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트여객기 보잉747, 여행지도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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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보기의 취항은 단순히 비행기가 커졌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륙 간 항공여행의 보편화와 대중화를 의미했고,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보잉747을 매개로 하여 다른 나라를 체험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잉747은 테크놀로지의 아이콘을 넘어 문화와 역사의 아이콘이 됐다.

요즘 인천공항은 고속버스터미널 이상으로 붐빈다.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전 세계의 온갖 행선지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 이제 항공기는 대중교통수단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인 1989년 이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업무나 유학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외여행은 가기 힘들었으며, 여권도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단수여권이 발급됐었다. 누가 외국에 나가면 직계가족뿐 아니라 친척들까지 공항에 송영을 나갔던 게 당시의 풍경이었다. 학생들도 바람 쐬러 휙 하고 외국에 여행 다니는 요즘 대형 제트여객기는 전국민의 생활필수품이 돼버렸다. 해외에 가는 데 제트 여객기를 타지 않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트 여객기는 프로펠러 여객기와도 차별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요즘의 프로펠러 여객기 엔진은 구닥다리 피스톤 엔진이 아니라 속은 제트 여객기와 똑같이 터빈이 있고, 거기서 발생되는 강력한 배기가스의 추력으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터보 프롭 방식이지만, 이런 사연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베트남 같은 데서 프로펠러 여객기를 타면 구식 비행기를 탔다고 불평을 하곤 한다. 프로펠러 여객기는 거리 1000㎞ 내외의 국지적인 비행에 많이 쓰이고, 대륙 간 이동에는 대형 제트 여객기가 필수적이니 두 테크놀로지는 확연히 구분된다. 사업이든 유학이든 신혼여행이든 대부분 대륙을 넘는 비행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형 제트 여객기가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다. 보잉747의 대당 가격이 3000억원쯤이니, 생활필수품 치고는 상당히 고가인 셈이다. 보잉747은 항공여행의 지형도를 대폭 바꾼, 아주 중요한 생활필수품이다.

파리의 르부르제 공항에 있는 항공박물관에 전시된 에어프랑스의 보잉747. 엔진이 착륙 직후 역추진장치를 작동시킨 상태로 돼 있다. 무거운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제대로 정지하려면 엔진의 분사방향을 거꾸로 바꿔주는 역추진장치를 써야 한다.

파리의 르부르제 공항에 있는 항공박물관에 전시된 에어프랑스의 보잉747. 엔진이 착륙 직후 역추진장치를 작동시킨 상태로 돼 있다. 무거운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제대로 정지하려면 엔진의 분사방향을 거꾸로 바꿔주는 역추진장치를 써야 한다.

1972년 국내 첫 도입 미주노선에 투입
1969년 보잉747이 미국 시애틀에서 첫 비행을 했을 때 그것은 항공 역사에 새 장을 여는 것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보잉747은 1500대 이상 생산되어, 대형 여객기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보잉747보다 훨씬 큰 에어버스 A380이 2005년에 나타났지만(A380의 최대이륙중량은 590톤, 현재까지 160대 생산됐다), 보잉747은 여전히 여객기의 베스트셀러 노릇을 하고 있다. 전 세계의 여객기 시장이 보잉과 에어버스로 양분돼 있는 지금 보잉747은 에어버스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계속 새로운 모델을 내놓고 있는 보잉의 플래그십 모델, 즉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항공은 1972년 10월에 보잉 747-2B5를 처음 도입해 미주 노선에 투입했는데, 서울~도쿄~호놀룰루를 경유하여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장거리 노선의 비행시간은 총 17시간이었다. 1972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해 7월 4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어 통일 분위기를 대폭 끌어당긴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에 갔다 왔다는 발표를 했을 때 전 국민은 정말 놀랐다. 이는 남북한 당국이 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에 대해 합의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월 17일 정치활동과 언론 및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두는 소위 10월 유신이 시작됐다. 그 해 겨울 실시된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91.9%, 찬성률 91.5%라는,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해괴한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박정희는 제8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보잉747은 이런 스산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한국에 도입됐다. 아마 당시 보잉747을 탈 수 있었던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들과 정부 관료 등 지극히 제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보잉747을 처음 타본 것은 1989년 생애 첫 해외여행 때였다. 그전까지 사진으로만 보고 플라스틱 모델로만 접하던 유나이티드 항공의 보잉747이 김포공항 출국장에 우아하고 긴 날개를 펼치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필자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엄격한 보안 때문에 출국장에 들어서기 전에는 활주로나 비행기의 모습을 일절 볼 수 없었던 김포공항이었기 때문에 출국장에서 처음 대면한 보잉747의 모습은 더 감동적이었다. 1970년대에는 송영대가 있어서 송영객들이 활주로와 계류장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떠나는 승객들을 배웅했었다. 1971년 필자의 작은아버지와 어린 남매가 거기서 손을 흔들고 브라질로 이민을 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록 일반인이 타볼 수는 없었어도 보잉747의 도입은 당시로서는 센세이셔널했다. 그것은 단순히 비행기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꿈의 나라로 가는 통로였다. 10명의 승객을 한 줄에 태울 수 있을 정도의 폭넓은 동체에 2층으로 된 구조, 110톤의 연료를 싣고 최대이륙중량 400톤이나 나가는 이 괴물 비행기는 전 세계 공항의 시설기준을 바꿔놓을 정도로 파격적인 규모였다. 이 비행기의 동체길이가 70m, 날개폭이 60m이니 그전까지 제트 여객기를 대표하던 보잉707에 비해서(동체길이 46m, 날개폭 40m) 주기장에서 차지하는 면적, 회전반경 등이 다 대폭 커졌기 때문이다. 김포공항도 점보기의 취항으로 2468m의 활주로를 3200m로 확장하고 공항청사도 부분적으로 확장해야 했으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한 끝에 지금의 국제선 1청사를 1980년 8월에 개청하여 비로소 국제공항으로서 숨통이 트이게 됐다. 물론 점보기의 취항은 단순히 비행기가 커졌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륙 간 항공여행의 보편화와 대중화를 의미했고, 인도차이나 반도를 탈출하여 제3국으로 가는 보트피플에서부터, 미국으로 언어연수를 떠나는 대학생, 노트북 컴퓨터를 든 비즈니스맨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보잉747을 매개로 하여 다른 나라를 체험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잉747은 테크놀로지의 아이콘을 넘어 문화와 역사의 아이콘이 됐다. 아마존에 검색해 보니 보잉747에 대한 책은 몇 권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1975년의 대한항공 광고에 등장한 보잉747

1975년의 대한항공 광고에 등장한 보잉747

전 세계 공항 시설기준 바꾼 파격적 크기
최대이륙중량이 400톤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이 괴물이 어떻게 하늘에 떠서 시속 약 1000㎞의 순항속도로 열 몇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날아갈 수 있는 걸까? 그것은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추력의 터보팬 제트엔진 덕분이다. 보잉747의 초기 모델은 프랫 앤 휘트니의 JT9D 엔진을 장착했었고, 제너럴 일렉트릭의 CF6, 롤스 로이스의 B211을 장착한 모델도 있었다. 엔진 모델은 항공기를 주문하는 항공사의 요구에 따르게 되는데, 영연방 항공사들은 영국 회사인 롤스 로이스 엔진을 장착하게 된다. 중국에 반환되기 전 홍콩의 항공사인 캐세이 패시픽도 영연방이었기 때문에 롤스 로이스 엔진이 장착된 보잉747을 운용했었다.(JT9D의 추력은 4만6000 파운드, 가장 최근 모델에 쓰이는 GEnx 엔진의 추력은 6만8000 파운드로 늘었다. 제트엔진의 추력이란 배기노즐로 빠져나가는 강력한 속도의 공기덩어리가 가지는 운동에너지다. 그것은 공기덩어리의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표시된다.) 4대의 JT9D 엔진의 추력을 합하면 약 10만 마력에 이르는데, 이 엄청난 힘이 400톤의 무게를 하늘로 띄우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 위해 보잉747은 막대한 양의 연료를 싣는다. 1만4000㎞를 가기 위해 2만4000ℓ의 연료를 싣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륙을 위해 계류장에서 활주로 끝까지 가는 1㎞ 남짓의 여행에 1톤의 연료를 쓴다는 사실이다. 앞쪽의 공기흡입구로 들어오는 공기의 양과 속도에 따라 추력이 정해지는 제트엔진의 특성상, 시속 1000㎞의 속도로 비행할 때에 비하면 유도로를 따라 기듯이 가는 지상활주에서는 그렇게 많은 공기가 흡입구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막대한 양의 공기를 지상에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륙하면 속도가 붙고, 막대한 양의 공기가 유입되고 추력이 늘고, 그러면 또 더 많은 공기가 유입되어 추력은 더 늘고, 마침내 순항고도에 이르면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보잉747은 우리를 미국으로, 유럽으로 실어 나른다.

보잉747은 최대 524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초대형 항공기이지만 또한 비극적인 대형사고의 주인공이 된 적도 많다. 테크놀로지의 철학적인 면에 대한 책으로 유명한 폴 비릴리오는 “큰 테크놀로지는 큰 사고를 유발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보잉747에 딱 들어맞는 얘기인 것 같다. 단일 항공기로 최악의 사고는 1985년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군마현의 산에 추락한 일본항공의 경우가 있다. 당시 보잉747 SR100은 승객을 524명까지 태우도록 설정돼 있었기 때문에 단 4명을 제외하고 520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되고 말았다. 1977년 대서양의 테네리페에서 일어난 사고는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2대의 보잉747이 충돌했기 때문에 희생자는 더 많았다. 총 583명이 희생된 이 참사는 공교롭게도 하늘이 아닌 땅에서 벌어졌다. 활주로에 진입하려는 팬암항공의 보잉747을 짙은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한 KLM의 보잉747이 충돌한 이 사고에서 양쪽의 승객들이 큰 희생을 당한다. 이 사고 이후 조종석과 관제탑 사이의 교신규칙이 바뀌어 불분명한 용어는 사용하지 못하게 바뀌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본 대한항공의 보잉747. 둔중하면서도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본 대한항공의 보잉747. 둔중하면서도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대형 항공사고 불행의 주인공인 적도
한국의 항공사가 운용하던 보잉747도 몇 차례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1983년 소련의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격추된 대한항공 007편의 비극적인 사고, 1997년 괌공항에 착륙하려 접근하다 조종사의 과실로 충돌한 대한항공 801편 사고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사고들은 보잉747의 기체결함 때문은 아니었고, 기체결함으로 인한 사고 중 대표적인 것은 1997년 TWA 항공의 보잉747이 뉴욕 케네디공항을 이륙한 직후 롱아일랜드 앞바다에 추락한 것이다. 이 사고의 원인은 동체 중앙부에 있는 연료탱크 내부에서 전기스파크가 일어나 연료가 폭발한 것이었다. 이 사고는, 추락 직전 미사일이 항공기를 맞히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 때문에 테러범의 소행이 의심됐으나 연방수사국이 장기간 조사한 결과 테러는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러나 그 후에도 끈질기게 진상이 은폐됐다는 설이 계속 제기됐다.

이런 사고들에도 불구하고 보잉747을 타러 가면서 사고를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항공기는 오늘날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항공기가 가장 관리·감독이 철저히 이루어지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승무원이 타기 전에 수많은 항목에 걸쳐 기체의 이상 유무를 철저하게 점검한다. 그리고 계류장을 떠날 때, 유도로의 각 지점에 진입할 때 일일이 관제탑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유도로의 각 지점에서, 활주로에 진입하기 전에 또 수많은 항목의 체크 리스트를 점검하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하늘에 떠서도 관제탑의 지시 없이는 고도나 방향을 바꿀 수 없으며, 기장과 부기장은 항상 복명복창하여 어떤 동작이나 조치도 어물쩍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항공기 조종에서는 자유나 자율은 없다. 모든 것이 빡빡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항공기는 아무런 관제도 받지 않고 운전자 한 사람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겨 놓은 승용차 운전의 제일 반대극에 있는 운송수단이다. 운전의 능력과 스타일이 제각각 다른 수많은 운전자들의 이기적 욕구만이 지배하고 있는 길거리에 비하면 철저하게 관제를 받고 있는 항공교통로는 훨씬 안전한 곳이다. 보잉747은 그런 하늘을 무대로 오늘도 생필품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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