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예비여행작가, 용산가족공원으로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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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산책로를 따라 씽씽 휠체어를 달리는 장애인작가 회원들의 모습에 활기가 넘친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용산가족공원. 주차장을 지나자 여럿이 쉴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다소 몸이 불편해 보이는 이들은 다름 아닌 여행작가를 꿈꾸며 길에 올라선 예비 여행작가들이다. 장애인 여행작가를 꿈꾸는 초보 여행작가들의 발걸음을 따라 용산가족공원과 국립중앙박물관까지 떠나는 기분 좋은 소풍이다.

장애인 여행작가를 꿈꾸는 5명의 장애인 작가들이 현장수업을 위해 용산가족공원을 찾았다.

장애인 여행작가를 꿈꾸는 5명의 장애인 작가들이 현장수업을 위해 용산가족공원을 찾았다.

장애인 여행작가, 그 첫걸음을 내딛다
용산가족공원은 연간 150만여명이 찾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공원 중 한 곳이다. 1992년 옛 미군사령부의 골프장이었던 이곳은 골프장 부지의 녹지를 활용해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길목마다 작은 연못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휠체어의 기동성으로 앞장서는 장애인 작가들의 뒤를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오늘 모인 장애인 작가는 5명. 이들은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장애인 여행작가 양성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이들 박정혁, 정종운, 이경희, 정윤수, 유덕형씨는 모두 거동이 다소 불편한 장애인이다. 이들의 현장수업을 위해 강사와 활동보조자 등이 함께한 즐거운 소풍에 참여했다.

호숫가에 반영된 나무 한 그루의 풍경에 매료된 유덕형씨가 카메라 앵글을 이리저리 맞추어본다. 이들의 꿈을 키우고자 작가 양성과정을 개설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시민연대’의 최성윤 팀장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강의실에서 주로 이론 위주의 수업을 진행했고, 오늘은 첫 야외 수업입니다. 즐거운 소풍처럼 수업을 진행하는 만큼 도시락도 준비했어요. 오랜만의 외출이기도 해서 모두들 기대가 큽니다. 아주 행복한 시간이 될 듯합니다. 다소 움직임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활동보조자들과 수화통역사들도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이들 장애인 여행작가들은 6개월여 동안 ‘장애인 여행작가 양성 아카데미, 나도 여행작가다’란 과정에 참여해 여행작가로서 갖춰야 할 기초교육을 받으면서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춘 여행코스를 개발하고, 서울장애인관광가이드북을 발간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번 아카데미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현직 여행작가들로 구성된 전문여행작가 그룹인 ‘트래블 플러스’ 소속작가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직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민족의 역사와 한이 서린 용산가족공원
공원 산책로를 따라 씽씽 휠체어를 달리는 장애인 작가 회원들의 모습에 활기가 넘친다. 회원들은 주말의 한적한 여유를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과, 우거진 나무숲을 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푸른 가을 하늘빛이 반영된 연못에서 청둥오리들이 노니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잘 살펴보니 호로새, 흰빰 청둥오리, 거위 등도 연못에서 함께 무리를 이루어 노닐고 있다. 손의 움직임이 불편하여 자신만의 촬영도구인 긴 막대로 사진을 찍는 박정혁씨는 좋은 사진을 한 컷이라도 건지겠다며 이렇게 저렇게 구도를 맞추느라 콧등에 땀이 맺힐 정도다.

이번 장애인 여행작가 과정에 재능기부로 강의를 진행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현직 여행작가 그룹의 한은희 작가(트래블 플러스)가 박씨의 촬영을 보며 구도잡기를 조언해준다. “작가의 꿈을 키우는 장애인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될 듯하여 여러 작가와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몸이 불편하지만, 열정과 의지는 최고입니다.”

잔디광장을 지나 숲길을 따라 오르니 은행나무, 느티나무, 구상나무 등에 가을색이 완연하다. 공원 중앙부 정상으로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숲 중앙부 가운데에 태극기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태극기공원의 주위를 둘러보는 회원들이 중앙에 모이자 태극기공원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곳 용산공원은 우리 민족의 한이 배어 있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의 병참기지, 임오군란 때에는 청나라군의 주둔지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해방 전까지는 일본군에 의해 사용되었고, 한국전쟁 이후로는 유엔군과 주한미군 사령부가 자리잡아 있던 자리입니다. 약 100년 동안 외국 군대가 주둔해온 곳입니다. 설움이 쌓인 이 자리에 태극의 깃발을 세우고, 우리의 민족혼을 상징하는 무궁화꽃을 빙 둘러 심었지요. 여행지를 찾아서 그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 알리는 것도 여행작가이 해야 할 큰 몫입니다.”

박물관은 대형연못 ‘거울못’(사진)을 앞에 두고 남산 기슭에 들어섰다.

박물관은 대형연못 ‘거울못’(사진)을 앞에 두고 남산 기슭에 들어섰다.

태극기공원을 둘러보며 촬영을 하고, 주요 정보를 메모하던 일행들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아름다운 경관의 미르폭포가 나타난다. 미르폭포를 마주한 정윤수씨가 그 풍경에 반해 넋을 놓고 있다가, 나무펜스를 잡고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선다. 활동보조자와 함께한 정씨는 수년 동안 거동조차 힘들었을 만큼 장애 정도가 심했다. “무척 아름답습니다. 여행작가의 꿈을 이룬다기보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출구였습니다. 집안에서 몸을 일으켜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밖에서 홀로 일어서보기는 처음입니다. 이번 여행작가 과정이 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어서 매우 감사할 뿐입니다.”

일행은 공원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동선을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한다. 녹지공간 속에 야외 석조물 정원도 둘러보고, 가을꽃을 카메라에도 담는다. 약 20분을 걸어가니 2005년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이 남산을 배경으로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30만㎡의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규모로 우리네 전통적 건축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지어졌다. 대형연못 ‘거울못’을 앞에 두고 남산 기슭에 박물관이 들어앉은 셈이니, 배산임수의 형국이다. 박물관 앞마당격인 열린마당 역시 우리 전통건축의 대청마루에 해당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품 너른 공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일행은 박물관 앞마당이자 출발점인 열린마당을 지나 거대한 박물관으로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장애인 전문 안내자와 수화통역 안내자들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다시 걷는 길, 다시 시작한 희망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미술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손도끼에서부터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회화, 근대의 사진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삶, 그리고 예술이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박물관으로 최근 국내외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 먼저 찾는 여행지 중 한 곳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중앙통로인 역사의 길 정중앙에 경천사 10층석탑과 고달사 쌍사자 석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역사의 길’을 중심으로 6개의 상설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3개 층 좌우로 선사·고대관, 중·근세관, 기증관, 서화관, 아시아관, 조각·공예관으로 나뉘어 1만5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수년 동안 거동조차 힘들 만큼 장애가 심했던 정윤수씨가 미르폭포 풍경에 반해 나무 펜스를 잡고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섰다.

수년 동안 거동조차 힘들 만큼 장애가 심했던 정윤수씨가 미르폭포 풍경에 반해 나무 펜스를 잡고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섰다.

장애인 여행작가들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눈빛을 반짝인다. 유물을 꼼꼼히 살피며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물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워낙 방대한 규모이니만큼 오늘 일정은 박물관이 선정한 ‘중요 유물 100선’ 코스를 따라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마쳤다. 거동이 편치 않은 이들에게 하루 일정은 다소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한 소풍을 마친 장애인 여행작가 회원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환하게 웃는다. “몸이 조금 불편한 우리에게 어쩌면 여행은 다소 용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것처럼 외출을 준비했습니다. 조금은 낡고 오래된 카메라를 들고 일주일 또는 한 달에 두어 번 집을 나서는 용기를 내야만 했습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발을 내딛고 여행의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이제 곧 우리가 엮은 책이 나옵니다. 참으로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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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