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구, 환경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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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처음 발명됐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화가들의 앞날을 걱정했다. 대상을 묘사하고 사건을 기록하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곧 기우로 판명됐다. 대상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회화와 사진은 유사하지만, 그 방법과 의미, 예술적 감동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

<인듀어런스 어니스트 새클턴의 위대한 실패> 책 표지 | 뜨인돌 제공

<인듀어런스 어니스트 새클턴의 위대한 실패> 책 표지 | 뜨인돌 제공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작가로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제리 율스만, 신디 셔먼, 김기찬, 그리고 김아타 등이 있다. 이들과 함께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는 호주 출신의 프랭크 헐리다. 헐리는 그렇게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남극 탐험의 사진들은 놀라운 역사적 기록이자 위대한 자연의 풍광을 보여준다.

헐리는 1914년 어니스트 섀클턴의 남극 탐험대 일원으로 참여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섀클턴은 2년에 가까운 사투 끝에 대원 모두를 무사히 귀환시킨 불굴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내 시선을 끈 것은 캐롤라인 알렉산더가 쓴 <인듀어런스: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에 실린 헐리의 사진들이다. 사우스 조지아섬의 위용, 웨들해의 정적, 인듀어런스호의 좌초, 대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 그리고 엘리펀트섬의 풍광 등은 당시 남극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한다.

남극 사진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요즘 어떤 이들에겐 헐리의 사진들이 별다른 감동을 안겨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헐리가 남긴 흑백의 남극 사진들은 문명화가 가져온 지구 환경의 위기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남극은 오존층의 파괴와 빙산의 감소가 보여주듯이 지구 환경의 시험대다.

오늘날 지구 환경이 처한 위기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산림 파괴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지구 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다. 몇 해 전 남극조사과학위원회(SCAR)는 위기에 직면한 지구 기후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현재의 온난화 추세가 지속될 경우 2100년에는 해수면 수위가 높아져 인도양 몰디브나 태평양 투발루 등 섬나라가 물에 잠기고, 런던·뉴욕·상하이 등 대도시는 홍수 예방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인구의 10%인 6억명 이상이 환경난민으로 전락한다는 게 이들의 우울한 예견이다. 이런 지구 온난화에서 남극과 북극 빙산의 규모가 빠른 속도로 줄어가는 것은 그 대표적인 증거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구 온난화가 여러 인과과정을 거쳐 결국 새로운 빙하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환경 전문 저널리스트인 다이앤 듀마노스키의 주장처럼,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유독 길고도 평화로웠던 지난 1만1700년 간빙기의 끝자락에, 다시 말해 ‘긴 여름의 끝’에 우리 인류는 위태롭게 서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 추워진 겨울과 더욱 뜨거워진 여름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이미 체험한 바 있기도 하다.

기후의 미래에 대해선 비관론과 낙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선 지구 온난화의 위기가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온실가스로 말미암아 온난화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다소 과장됐다 하더라도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를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자연과학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과학의 과제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인류가, 앤서니 기든스의 주장처럼,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정치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사실상 방치해두고 있다. 특히 경제성장에 주력해야 할 비서구사회의 경우 기후변화 대책은 부차적인 중요성을 갖는 게 현실이다.

기후변화 대책에서 중요한 것은 지구적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의 구축이다. 구체적으로 그 대책에 요구되는 비용과 1조t 이상의 이산화탄소 배출권 분배에 대한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 간의 합의를 마련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지구적 거버넌스를 제도화해야 한다. 경제적 이익이 연관돼 있는 만큼 이러한 과제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체계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 인류는 제임스 러브록이 말한 ‘가이아의 복수’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남극의 부빙에 갇혀 기울어진 인듀어런스호. 프랭크 헐리, 1915년. | 뜨인돌 제공

남극의 부빙에 갇혀 기울어진 인듀어런스호. 프랭크 헐리, 1915년. | 뜨인돌 제공

수십억년의 역사를 가진 행성 지구는 이제 일대 위기의 문턱 앞에 서 있다. 이 지구의 위기는 과거의 위기와 다르다. 과거의 위기가 자연의 순환에 내재된 위기였다면, 현재의 위기는 문명이 가져다준 환경의 위기이며, 이 지구 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류 생존의 위기이기도 하다.

위기의 지구를 구출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기후변화 대책을 포함해 지구 환경을 보호하려는 근본적인 제도적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환경파괴적인 산업구조와 기술체계가 유지되는 한 환경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은 결국 미봉책에 머물고 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구 환경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인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

둘째, 자연과 환경을 대하는 태도 및 사고방식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한 환경위기는 지연될 뿐 해결될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물권을 이루는 동등한 존재라는 새로운 생태학적 자기계몽이 더 없이 중요한 시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섀클턴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탐험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인듀어런스호가 침몰했을 때였다. 헐리는 그 광경을 여러 사진들로 남겨놓았다. 부빙 속에 갇혀 돛대가 부서진 채 침몰하는 인듀어런스호는 경이와 공포가 공존하는 자연 본래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짐을 정리하면서 섀클턴은 성경에서 몇 페이지를 뜯어 간직했다.

“얼음은 뉘 태(胎)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성경 <욥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얼음과 서리와 물과 바다는 누구인가. 이들은 인간과 더불어 지구의 또 다른 주인들이다. 오는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이 생명의 지구에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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