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사랑해요! 프랑스로 오세요! 프랑스에서, 스웨덴에서, 폴란드에서 왔다는 소녀들이 신문을 깔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맨 앞줄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하루 전에 베를린에 와서 노숙을 했다는 소녀들은 피곤한 기색이 없다. 파란 눈의 소녀들이 귀에 익은 한국의 사투리로 노래를 부르는 이곳. 여기는 도대체 어딘가.
1 ‘헉슬리의 신세계’에서 만난 K-팝
2014년 7월 27일 독일 베를린, 35도를 웃도는 뜨거운 한낮.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유럽의 소녀 1000여명이 아침부터 긴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대열에 함께 서서 소녀들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딸을 보호하고자 함께 온 듯한 중년 남성도 여러 명 눈에 띄었다. 폴란드에서 두 딸을 데리고 온 얀 폴큰(50)은 BTS(방탄소년단)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존 비디아오(스웨덴·48)는 딸 안나 후안(스웨덴·15)이 만든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방탄소년단, 사랑해요! 스웨덴에 오세요!’
공연장 ‘헉슬리의 신세계’(huxleys neue welt).
프랑스에서 왔다는 열 명의 소녀들은 신문을 깔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앞줄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어제 베를린에 도착한 후에 노숙을 했다는 소녀들은 피곤한 기색이 없다. 파란 눈의 소녀들이 귀에 익은 한국의 사투리로 노래를 부르는 이곳. 여기는 도대체 어딘가.

힙합으로 유럽을 사로잡고 있는 ‘방탄소년단’이 독일 베를린에서 공연하고 있다.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마마 머라카노! (What!) 마마 머라카노! (What!)
오늘은 사투리 랩으로 머시마, 가시나 신경 쓰지 말고 한 번 놀아봅시더
거시기 여러분 모두 안녕들 하셨지라 오메 뭐시여! 요 물땜시 랩 하것띠야?
아재 아짐들도 거가 박혀 있지 말고 나와서 즐겨! 싹다 잡아블자고잉!
경상도 사투리는 남자라면 쓰고 싶게 만들어 전라도 말들은 너무나 친근해
Why keep fighting 결국 같은 한국말들
말 다 통하잖아? 문산부터 마라도’
힙합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부른 <팔도강산>의 일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걸쭉한 토속 사투리로 부르는 이 노래는 한국인도 집중해서 들어야만 가사를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소녀들은 춤까지 춰가며 <팔도강산>을 부르다니! 파지아(프랑스·20)와 마이라(독일·19)에게 물었다.
“방탄소년단이 좋아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요. ‘별에서 온 그대’는 다섯 번 봤어요. 방탄은 노래를 정말 잘해요.”
“이 노래는 사투리여서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발음이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엄청 신나요!”
그러고 보니 가사와 딱 맞아 떨어진다.
“신경 쓰지 말고 한 번 놀아봅시더! 말 다 통하잖아?”
2 7명의 청년들, 힙합으로 베를린을 장악하다
‘지겨운 same day, 반복되는 매일에
어른들과 부모님은 틀에 박힌 꿈을 주입해
장래희망 넘버원… 공무원?
강요된 꿈은 아냐, 9회말 구원투수
시간 낭비인 야자에 돌직구를 날려
지옥 같은 사회에 반항해, 꿈을 특별사면
자신에게 물어봐 니 꿈의 profile
억압만 받던 인생 니 삶의 주어가 되어봐
니가 꿈꿔온 니 모습이 뭐야
지금 니 거울 속엔 누가 보여
I gotta say 너의 길을 가라고
단 하루를 살아도 뭐라도 하라고
얌마, 니 꿈은 뭐니?’
방탄소년단이
공연장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과한 해석일까. 탁월한 풍자 가사에 매력을 느낀 나로서는 <헉슬리의 신세계>에서 유럽 첫 공연을 올린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는 미래사회를 예견하는 날카로운 풍자소설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주는 메시지와 공연장의 이름은 참으로 어울린다.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러 폴란드에서 날아온 소녀 팬들.
3 세계인구의 0.7%, 한국에서 일으킨 파문 ‘한류’
입장하기 전에 만난 스페인 소녀 예뤼(17)에게 한국 아이돌 그룹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방탄소년단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방탄이 좋아서 한국도 좋아하게 됐어요. 한국에 정말 가보고 싶어요.”
방탄소년단은 2013년에 데뷔한 신생 그룹이라 아직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3년 12월 태국 ‘채널7’이 주최한 ‘쨋시 콘서트’(7color concert)에 초청받았을 당시, 8000여명의 팬이 운집해서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방탄소년단이 좋아서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에 오고 싶다는 말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한국과 수교를 맺은 나라는 189개국, 한류 전파국은 239개국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국의 대중문화는 239개국에서 소비되고 있다. 상품과 문화를 동시에 수출해서 성공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5개국밖에 없다. 한 국가의 문화가 전쟁이나 제국주의의 힘을 업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사례는 드물다. <난타>는 칼 네 자루로 10년간 3000억원의 외화를 벌어들였으며, 애니메이션 <뽀로로>의 연간 매출은 쏘나타 3만대를 수출하는 효과와 동일하다.
한국의 TV드라마가 아시아와 남미, 중동, 아프리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면, K-팝은 유럽과 미국 등 한국 드라마가 소비되지 않는 지역까지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K-팝에 대한 논문을 영국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대중문화 연구학자 우테 펜들러(독일 바이로이트대학교 교수)에게 방탄소년단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K-팝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얼굴은 어려보이는데 그들의 힙합 실력은 놀라워요. 가사도 주목할 만합니다. 꿈에 대해서 얘기하죠.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는 제도에 대해 거부하고, 그런 사회를 비판하고,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인 주체로 설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가사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좋아하지요.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수십 번은 봤어요. 뮤직비디오의 스토리텔링이 가사·안무와 밀접하게 잘 연결되어 있어서 인상적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데 가사도 직접 쓰고 안무와 뮤직비디오 작업에도 가수들이 직접 참여한다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그룹입니다.”
방탄소년단의 팬인 마이라와 공연장에서 나눈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방탄소년단은 세계의 다른 힙합 그룹과 비교할 때 실력이 매우 탄탄한 거 같아요.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고 노래만 들었을 때, 저는 그들이 흑인 힙합 그룹인 줄 알았어요. 춤도 잘 추지만 노래실력이 정말 뛰어나요. 엔터테이너가 아닌 아티스트! 연습을 정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의 힙합 음악이 갖고 있는 강렬한 비트가 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K-팝은 역시 퍼포먼스가 강점이다. 엄청난 연습을 통해 완성되었을 방탄소년단의 ‘칼군무’는 K-팝 중에서도 눈에 띈다.
문화콘텐츠를 잘 만들어서 해외에 수출하는 일은 국가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현재는 인프라 구축이 안 돼 있다. 공연예술 분야는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 통합전산망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문화부문 예산은 정부 예산의 1.1%밖에 안 되며, 체육분야를 빼면 0.5%에 불과하다.
K-팝 그룹 B.A.P의 경우 2013년 4월에 열린 ‘B.A.P 라이브 온 어스 퍼시픽 투어’ 미국 공연 티켓 1만장이 한 시간 만에 매진됐다. 동시 접속자 수가 폭주해서 서버가 마비됐으며 5분 만에 매진된 VIP 티켓은 경매 사이트에서 가격이 4배 이상 치솟았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공연장 변경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표를 사지 못한 토론토의 팬들은 커뮤니티 센터를 빌려서 B.A.P 영상 콘서트를 단독으로 열기도 했다. 한국에서 모르는 놀라운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영국은 1997년 경제위기 때 문화산업을 창조하는 데 집중했다. 웨스트엔드 뮤지컬도 그 때 탄생했다. 국민 GDP는 10년 후에 2배가 넘게 증가했다. 한류는 지금 최대 번성기이지만, 생명력이 짧을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나 체계적인 노력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이런 시점에 베를린에서 만난 K-팝의 열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유럽 소녀들.
4 여러분은 애국자. 고마워요 방탄소년단!
90분의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일곱 명의 청년들을 만났다. 선물 받은 독일 초콜릿을 들고 마냥 기뻐하는, 순하고 맑은 미소를 지닌 그들이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돌 그룹은 왠지 반항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나는 어쩌다 갖게 된 걸까. 무대 위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1000여명의 외국인 관중들을 사로잡던 그들은 고민 많고 꿈 많은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랩몬스터)“경쟁자요? 저희 자신이 경쟁자예요. 현재의 우리를 넘어서야죠. 힙합은 우리에게 공기이자 옷이며,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저희는 힙합과 함께 숨 쉬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슈가)“10대들이 들을 음악이 없어요.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주제를 다 같이 선정하고, 랩몬스터, 슈가, 제이홉이 주도해서 작사를 합니다. 작곡도 저희가 직접 해요. 각자 써본 다음에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뽑아냅니다.”
(제이홉)“저희는 늘 즐겁게 작업합니다. 모두 힙합을 좋아하니까 즐거울 수밖에요.”
(진)“유럽 첫 공연인데 팬들이 많이 와서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뷔)“지구 반대편인데, 팬들이 가사를 다 외우고 따라 불러서 감격했습니다.”
(정국)“우리 노래를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팬들이 있습니다. 정말 고맙죠.”
(랩몬스터)“미국이 음악적 스팩트럼이 가장 크고 모든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곳인데, 미국 팬들의 호응이 가장 큽니다. 무대에서 격렬하게 춤추고, 힙합을 하면서도 팝적인 정서가 동시에 있기 때문에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희들은 뮤직비디오의 스토리텔링에 가장 신경을 씁니다. 룸펜스, 자니 브로스 등 국내 최고의 뮤직비디오 제작팀과 함께 작업을 하죠. 음악, 소품, 무대장치, 의상 모든 게 다 노래의 주제와 맞아떨어지도록 애쓰고 있어요. 그 점에 주목해주세요.”
(슈가)“이제 나이 들어가는 얘기도 하고 싶어요. 나이 먹으면서 할 수 있는 고민들… 돈, 사랑, 취업 등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서 그런 진정성은 다 소통되는 것 같아요.”
조각처럼 잘생겼다고 생각한 그 얼굴들을 가까이서 마주 봤다. 메이크업의 힘이겠지,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유난히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청년들이었다. 열정을 다해 꿈을 이루어가는 청년들의 얼굴에서 싱그러운 풀냄새가 났다. 다음 행선지는 덴마크, 브라질, LA라고 했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명 한 명 우리는 뜨겁게 악수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려줘서 고마워요. 여러분은 애국자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소나기가 쏟아졌다. 수십 명의 소녀들은 여전히 문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파란 눈의 소녀들이 한국의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여기는 베를린!
<베를린 | 글·사진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