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윤과 연광철을 만나다 <상>
독일에서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바이로이트 바그너 무대. 사무엘 윤과 연광철이 주역을 맡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 바그너 애호가들의 관심이 가장 뜨겁다. 바그너 오페라의 거장으로 우뚝 선 두 남자. 바이로이트에선 그들의 이름 앞에 ‘한국’이라는 이름 대신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바그너 오페라의 도시, 독일 바이로이트에 또 여름이 찾아왔다. 바이로이트 기차역에 내려서 축제극장까지는 걸어서 15분. 3년째 여름마다 찾아오는 곳이지만 올해는 특별히 설레는 이유가 있다. 독일에서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바이로이트 바그너 무대에 한국인 성악가 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현·43)과 베이스 연광철(49) 전승현(41)을 비롯한 합창단원 13명이 오르기 때문이다. 특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사무엘 윤과 연광철이 주역으로 무대에 함께 오르기에 바그너 애호가들의 관심이 가장 뜨겁다. 바그너 오페라의 두 거장이 마침 한국인이라는 건 한국인에겐 아주 특별한 일이지만, 바이로이트에선 그들의 이름 앞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없다. 대신 ‘최고’라는 수식어만 붙을 뿐이다.
축제가 열리는 동안, 턱시도를 입은 멋진 남성들이 ‘표를 구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축제극장을 서성이는 건 흔한 풍경이다. 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모두 바그너(1813~1883)가 직접 작사·작곡하고 무대장치와 연출·조명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바그너의 의도대로 설계된 극장에서 관람하는 그의 작품은 감동의 진폭이 확연히 다르다. 극장 내부에 바그너의 혼령이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26일, 첫 공연이 끝난 후 박수를 치는 내내 나는 참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한국인을 넘어 서서 ‘최고’라는 이름을 얻기에 합당한 거장들이었다. 타이틀 롤인 ‘네덜란드인’ 역을 맡은 사무엘 윤도, 주역 ‘달란트’를 맡은 연광철도 2시간 30분 동안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산했다. 바그너의 혼령이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나는 여러 번 바그너에게 말했다. “우리도 당신만큼 만족했어요!”

바그너 오페라의 본고장 바이로이트에서 최고의 바리톤 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사무엘 윤.
‘한국인’을 넘어 ‘최고’가 된 남자를 만나다
며칠 뒤, 축제극장에서 사무엘 윤을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로엔그린’ 등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관람한 후였다. 사무엘 윤과 축제극장을 거닐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수많은 독일인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2012년에 그는 ‘바이로이트의 영웅’으로 독일 전역에 이름을 떨치지 않았던가. 주연 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할 경우 대신 출연하는 ‘커버’ 배우 사무엘 윤을, 최종 리허설 6시간을 앞두고 주연 배우로 발탁하는 파격을 바그너가(家)의 후예들이 감행한 것이다. 바그너 페스티벌은 늘 파격적이지만, 불안한 모험은 하지 않는다. 바그너가 사람들은 늘 파격적인 캐스팅을 하면서도 모험에 실패하지 않고 언제나 성공하기로 유명하다. 고정관념을 깨는 바그너의 피가 지금 극장을 운영하는 증손녀들에게도 흐르는 것 같다. 주역으로 확정됐던 예브게니 니키틴이 몸에 새긴 나치 문양 문신이 언론에 공개되어 문제가 되자, 최종 리허설 직전에 주역을 사무엘 윤으로 교체했던 파격적인 사건!
‘커버’ 배우지만, 언제든 무대에 올라 노래할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었던 놀라운, 아니 지독한 소리꾼 사무엘 윤. 나는 언론이 그를 ‘행운의 사나이’라고 부르는 것에 늘 못마땅하다. ‘준비된 영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 3년째 그의 공연을 즐기고 있으니,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사실, 엄격하기로 소문난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주역의 커버가 프리미어는 물론 전 공연을 완주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최종 리허설 때에도 커버 배우의 관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 웬만해서는 커버 배우로 대체하는 일이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무엘은 최종 리허설 6시간 전에 무대에 올라 연기와 노래를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오페라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로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바그너의 증손녀들인 에바 바그너-파스키에와 카타리나 바그너가 총감독을 맡은 후 놀라운 캐스팅 사례는 더 많아졌다. 그래서 사무엘 윤의 ‘6시간 전 캐스팅’ 사건은 2012년 여름, 바이로이트를 더욱 뜨겁게 달궜고 바이로이트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이 느낀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 역사적인 무대를 당일에 보지 못한 나는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한국인 황정원씨를 만나서 얘기를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런던에 거주하면서 오페라의 언어 소통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황정원씨는 매년 바그너 축제무대에 오르는 전 공연을 다 관람할 정도로 바그너 오페라 전문가이다. 사무엘 윤에게 기적이 일어났던 당일, 그와 점심 약속을 했다가 ‘급한 일이 생겨서 약속을 못 지킨다’는 사과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공연을 보러갔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는 그녀.
“제가 그 무대를 본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었어요. 커버 배우가 대신 무대에 서는 건 오페라 무대에선 종종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전혀 당황하지 않고 늘 연습해왔던 사람처럼 배우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정연기를 하며 호흡을 잘 맞추어 냈어요. 단 한 번도 배우들과 연습해보지 못하고 무대에 바로 투입되었다는 걸 못 느낄 정도로 완벽하게 역을 소화해 냈어요. 바그너를 연구하는 교수님들도 말씀하세요. 사무엘은 외국인이라는 걸 느끼지 못하겠다고, 완벽하게 역할을 잘 소화해 낸다구요. 최고의 배우를 뽑았는데 그가 우연히 외국인이었을 뿐인 것입니다.”
사무엘 윤은 여전히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꿈같다고 말한다.
“극장장인 카타리나 바그너가 끝나고 무대에 주저앉은 저에게 ‘잘해냈다’고 격려해줬을 때 겨우 정신이 들었어요. 벼락같이 일어난 일이었죠. 연기자를 세우고 무대 옆에서 악보 보고 부르라고 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평소에 혼자서 연습을 많이 했기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어요.”

바그너 오페라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두 ‘1인자’가 펼치는 무대, 저절로 울음이
이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공연에서는 사무엘 윤과 연광철 두 사람이 20분간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홀랜더’ 역과 ‘달란트’ 역을 가장 잘해내는 1인자로 인정받은 두 사람의 공연을 지켜보는 동안, 정원씨도 나도 울음을 참지 못한 건 우리가 한국인이어서 솟구친 감정만은 아니었다. 바그너가 만든 곡을 바그너가 직접 설계한 극장에서, 바그너 무대의 최고 가수들을 통해서 듣고 있다는 감격이 우리를 압도했으리라. 사무엘 윤 또한 연광철과 함께한 이번 무대가 자신에겐 큰 감격이고 행운이라고 거듭 말했다.
“여긴 가장 까다로운 무대예요. 공연 5분 전까지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음 체크를 해요. 발음과 뉘앙스를 요구받고 악보에 메모를 하죠. ‘바이로이트 홀랜더 악보’를 따로 만들어서 가지고 있을 정도니까요. 이 곳은 가수의 재량에 맡기지 않아요. 바이로이트의 방식이 있죠. 지휘자가 요구하는 발음이 따로 있어요. 구속도 많고 엄격합니다. 자음은 정확하게 발음하고, 모음은 길게 발음하라고 요구하는데 독일인들도 잘 못해요. 그걸 하는 사람이 연광철 선생님입니다. 저도 쉬지 않고 연습하고 있구요.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었으나 같은 무대에 서서 함께 노래한 건 처음이어서 저도 감격했어요. 바그너 무대의 앞길을 개척해주신 분입니다.”
해마다 이 작은 도시에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그너 오페라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건, 그야말로 ‘오리지널’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 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는 항상 상대를 높인다. 겸손 덕분에 그가 더욱 빛난다는 걸 본인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존경하는 음악인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었다.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는 헤르만 프라이(Hermann Prey)입니다. 한 번도 못 만났어요. 돌아가셨죠. 그 분 앨범을 들으면 ‘정말 솔직하다!’는 감탄이 나와요. 최상의 능력을 가장하지 않고 겸손을 통해서 드러내요. 하지만, 최고의 기량을 보여줍니다. 배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목소리와 표현이 많이 닮아가고 있어요.”
“저처럼 느리지만 꿈 있는 후배들 돕고 싶어”
나는 개인적으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연출이 좋았지만, 대중들은 ‘로엔그린’의 연출을 가장 좋아한다. 로엔그린 연출은 캐릭터 위주여서 남다르다. 합창단은 모두 쥐의 모습을 하고 노래한다. 사람과 동물의 대비, 악인과 선인의 모습을 색채대비를 통해서 보여주는 무대가 시각적으로도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85세의 노장 연출가가 어떻게 이런 세련된 무대를 창조해 냈을까, 감탄할 만하다. 그에 비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아주 젊고 글로벌한 연출자가 맡았기에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사무엘 윤의 생각은 어떤지 배우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이때까지의 연출과 정말 다른 연출이에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상처받는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그렸죠. 강하고 암울하고 어두운 모습보다 약하고 내적인 상처가 가득한, 물질에 의존해서 모든 걸 회복하려 하는 불쌍한 캐릭터죠. 여기서는 나약한 홀랜더의 모습을 연기하라고 요구해요. 로엔그린에서 맡은 역은 왕의 대변인 역할이기에 심오한 고민이 필요 없어요. 간결하게 왕의 의사를 전달하면 되니까요. 엄청난 색깔과 개성을 낼 필요 없지만 홀랜더는 내면 연기가 어려워요. 연출자, 지휘자, 오페라 가수가 서로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어야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 날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요.”
고3때 육군사관학교 준비를 하다가 학력고사를 3개월 남겨두고 음대 입시를 준비한 사람, 서울대학교 성악과 입학 후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이름 없이 학교를 다녔던, 특출 나지 않았던 사람. 4학년이 되어서야 노래의 매력에 빠져서 밤낮 없이 노래만 불렀다는 이 사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저는 아주 늦게, 조금씩 발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느리고, 아직은 미흡하지만 노력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저는 세상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꿈을 가졌어요. 실천이 없으면 꿈은 죽잖아요? 그래서 내가 첫 목표를 이루었을 때 내 꿈의 방향을 남을 향한 화살표로 돌렸죠. ‘나를 향한 화살표’에서 ‘남을 향한 화살표’로 방향을 돌렸을 때, 저에겐 놀라운 일들,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조건 없는 레슨을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80명을 레슨하는 날도 있어요. 다음 날 공연이 있다는 것도 잊고 목이 쉴 정도로요. 나는 지금 노래 잘하는 친구보다, 꿈은 있지만 헤매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서 예전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도우미’가 되고 싶습니다.”
석양이 곱게 물든 저녁, 페스트슈필 하우스를 함께 걷는 동안 바그너가 그의 옆에 슬쩍 따라와서 함께 걷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저쪽 벤치에서 우리를 보며 미소 짓던 노인은 헤르만 프라이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말해 주었다.
“당신은 이미 프라이를 넘어 섰어요.”
<바이로이트 | 글·사진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