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크림슨 「아일랜드」-번민의 10대에 버팀목이 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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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킹 크림슨 「아일랜드」-번민의 10대에 버팀목이 돼주다

사람 머리 위로 굵고 푸른 나무가 우뚝하니 서 있는 풍경. 그 너머엔 ‘뵤뵤’ 맴도는 들무새와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떼들. 철따라 춤추는 달과 별의 밤하늘도 사람 머리 위로 펼쳐지는 신비로운 풍경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비행기, 그리고 까마득한 저편 우주선의 소식들. 어린 시절부터 궁금해 하고 사모해 왔던 꿈세계.

배리 젠킨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트>에서 가여운 흑인 소년의 어깨 위로 푸른 달빛이 반짝거리는 걸 보았다.

프로그레시브 아트록의 선구자 킹 크림슨. 그들의 1971년 음반 <아일랜드>에는 안드로메다 핑크 빛깔 성운이 어둠 속에서 글썽거린다.

색소폰과 오보에, 그리고 재즈 형식으로 빗금을 긋는 피아노 탄주, 전자음과 엉키는 현악기들, 잔잔하게 종알거리는 보컬과 쟁그렁거리는 기타 선율. 바닷물만큼 짜고, 피조물만큼 정교한 연주가 시종 이어지던 음반.

록그룹 들국화 멤버 전인권과 허성욱의 프로젝트 음반 <머리에 꽃을>의 그 히피 세계의 발랄한 꽃무더기 노래와는 사뭇 다른 것은 이 한가롭고 쓸쓸한 연주와 처연한 보컬이 제목에서처럼 섬, 항해사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꽃 대신 ‘머리에 별을’ 아로새겨준 노래. 나는 순례자의 이름 ‘떠돌이별’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였다. 떠돌이별은 딱히 별자리가 없는 여행자 유성을 가리킨다. 섬과 섬을 오가는 외로운 항해사랄까.

그러다 무인도에 갇히게 된 날, 발전기를 돌려 간신히 듣는 한두 곡의 노래를 꼽으라면 킹 크림슨을 꺼내들지 않을 수 없으리라. 고립무원의 고독과 허허로움을 달래줄 외계의 타전. 지구별도 우주 속에서 하나의 섬인 것이 분명하다.

안드로메다 성운 어디에 우리를 닮은 오래전 문명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섬과 섬, 별과 별을 오가는 항해사들이 노래하는 걸 엿듣는다는 건 진실로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겠다.

행성 탐사의 난제를 해결했던 천체과학자 칼 세이건의 역작 <코스모스(Cosmos)>를 읽어보았는가. 시방 보이저호는 태양권계를 넘어 인류의 대항해(Epic Voyage)를 계속하고 있다. 보이저호의 사운드 트랙이랄까. 천체망원경으로 찍은 성운 사진이 담겨 있는 책을 보면서 내내 이 음악을 끼고 들었다.

“내 섬으로 고요히 바람이 불어오네. 파도는 내 섬에서 모래를 가져간다네. 한주먹씩….”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노래였고, 훗날 여러 버전의 재킷으로 발매된 음반들을 알아내 차례차례 그러모았다.

노래 덕분에 나는 깊고 따뜻한 밤과 우주, 행성 간 항해사들과 인연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번민으로 10대를 보냈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음반. 신학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헨델의 <메시아>나 바흐의 <칸타타>가 아닌 킹 크림슨의
<아일랜드>를 눈을 감고 오래오래 감상했다.

Formentera Lady(포르멘테라 섬의 여인), Sailor’s Tale(항해사의 이야기), The Letters(편지), Ladies Of the Road(길의 여인), Prelude Song Of The Gulls(갈매기 울음소리), Island(섬)….

어느 곡 하나 예사로운 게 없고, 눈물겹고 서늘하지 않은 사운드가 없다. 하늘을 우러르게 만드는 음악은, 음반은 지상에 그리 많지가 않다.

<임의진 (시인·월드뮤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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