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대한 미술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장이라는 상징성 탓인지 아니면 자신의 제자와 지인을 학예사로 부당 채용해 임기 중 직위해제라는 초유의 사건이 남긴 미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곧 발표될 차기 관장에 대해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높은 관심도를 반영하듯 현재 관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미술인들의 기대치와 잣대는 세세하면서도 엄격하다. 강력한 리더십을 비롯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이해에 대한 해박함, 전통과 현대를 포함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폭 넓은 지식, 미술관 경영 및 행정의 풍부한 경험 등을 필수 요건으로 꼽고 있다. 나아가 신구세대를 균등 조화롭게 이끌고, 학연과 지연에서 자유로운 인사여야 한다는 것도 관장 자격의 필요 요소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토록 다양한 관장의 자격을 고루 갖추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오늘날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 중 그 많은 잣대 가운데 한두 개라도 올곧게 충족시키는 인물은 한 명도 없다고 봐야 한다. 아니 누굴 대입해도 불가능한 주문이다. 즉, 기대 과잉이 낳은 비현실적인 요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누락해서는 안 될 조건이 있다. 바로 덕망과 존경, 그리고 창작자들에 대한 이해다.

공석인 관장 자리를 두고 미술계의 관심이 뜨거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과거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단순한 직위가 아닌, 미술계를 대표하는 자리로서의 역할이 컸다. 그만큼 신망도 두터웠고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물론 관장 자신에게도 덕망과 존경은 최고의 명예였다. 행정가나 공무원 관장 체제에서 벗어나 미술 관계자로서는 처음으로 관장을 맡은 80년대 초 고 이경성씨나 고 임영방씨 등이 대표적이다. 후배들은 지금도 미술상을 만들어 그 뜻을 기리거나, 영면하자 마음으로 애도함으로써 살아생전 미술인들의 신뢰와 지지가 작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허나 근래 관장 후보로 거론되거나 직에 오른 인물 중 과연 누가 공경의 예술인으로 기록되었는지, 빼어난 덕과 인품을 갖춘 미술계의 어른으로 인식되었는지 되묻는다면 물음표에 머문다.
관장의 자격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건 창작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정도이다. 이는 생계가 아닌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창작환경을 꿰뚫어 보고, 그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또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오랜 시간 가까운 거리에서 예술가들과 동고동락했을 때 비로소 충족 가능한 조건이다. 사실 역대 일부 관장들을 보면 기업의 대표나 행정 운영자처럼 비쳐지기 일쑤였다. 그저 덩치 큰 기관의 매니저 같은 여운도 없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그때부터 기관의 성격이 바뀌었고, 많은 것이 변했다. 수치적 성과인 관람객 수, 입장료 수익 등에 무게를 뒀으며, 관장 역시 미술인의 삶을 위한 위치는 아니게 되었다. 실질적이든 상징적이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라는 지위는 창작과 제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공석인 관장 자리를 두고 미술계의 관심이 뜨거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내부.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허나 가끔은 절대다수의 미술인을 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한 터가 아니냐는 안타까운 시선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더구나 적합한 인물보다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을 걸러내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어쩌면 그것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하마평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비애감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