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속의 섬, 경북 영양 ‘음식디미방’을 찾아
경북 북동부에 자리하고 있는 경북 영양은 태백산맥의 남쪽단에 위치해 있다. 면적(815.1㎢)이 서울의 1.3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고작 1만8500여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릴 만큼 고요하며 고독하다. 첩첩의 산자락에 둘러싸여 고독한 땅의 품성이 오랜 세월 속에 묻히고, 그 땅의 삶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때 묻지 않은 흙과 바람, 하늘, 맑은 강의 기운이 이제 그 땅을 북돋운다.

석벽과 절벽을 끼고 흐르는 두 물줄기가 합류해 큰 강을 이룬 남이포의 전경.
첩첩이 산을 두르고 오롯이
영양으로 드는 길목. 제일 먼저 객을 맞이하는 것은 점잖은 선비처럼 오롯이 서 있는 선바위다. 청송 진보면 쪽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영양군으로 들어서 입암면에 다다르면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촛대를 세워놓은 것 같은 선바위가 나타난다.
선바위는 석벽과 절벽을 끼고 흐르는 두 물줄기가 합류하여 큰 강을 이루는 남이포의 정점으로 산의 기운과 강의 기운이 합일되는 곳에 흔들림 없이 서 있다. 석양이 질 무렵, 선바위에 올라서면 붉은 기운은 산을 감싸고 황금빛 일몰이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밝힌다. 선바위는 옛날 남이 장군이 역모를 꾀하던 용의 아들을 토벌하고 그 상징으로 바위를 세웠다는 설화가 서려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는 정부인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이다. 음식디미방 보존회 조귀분 회장은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각종 음식을 직접 재현하고 있다.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박승길씨는 “영양은 경상북도 내에서 가장 높은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면서 영양의 지역적 특성을 설명한다. “영양의 대표적인 산인 일월산과 통고산, 백암산 등이 모두 1000m가 넘는 태백산맥의 지맥입니다. 따라서 지형의 기복이 심하고 땅의 성질 역시 비옥한 편은 아닙니다. 또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일조시간이 다른 지방보다 짧습니다. 몇몇 고지대의 경우, 이미 10월 초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또 겨울이 길고 눈이 잦지는 않지만 한 번 눈이 오면 오랫동안 남아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영양의 풍광을 대표하는 곳이 바로 일월산이다. 일월산은 경북 내륙에서 해와 달이 솟는 것을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위로는 태백산과 통하고 아래로는 주왕산과 맥을 함께 한다. 특히 일월산에는 솟구친 산봉우리 두 개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데, 일자봉(日字峰·1219m)에 오르면 맑은 날 동해바다가 훤하게 보이고, 아침 해가 장엄히 떠오르는 것을 마주할 수 있다. 해와 달이 떠오르는 성산의 기운이 첩첩산중을 밝히는 셈이다.
자연의 품성이 배어있는 문향
육지 속의 섬 영양. 영양은 섬인 울릉군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자체다.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영양은 자연의 요새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때묻지 않은 산천의 풍광이 오롯이 남아 고즈넉한 여유를 선사한다. 자연은 그대로 순수하고, 삶과 문화 역시 낡아 있는 채로 비교적 온전한 편이다. 대표적인 문향(文鄕)으로 시인 조지훈과 오일도 선생, 소설가 이문열을 배출한 고장으로 이름 높다. 오염되지 않은 흙과 바람, 하늘, 맑은 강, 그 자연의 품성이 온전히 배어 있는 땅의 기운이 그들을 깨운 것인지도 모른다.
일월산 자락인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은 청록파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조지훈(1920~1968)의 생가마을로 고택들이 옛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생가인 ‘호은종택’과 한문을 수학한 서당 ‘월록서당’ 등이 있는 한양 조씨의 집성촌으로 영양여행의 필수 여행 코스다. 마을 입구의 주실숲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숲의 한편에 조동진(1917~1937) 시비가 아우의 시비를 마주보며 ‘바람과 달을 벗하고’ 있다. 또 영양읍 감천마을에도 오일도 시인(1901~1946)의 생가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생가는 조선 후기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가옥 형태로 낙안 오씨 집성촌의 촌락구조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조귀분 회장이 재현한 <음식디미방>의 음식.
특히 마을 앞 하천 절벽에는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14호)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한 폭의 병풍을 보는 듯하다. 또 다른 문풍(文風)의 터전인 석보면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손 재령 이씨들의 집성촌. 두들마을은 언덕 위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석계고택과 석천서당, 정부인 장씨 유적비, 광산문학연구소, 유우당 등 30여채의 고택을 비롯해 문화재가 모여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수되지 않은 낡은 가옥들이 많았는데, 최근에 다시 가옥을 보수하고 보존하고 있다.
특히 두들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장씨를 기리는 전통한옥 체험관과 유적비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받는 정부인 안동 장씨(장계향·1598~1680)의 얼이 살아있다. 정부인 장씨는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갈암 이현일의 어머니. 학문과 시·서·화에 능했으며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전통의 고집 온전히 담은 음식디미방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던 두들마을은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손 재령 이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두들마을은 언덕 위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석계고택과 석천서당, 정부인 장씨 유적비, 광산문학연구소, 유우당 등 30여채의 고택을 비롯해 문화재가 모여 있다.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각종 음식을 직접 재현하고 있는 조귀분씨(음식디미방 보존회 회장)는 “정부인이 저술한 <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이며, 한글로 쓴 음식요리백과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전통한옥 체험관은 330년 전 양반가의 전통음식을 접해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설명한다.
“정부인 장씨는 조선 중기 경상도 지방의 음식 조리법을 담은 <음식디미방>을 남겼습니다.<음식디미방>은 음식 맛을 아는 법을 뜻하는 책으로 현존하는 한글로 된 가장 오래된 음식조리서입니다. 정부인 장씨가 나이 일흔에 눈이 침침해 가는데도 써내려간 책 속에 조선 중기 경상도 지방의 음식 제조법이 꼼꼼하게 적혀 있습니다.”
책은 첫머리에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써 있다. 음식디미방은 한자어로, 그 중 ‘디’는 알 지(知)의 옛말이며, 제목을 풀이하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을 지닌다. 장씨 부인은 음식디미방에 예로부터 전해오거나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현재 영양군은 이 조리법들을 연구해 하나 하나 음식을 재현해 음식디미방 보존회를 중심으로 전통음식 제대로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특히 지역의 청정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바탕으로 <음식디미방>을 세계적인 한국의 명품음식으로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두들마을을 찾는 세계인들에게 내어도 좋을 우리의 음식으로 ‘음식디미방’의 한상차림이 그 맛을 뽐낼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음식디미방.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와 어머니의 정성스런 손맛이 이루어낸 낡음이 명품이 된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