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 그린 박수근과 황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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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암울함을 자연관에 입각한 정신으로 풀어내 그 어떤 화가들보다 한국적인 독창성을 일궜다는 평을 받고 있는 박수근 화백(1914~1965)은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화폭에 심었다.

박수근이 유독 애착을 가진 것은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나와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 할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 가까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박하며 절절한 생의 리얼리티는 박수근이 지향한 예술세계였다. 그런 점에선 ‘광부화가’로 불리는 황재형도 박수근과 닮았다. 한 시대 보통사람들의 삶의 전형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 질곡의 시대를 힘겹게 걸어가는 고단한 이들을 품는 자비적인 태도와 채록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황재형, 흙길, 112x162cm, 1998 초겨울, 캔버스에 흙과 혼합재료

황재형, 흙길, 112x162cm, 1998 초겨울, 캔버스에 흙과 혼합재료

실제로 작가 황재형은 현실의 하중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버둥거리며 살고 있는 우리의 초상을 그림 속에 녹여냈다. 민중 내부로 들어가 보고 느낀 삶의 주름과 무게를 퍼뜨렸고, 산업화 이면에 놓인 고독한 노동의 모습, 소외 받는 서민들의 현실, 자본주의가 낳은 비인간화를 직설적으로 파전함으로써 인간의 실존과 해방을 말했다.

그것은 관조자의 자세가 아닌, 비관과 좌절이 부유하는 세상의 끝자락에 직접 몸을 의탁한 채 더 이상 갈 데 없는 이들의 치열한 생을 사실적으로 위로하고 보듬는 선의의 언어였다. 한편으론 현장의 중요성을 알리는 보고서이자 어디에도 누울 곳 없는 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러길 어느새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긴 시간의 흔적은 최근 ‘박수근미술상’ 최초 수상자라는 영예의 꽃으로 만개했다.

황재형, In my heaven, 91x116.5cm, 1997 겨울, 캔버스에 유채

황재형, In my heaven, 91x116.5cm, 1997 겨울, 캔버스에 유채

지난 4월 20일 발표된 제1회 ‘박수근미술상’은 박수근 화백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박수근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이 제정했다. 심사위원단은 33명의 후보를 놓고 오랜 토의 끝에 황재형을 수상자로 선정했으며, 그의 작품에 대해선 내적 가난함에 시달리고 엄혹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매우 현실적인 관점 아래 감동적으로 조형화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황재형은 겸손하게도 “나보다 더 노력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말로 미술계 이면에서 삶의 진실을 향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세계를 걷고 있는 여타 작가들에게 수상의 몫을 돌렸다. 몇몇 인터뷰를 통해 ‘박수근미술상’은 우리 땅에서 우리 삶의 서사를 묵묵히 그려내고 있는 이들에게 돌아갈 공동의 모가치임을 강조했다.

허긴, 그의 말마따나 시대가 변해도 예술의 본질, 땀의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작가들은 적지 않다. 김구림·이승택 등 변함 없는 창작의지로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작가들, 힘들지만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는 김승영·노순택·임흥순·박승예·조해준·장지아·디황·이갑철과 같은 ‘포스트 박수근’ 역시 곳곳에 포진해 있다. 물론 황재형도 그 중 한 명이다.

황재형의 수상은 상업주의에 물든 채 돈만 좇는 미술세태에서 참된 예술과 예술가란 무엇인지 몇 번이고 곱씹게 한다. 예술이란 어쩌면 모진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거칠고 험악한 현실의 광풍 속에서도 한 줌의 기대와 바람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그릇이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실현이야말로 생전 박수근이 원했던 예술의 가치와 맞닿는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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