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와 관계 맺는 주류 기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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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인디 레이블 ‘발전소’의 출범 소식이 유난히 큰 관심을 끌었다. 설립자가 김종서, 박상민, 캔 등 주류 가수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데다 굴지의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지분을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은 로컬 신에서 활동하던 공연 기획자나 뮤지션이 조직하고 대기업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형태를 띠기 마련이지만 발전소의 탄생 배경은 종래의 경우와 퍽 달랐다. 이러한 탓에 일각에서는 대형 기획사가 비주류까지 잠식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음악팬이나 업계 관계자들이 품었던 의심은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발전소에 소속된 밴드 중 가장 먼저 음반을 출시한 이젠(EZEN)의 음악을 들어 보면 일단은 그렇게 느껴진다. 공일오비의 장호일이 주축이 된 이 밴드는 지난 3월에 발표한 데뷔 EP에서 하드록과 글램 메탈을 주메뉴로 선보였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완전히 한물간 스타일이다. 상업적인 성과를 노렸다면 회사에서 만류하고 저지했을 텐데 그냥 예스런 문법을 들고 나왔다. SM엔터테인먼트의 투자가 발전소 소속 뮤지션의 음악을 좌우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인디 레이블 발전소 소속 5인조 록밴드 ‘이젠’

인디 레이블 발전소 소속 5인조 록밴드 ‘이젠’

주류 음악계의 대형 기획사와 관계를 맺는 것이 꼭 염려할 사항만은 아니다. 아티스트에게는 이 같은 연계가 더 큰 무대에 진출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자신을 노출할 수 있는 발판이자 창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가 늘어난다면 실력 있는 음악인을 발굴하고 장르를 다양화하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4월 말에는 인기 작곡가 신사동호랭이가 새로운 레이블 ‘캐시미어 레코드’를 설립하고 인디 밴드를 육성할 뜻을 밝혔다. 그 역시 티아라의 ‘보핍보핍’(Bo Peep Bo Peep), 포미닛의 ‘거울아 거울아’ 등 상업성이 짙고 유행에 민감한 노래를 만들어 온 터라 의아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신사동호랭이가 기존 밴드의 지향과 특성을 바꾸어 놓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캐시미어 레코드가 육성한 3인조 밴드 ‘잔나비’

캐시미어 레코드가 육성한 3인조 밴드 ‘잔나비’

다행히 이 또한 아직은 안심해도 될 듯하다. 캐시미어 레코드가 첫 타자로 내보낸 3인조 밴드 잔나비의 데뷔 싱글 ‘로켓트’에서는 신사동호랭이의 색채를 조금도 감지할 수 없다.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는 포크 록과 바로크 팝을 골자로 택해 주류 가요와 확실히 구분되는 선을 긋는다. 영국 록밴드 퀸의 ‘킬러 퀸’(Killer Queen)을 따라 한 의혹은 들지만 아기자기함과 웅장함을 겸비해 이채로움을 드러낸다. 잔나비도 자신들의 성향을 건사한 음악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형 음반사가 인디 레이블을 지원하고, 성공한 프로듀서가 독자적으로 레이블을 만들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발굴하는 것은 영미권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국내에서 일어나면 이상하게 근심이 앞선다. 한국의 대형 기획사는 몇 초만 들어도 빠르게 각인될 음악에 혈안이 돼 있고, 작곡가 역시 그 요구에 맞춰 자극을 앞세운 유사한 패턴의 곡을 만드는 상황이 고착화된 까닭이다. 이러니 그들의 관여가 마냥 달가울 수는 없다. 주류 엔터테인먼트 회사, 유명 작곡가와의 연합과 교류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게 긍정적인 작용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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