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망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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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헌(1952~ )

[…]

누구 보고 있나요.
사슴도 숨어 산다는 녹은리 청정한 숲
주검을 뒤집어쓰고 총알을 피하며
흘러드는 핏물 마시며 나흘을 버텼다는 아수라장을,
그 누가 보고 있나요.

[…]

누가 말하고 있나요.
아버지 등에 업혀 피란하던 아들이 쓰러지고
시어머니 등에 업혀 칭얼대던 어린 딸이 쓰러지고
아들을 품에 안고 총알받이 하던 어머니가 쓰러지고
포탄이 날아와 할머니 시신조차 날아가고
눈앞에서 오누이가 즉사하는 무서운 역사를,
누구에게 전하고 있나요.

[…]

영문 모르고 시름하시는 300여 영혼들이시여
새파랗게 맺힌 한 푸시옵소서.
망초꽃 꽃상여 삼아
쌍무지개 굴다리 너머로 보내드리오니
칠월 때마다 강림하시어 흠향하시옵고
이 땅의 사랑과 평화 지켜주소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 동안,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는 미군에 의한 양민집단학살이 자행됐다. ‘사슴이 숨어 있는 마을’이라고 해 ‘녹은(鹿隱)’이라 불렸던 노근리(일제강점기 때 노근리로 바뀌었다)에서 피난민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시인은 ‘흘러드는 핏물 마시며 나흘을 버텼다는 아수라장’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영혼들을 위로하면서 ‘이 땅의 사랑과 평화’를 부탁한다. ‘칠월 때마다 강림’한 망초꽃이 가득한 들판이 들썩인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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