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기존의 자기계발과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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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는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철저하게 개인의 변화를 강조한 이 책은 자기계발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경쟁’을 거부하고 공동체 감각에 근거한 ‘수평관계’를 지향하는, 시장원리를 넘어선 개인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기계발담론과는 차이가 있다.

자존감은 두 가지 방향에서 형성된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에서 심리학자 내서니엘 브랜든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에 의해서라고 말한다. 내적 요인은 개인의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외적 요인은 환경이다. 부모, 교사 등 의미 있는 타인부터 조직, 집단, 문화, 사회 모두 자존감을 형성하는 외적 요인이다. 내서니엘 브랜든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외적 요인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능력, 가치를 분명히 아는 강인한 자기가 필요하다. 문화적 합의는 무너졌고, 중요한 역할 모델은 찾을 수 없다…. 외부에서 안정을 찾을 수 없다면 스스로 자기 내면에서 만들어야 한다.” 외적 요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개인은 자존감을 형성하기 위해 스스로 강해지는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는 왜 ‘용기’가 필요할까
‘강인한 자기’에 대한 열망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올해의 베스트셀러는 <미움받을 용기>다. 80만부가 넘게 팔렸다.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가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소개한 책이다. <미움받을 용기>를 시작으로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늙어갈 용기> <행복해질 용기>도 인기를 얻었다. 한국 사회에는 왜 아들러가 말하는 용기가 필요했을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아들러의 심리학 그 자체보다 책 제목인 ‘미움받을 용기’가 한국 사회 대중의 정서를 콕 찍어낸 것 같다. 갑을관계 등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책 제목이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를 시작으로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 대형서점 심리학 코너 / 박송이 기자

한 대형서점 심리학 코너 / 박송이 기자

아들러 심리학은 살면서 직면하는 갖가지 문제들의 원인을 개인의 ‘용기’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 제목인 ‘미움받을 용기’도 같은 맥락이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 상사라는 인간이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인정해주기는커녕 얘기조차 들어주지 않네. 하지만 그 상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자네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일인가? 회사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게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상사가 자네를 싫어한다,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이유로 그런다, 그러면 더는 다가서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네.”(169쪽) 아들러 심리학은 스스로가 변하면 된다고 말한다. 과거의 특정 사건이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수 없고 개인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변할 수 있는 존재’다. “상사의 눈 밖에 났으니 일할 수 없다. 내가 일을 잘 못하는 것은 상사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대개 잘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구실로 상사의 존재를 든다네. 그런 식으로 화를 내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어. 저 상사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가 봐도 원인론이지. 그러지 말고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상사를 싫어하기로 했다라거나 내 무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싫어하는 상사를 만들어냈다라고 생각하는 걸세.”(170쪽)

아들러 심리학은 철저하게 ‘내적 요인’만을 강조한다. ‘외적 요인’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지은이 기시미 이치로가 지난 8월 23일 한국에서 열린 <늙어갈 용기> 출간 기념 좌담회에서 한 말이다. “아들러는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저 거기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외부 영역에 대해 자신의 의지로써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다. 병에 걸린다거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계속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러는 인간은 그렇게 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가 안 바뀐다면 나를 바꾸자
‘내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들러 심리학이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외적 요인’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분석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불안이다. 미래가 없다. 고용없는 성장에 취업도 안 되고 경제는 어떻게 될지 내다볼 수 없다. 개인은 모두 절망적인 위기로 내몰린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더 이상 어떻게 성공하느냐가 아니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고 이겨내는가가 됐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거세된 책”들이 몇 년간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미움받을 용기> 열풍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다보니까 차라리 내가 변하자는 쪽으로 마음의 방향이 옮겨가게 된 것이다.” 이는 2011년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과 대비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은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사고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정치가 퇴행하면서 개인들이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사회가 안 바뀐다면 나라도 나를 바꾸자’라는, 축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사회가 거세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결국 관심은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들러 심리학은 사회 구조가 원인이 돼 발생하는 문제들도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해법을 찾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8월 23일 좌담에서 기시미 이치로와 대담을 나눈 하지현 교수의 비판이다. “열심히 해라, 희망을 가져라, 너의 문제다,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워도 낙관적인 생각으로 용기를 가지면 되는데 너는 왜 하지 않니. 이러한 가르침이 1980~1990년대 굉장히 많았다. 그런 가르침의 기저에는 아들러의 사상이 녹아 있다. 이 지점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사회환경, 시스템에 문제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고 개인의 노력과 용기에만 지나치게 방점을 두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하 교수의 지적처럼 아들러 심리학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 구조가 원인이 돼 발생한 문제의 해법도 개인의 차원에서 찾게 된다. 아들러는 ‘인정욕구’에서 벗어나 공동체에 공헌하라고 말한다. “인정욕구의 진의를 생각해보게.

<미움받을 용기> 기존의 자기계발과 뭐가 다른가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주목하는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즉 자신의 욕구를 얼마나 만족시켜주는가.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은 얼핏 타인을 보는 것 같아도 실제로 자기 자신밖에 보지 않아.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지.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집착이나 다름없지.”(201쪽) 인정욕구를 버리게 되면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공동체에 대한 공헌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여기에 있어도 좋다’라는 소속감을 갖기를 원해.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소속감이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네…. 내 발로 인간관계의 과제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네.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 그것이 공동체에 공헌하는 길일세.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일세.”(216쪽) 소속감을 주는 공동체의 범위는 우주까지 확장된다. “자네가 학교라는 공동체만이 자네가 있을 유리한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치세…. 그런데 그 안에서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될까…. 만약 더 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이 느꼈던 고통이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집착하지 말게. 보다 다른 나와 너, 보다 다양한 사람들, 보다 큰 공동체는 반드시 존재하네.”(220쪽) 이러한 논리는 자칫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화된 실업, 양극화, 경쟁에서의 낙오 등의 문제들도 개인이 생각과 관점을 바꾸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결말에 이르기 쉽다.

자기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모색
이는 <미움받을 용기> 또한 결국 신자유주의 시대 자기계발 흐름의 하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배경이다. 자기계발의 한 흐름인 ‘심리화’는 모든 걸 개인의 심리의 태도로 이해하게 만든다. 서동진 계원예술대 교수의 분석이다. “자기계발은 현실의 문제를 ‘내가 지금 어떤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조건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내가 어떤 종류의 자질을 가지고 있느냐’는 관점으로 세상과 관계 맺도록 한다. 예컨대 내가 적극적인가, 능동적인가를 생각하면서 인생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나 기획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러한 흐름에서 심리 또한 능력이 된 셈이다. ‘미움받을 용기’ 또한 계발해야 할 심리적 능력이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도 마찬가지인데,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심리적 언어’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특히 경제용어를 보면 더 그렇다. 예컨대 ‘벤처(venture)기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모험심과 사회성이라는 심리와 기질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인다는 뜻이다. ‘리스크(risk)’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것 또한 심리적인 능력이 된다.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려는 능동적 태도다. 심리화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불안이나 삶의 곤경도 개인의 심리적 언어와 태도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지은이 기시미 이치로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반박하면서도 아들러가 개인적인 측면만 강조했다는 것을 일부 인정한다. “아들러 또한 현실이 간단하지 않고 힘들다는 것을 인식했으며, 공동체에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돼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전쟁도 존재하고 개인 간의 싸움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여러 곤란한 상황이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현실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을 가져야 한다.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아들러가 사회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은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시장원리가 사회 질서를 대체하게 된 한국 사회에서 돈 때문에 개인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되는 것은 일상이 됐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그의 책 <모멸감>에서 한국 사회를 “고용주, 소비자, 주주, 공공예산 집행 책임 공무원 등 ‘갑’의 비위에 거슬리면 밥줄이 끊기기 십상이다. 그래서 삶을 지탱하는 소신과 원칙,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마저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고 분석했다. 모멸감이 일상의 감정이 된 한국 사회에서 <미움받을 용기> 열풍은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모색인지도 모른다. 자존감을 지키는 ‘외적 요인’이 붕괴된 한국 사회에서 ‘강인한 자기’만이 자존감의 보루인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철저하게 개인의 변화를 강조한 이 책은 자기계발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경쟁’을 거부하고 공동체 감각에 근거한 ‘수평관계’를 지향하는, 시장원리를 넘어선 개인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기계발담론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동일본대지진을 겪었다. 기시미 이치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출발점에 아들러의 심리학을 놓는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축소하고 개인의 차원으로 해법을 돌린다는 점에서 이 출발점은 각자도생의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으로 이어지는 아들러의 ‘자기계발’ 회로는 세상에 맞춰가는 처세와 구별된다는 점에서 다른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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