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항구, 소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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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는 예전부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서민들이 싼 가격에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어 많이 찾던 곳.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저렴한 가격에 회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푸짐한 포구의 인심을 찾아오는 것이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論峴洞) 일대를 소래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신라 때부터다. 요즘은 흔히 소래포구라 부르는데, 매일 아침 물 좋은 생선들이 포구를 가득 채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論峴洞) 일대를 소래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신라 때부터다. 요즘은 흔히 소래포구라 부르는데, 매일 아침 물 좋은 생선들이 포구를 가득 채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어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누구든 ‘오빠’가 되고 ‘이모’가 되는 곳이 바로 소래포구다. 대개의 어항이 새벽나절 먼 바다에 나가 풍어를 이룬 만선으로 장을 여는 것과 달리, 온종일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 포구에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만선을 이룬 고깃배가 드나든다. 갯가의 갈매기는 끼룩끼룩, 어시장의 상인들은 오빠 오빠를 외쳐대는 소래포구로 봄맞이 나들이를 나섰다.

친절한 누이들의 명성은 전국 제일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어항이며 대규모 어시장이 서는 곳이 바로 소래포구다. 자자한 명성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나들이객이 사시사철 포구를 가득 메운다.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뱃사람들의 뱃고동 소리가 이제 특별한 것도 아니어서 손 흔들어 반기는 이도 없는 일상적 풍경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비릿한 갯가에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과 ‘오빠야’거나 ‘이모야’를 외치며 손님들의 발걸음을 세우는 억척스런 상인들의 모습으로 오히려 참 희한하면서도 푸근한 재미가 난다.

오랜만에 포구를 찾은 대다수의 관광객들 역시 장터의 호객과 흥정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그래서 누구든 소래포구에 들어설라치면 일면식도 없는 친절한 누이들의 성화에 팔자에도 없는 오빠가 되고 이모가 되기 십상이다. 

포구 앞 한 뼘만큼의 거리에 자리한 어시장에는 온갖 해산물이 넘치고, 바로 앞 길가에는 입맛을 돋우는 바다의 진미가 발길을 잡는다. 그 포구에는 군데군데 그만 주저앉아버린 나들이객들의 잔치가 벌어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비릿한 생선 냄새보다 짙은 나들이객들의 춘심이 흐트러지고, 뱃고동 소리보다 큰 상인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하게 한데 어우러져 소래포구의 봄을 만든다. ‘삶은 본래 이렇게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 아닌가.’ 방파제 한편에 주저앉아 앉은뱅이 낮술과 추억에 젖은 노년의 객들이 옛 시절을 떠올린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것이 참 좋아. 옛날에는 게와 짱뚱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데.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또 협궤열차가 있어서 자주 찾았었잖아.”

옛 소래포구의 추억과 낭만
그때만 해도 소래의 앞바다 역시 ‘바다’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제 배가 지나간 흔적도 남을 것 같지 않은 짙은 흙빛의 그 바닷가에는 집 잃은 길고양이만 같은 갈매기들이 이곳이 바다였음을 기억할 뿐이다. 순회비행을 마친 어린 갈매기떼들이 끼룩끼룩 내려앉는다. “바다는 이미 사라졌고 저 낮은 갯바닥과 작은 물줄기가 바다의 흔적인지도 모르겠어.”

(왼쪽) 안진씨는 동생과 함께 3년째 소래포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장꾼이다. (오른쪽) 소래 어시장 백두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은주씨는 특유의 넉넉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왼쪽) 안진씨는 동생과 함께 3년째 소래포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장꾼이다. (오른쪽) 소래 어시장 백두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은주씨는 특유의 넉넉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지금의 인천 남동구 논현동(論峴洞) 일대를 소래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신라 때부터다. ‘소래(蘇萊)’는 당나라의 소정방이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백제를 정벌할 때 이곳을 통해 들어왔다 하여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이야 흔히들 소래포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수도권에서 가까운 재래어항의 풍취와 매일 아침이면 물 좋은 생선들이 포구를 가득 채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때문이다. 서해바다로 나아갈 듯 삐죽이 나와 있는 형상인 소래는 천연포구로 자연스레 형성된 갯골이 흐르고 이를 경계로 해수와 담수가 만난다. 그러면서 폭이 100m 남짓한 갯골을 따라 썰물 때면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고, 밀물 때면 만선을 이룬 작은 고깃배들이 물길을 따라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들어온다. 그렇게 아침마다 고깃배들이 물길을 따라 줄을 서면 포구는 시끌벅적해지고, 아낙네들은 물빛 찬란한 고기를 매만지며 삶을 일구어 왔다. 그래서 해방 후 소래로 모여든 사람들은 작은 배로 고기를 잡고, 가까운 바다에 나가 새우를 잡아 젓갈을 만들었다. 또 수인선 열차를 타고 인천, 부평, 서울 등지로 등짐 지고 다니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인천 내항이 준공되어 큰 배들이 늘어나면서 각종 해산물이 풍성한 일약 수도권 제일의 어항으로 ‘소래포구’란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바다와 강, 도시의 경계에 자리한 포구
이제 소래는 서해안고속도로, 인천시 외곽순환도로 등이 연결되며 도시의 경계에 자리한다. 소래포구는 이제 많이 변했다. 포구의 주변으로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이 마천루를 이루고 병풍처럼 포구를 둘러싸고 있다. 멀리 보이는 소래철교는 어쩌면 과거와 현재, 바다와 강, 포구와 도시를 나누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작은 물줄기를 경계로 바다와 도시, 그리고 포구의 삶의 풍경이 나뉘고 다시 어우러진다.

소래포구에 나들이 나온 가족.

소래포구에 나들이 나온 가족.

소래철교는 협궤열차 교량이다. 인천과 수원을 잇던 협궤열차는 1937년 일본이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90년대 초반 경제성이 낮아져 운행이 중단되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추억과 낭만을 찾아 이곳 소래로 왔다. 그러다가 1995년 열차가 중단되면서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게 ‘소래철교’라는 이름으로 개방되며 관광지가 되었다. 그때에는 철교를 건너면서 침목 사이로 흐르는 바다를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고 방지를 위해 침목 위로 철판을 덧대고 옆으로 펜스를 쳤다. 예전만큼의 스릴은 사라졌지만 바다를 건너는 낭만은 아직도 여전하다. 

특히 철교는 소래포구를 찾는 연인들이 꼭 들르는 명소다. 함께 손을 잡고 소래철교를 건너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명성을 얻으면서 한동안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또 다리를 건너면서 포구로 드나드는 배를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 경계의 철교 위에서 내려다보니 저 멀리 먼 바다에서 뱃고동 소리가 이명처럼 봄바람에 실려 오는 듯하다.

제철 주꾸미랑 꽃게 드시러 오세요

인천과 수원을 잇던 협궤열차 교량은 1995년 열차가 중단되면서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게 ‘소래철교’라는 이름으로 개방되며 관광지가 됐다.

인천과 수원을 잇던 협궤열차 교량은 1995년 열차가 중단되면서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게 ‘소래철교’라는 이름으로 개방되며 관광지가 됐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소래포구에는 여전히 옛 추억을 찾아나선 나들이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봄을 맞은 소래포구 어시장은 활기로 가득하다. 포구에는 시끌벅적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어선에서 금방 내린 싱싱한 횟감들은 어시장에 물빛 찬란하게 반짝이며 손님을 끌어 모은다. 이 골목에서는 각종 활어가 싱싱하게 팔딱거리고, 저 골목에서는 곰삭은 새우젓이며 건어물들이 나들이객들을 불러 모은다. 그래서 싱싱한 해산물을 팔려는 상인들과 이를 사려는 손님 간의 흥정 소리가 여기저기서 뒤섞인다.

어시장 한편에서 제철을 맞은 꽃게를 들고 손님맞이에 한창인 안진씨(38·은하수산)는 동생과 함께 3년째를 맞이하는 소래포구의 젊은 장꾼 중 한 사람이다. “꽃게하고 주꾸미가 제철이에요. 주꾸미는 고슬고슬 쌀알 같은 알배기가 한참 맛있을 때예요. 또 3월 중순쯤이면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 앞바다에서 꽃게들도 많이 납니다. 꽃게는 불그스름한 빛이 돌고 일단 깨끗한 것이 싱싱한 것이에요. 이제 곧 제철이니까 싱싱한 해산물 드시러 소래포구로 꼭 오세요.”

소래포구는 예전부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서민들이 싼 가격에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어 많이 찾던 곳.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저렴한 가격에 회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푸짐한 포구의 인심을 찾아오는 것이다. 요즘도 연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소래포구는 해산물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의 명소로도 이름이 높다.

소래 어시장 백두골목의 김은주씨(53·송도수산)는 “소래는 뭐니 뭐니 해도 푸짐한 인심이 최고 아녀요. 말만 잘하면 공짜로도 준다니까요”라며 특유의 넉넉한 웃음과 너스레로 손님을 맞이한다. 수도권 유일의 재래어항으로 싱싱한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소래포구의 봄나들이.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과 저렴한 가격, 도심 속에서는 볼 수 없는 포구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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