현하기에는 두 군인의 상처가 참담하고 이 나라의 전쟁 이후 분단상황이 처참하면서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는 “두 하사의 다리가 절단된 내용을 알고 본다면 성급했던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상처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상처 부위와 고통의 실재를 엄청난 크기로 재현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더불어 이 기사는 제막식에 의족을 한 군인을 초청했어야 하는가 의문까지 제기했다. 2m 크기로 확대된 잘려진 발목을 직접 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주의했어야 한다. 이듬해 4월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한 군사전문가 김종대씨는 당시 제막식 소식을 접하고, 다양한 정보를 심도 있게 판단한 끝에 “군의 성의 없는 치료와 치료비 지원 행태를 겪은 군인과 그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썼다. 평화누리 입구에 서 있는 조형물을 지나 임진각 쪽으로 가면 그야말로 분단의 현황을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판문점으로 이어지는 철로를 중심으로 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잇대어 구성된 조형물과 녹슨 기관차와 각종 군사시설물이 쌀쌀한 바람 사이로 전개되어 있다.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30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설운도가 부른 <잃어버린 30년>이다. 군가만큼 내 몸속 깊이 스며들지는 못했지만, 이 노래 또한 내 몸속 어딘가에 묻어 있었다. 뒷부분의 가사는 분명치 않지만, 쉼없이 반복하여 울려퍼지는 이 노래의 도입부, 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는 금세 내 입에 달라붙었다. 이 상흔들, 이 처참한 기억들을 누가 과연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몸속에 배어 있는 노래라고 해서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3월 31일 새벽에, 텔레비전 생중계를 보면서 쓰는 중이다.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구속 결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서울구치소로 이동하는 생중계 말이다. 이에 반대하는 일부 지지자들이 틀어놓은 확성기의 군가 소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들려온다. 상상을 초월하는 국정농단과 엄청난 부정부패로 법치국가의 최고 기관인 헌재로부터 탄핵 받고 역시 검찰의 직접수사를 받았으며 결국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구속까지 되었음에도 텔레비전 생중계로는 악에 받친 듯 프로파간다의 소음으로 군가들이 들려온다. 그것이 실로 우울한 것이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