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대서특필이었다. 지난 6월 중순 국내 대다수 언론이 케이팝(K-Pop, 한국 대중음악)의 유럽 상륙을 축하하는 기사로 한 목소리를 냈다. 그 광경은 마치 2010년 말 ‘Like A G6’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파 이스트 무브먼트의 흥행을 보도하던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열떴다. 그동안 아시아권에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그쳤던 한국의 대중음악이 드디어 서구 음악팬들의 감성에도 어필했다고 크게 선전했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사건이었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했다.
![[문화내시경]K-Pop 유럽 상륙 ‘풍선껌 팝’](https://img.khan.co.kr/news/2011/06/20/20110621000247_r.jpg)
엄밀히 말하자면 케이팝이 아니라 SM 엔터테인먼트에 속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퍼포먼스가 10대, 20대의 젊은 유럽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아이돌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표현의 정정이 필요하지만 이는 분명히 국내 일부 아이돌 가수의 댄스음악이 다수 서양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임을 대대적으로 알린 사례였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위력이 이제는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붐의 주요인으로 팝 음악 트렌드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198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를 호령하며 소녀들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으나, 90년대 초반에 얼터너티브 록이 대유행하면서 10대를 타깃으로 하는 말랑말랑한 발라드와 발랄한 댄스음악은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부터는 리듬 앤드 블루스와 힙합도 많은 이의 지지를 받으며 차트에서 상승세를 그린 까닭에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 스파이스 걸스를 제외한 10대 취향의 댄스음악은 들어설 공간이 부족했다. 따라서 최근의 결과는 틴 팝의 오랜 품귀와 강한 전자음을 앞세운 댄스음악의 유행이 중첩되는 상황에서 소년·소녀의 감성을 지녔으며 팝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른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서구 대중에게도 친숙하게 느껴진 것으로 해석될 만하다. 몇몇 노래는 유명 외국 가수의 작품과 너무나도 유사하니 그 익숙함에 빠르게 친화될 수밖에 없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덕도 크다. 이를 통해 국내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세계 곳곳에 전파되는 것이 수월했고, 영상을 접하면서 한국의 대중음악이 현재 유행하는 팝과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됨으로써 광대하게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었을 듯하다. 외국의 댄스 그룹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한국만의 역동적이고 통일성 강한 군무와 곳곳에 배치한 따라하기 쉬운 동작도 흥미를 증폭한 요소다.
SM의 아이돌 그룹들이 프랑스에서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것은 기념할 만한 성과이며 가요계의 역사적인 일이라고 해도 그 면면을 종합해 보면 훌륭한 쾌거는 되지 못한다. 단순히 풍조에 순응한 경쾌한 댄스음악이 때를 잘 만났을 뿐이며, 어떤 노래는 팝 히트곡의 모방품에 가까우니 떳떳하게 자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욱이 외국의 음악팬들은 가수들의 화려한 퍼포먼스, 재미있는 춤에 열광하는 경향이 강하다. 곡의 완성도와 참신성에 환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음악을 표현하는 데 쇼에 관계된 측면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쇼가 음악을 등식화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유럽의 음악팬, 특히 젊은 여성들은 우리 아이돌 그룹에 대해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다면 현 상황을 온전한 한류 열풍이라 말해도 될까? 이는 단지 ‘풍선껌 팝(bubble-gum pop)’을 둘러싼 전형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풍선껌의 단물은 금방 빠지며 풍선을 불어도 오래 가지 못하고 터지는 것처럼 이 음악은 나이 어린 소비자 사이에서 한때는 큰 바람을 일으키다가 이내 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지금은 뜨거운 한국 아이돌 가수의 붐이 이후 그러한 상황을 맞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때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