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개그맨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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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진지한 개그맨의 세계

불꽃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1만3000원

현직 개그맨이 쓴 소설이 아쿠다가와상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광고효과는 확실하다. 아쿠다가와상은 문학성이 높은 것에 반비례하여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불꽃>은 무려 260만부 넘게 팔렸다. 이전 수상작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131만부를 훌쩍 뛰어넘었다.

개그 콤비 ‘피스’의 멤버인 마타요시 나오키는 유명한 독서광이다. 1999년, 고교 졸업 후 바로 개그에 뛰어들었고, 10여년의 무명 시절 헌책방을 다니며 엄청나게 책을 읽었다. 고서점 거리를 하도 드나들어 서점 주인들과 함께 ‘진보초의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압축된 언어로 촌철살인의 농담을 해야 하는 개그는 시와도 비슷하다. 한 하이쿠 시인의 제의로 함께 시집을 두 권 내고, 창작 사자성어 모음집을 내고, 서평집과 수필집을 냈다. 그리고 단편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2012년 문예지에 두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불꽃>은 2015년 발표한 첫 장편이다. 독서광이어서 인기 개그맨이 된 것일까? 아니면 개그맨이 독서도 열심히 해서 더욱 인기가 좋아진 것일까. ‘책은 생활에 직접적으로 반영된다’는 마타요시의 말처럼, 그의 독서와 개그를 떼어놓을 수는 없다.

무명 개그맨 도쿠나가는 불꽃놀이 행사에 나갔다가 선배인 가미야를 만나게 된다. 불꽃놀이에 정신이 팔려 관심도 없는 청중에게 가미야는 맹렬하게 독기어린 농담을 던진다. 그 모습에 빠져든 도쿠나가는 가미야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가미야는 천진하다. 일상이나 생활은 안중에도 없다. ‘아름다운 세계를 깨트리는 것이야말로 웃음’이라는 신념으로 돌진한다. ‘유일한 방법은 철저히 바보가 되어서, 감각에 솔직하게 재미있느냐 아니냐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돼. 다른 사람의 의견에 좌우될 거 없어.’ 자신의 신념에만 충실한 가미야는 언제나 무명이었고, 세상을 의식하는 도쿠나가는 조금씩 인기를 얻게 된다. ‘참된 지옥이란 고독 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가미야씨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내 눈에 세상이 비치는 한, 거기서 도망칠 수는 없다. 나 자신의 이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또한 세상의 관념과도 싸워야 한다.’

<불꽃>은 개그맨의 세계를 정면에서 그린다. 웃음이란 무엇인가. 왜 무대에서 바보 같은 말과 표정을 지으며 떠들어대는가. 일본의 개그는 콤비 개그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장세팔과 고춘자 만담처럼 둘이서 주고받는 스탠딩 개그다. 요시모토 흥업 같은 연예기획사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작은 무대에 올라 검증을 하고 서서히 인기가 좋아지면 TV에도 출연하게 된다. 끝까지 가는 건 극소수다. 사람들을 웃기면서, 그들은 처절한 경쟁에 시달린다. 살아남기 위해서.

‘온통 리스크뿐인 무대에 서서 상식을 뒤엎는 것에 전력을 다해 도전하는 자만이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마타요시는 개그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태도가 보여서 <불꽃>은 감동적이다. 심사위원인 시마다 마사히코의 말처럼 내부 정보를 써먹을 수 있는 것은 한 번뿐이겠지만, 그래도 마타요시가 만들어낸 도쿠나가와 가미야는 너무나 정이 간다. 너무나 어리석게 진지해서.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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