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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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br />토르 고타스 지음·석기용 옮김<br />책세상·3만2000원

<러닝>
토르 고타스 지음·석기용 옮김
책세상·3만2000원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나는 우주에서 오는 상상할 수 없는 힘과 내 인생의 낙관적인 전망을 느꼈다. 나는 우주의 아이였다.”

1970년대 크레이그 완튼이라는 한 미국인이 한 고백이다. 이 고백에 담겨 있는 초월성에 대한 자각, 느닷없이 닥쳐오는 강렬한 감동, 삶에 대한 긍정적 희열의 체험은 신앙 간증회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수준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토록 강렬한 체험을 제공한 것일까.

1970년대 미국에서는 조깅 열풍이 불었다. 조깅은 각종 심장질환과 비만 같은 육체적 질병 및 우울증과 무기력 같은 정신적 이상 증세를 치유해주는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완튼의 경우처럼 영적인 희열까지 제공하는 첨단 유행이었다. 이는 불과 10여년 사이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였다.

1960년대 초반 뉴질랜드 육상 코치 아서 리디아드가 정신과 육체에 미치는 달리기의 긍정적 영향을 발견해 그 성과를 사람들에게 알리던 무렵만 하더라도, ‘건강을 위해 달린다’는 발상은 기이하거나 수상쩍은 일로 간주됐다. 

초기의 조깅 애호가들이 무리지어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시내를 달릴 때 “버스 승객들은 창문으로 찌그러진 맥주 깡통을 집어 던졌고,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그들의 조깅 코스를 가로막기도 했다.” 어떤 이는 밤늦게 조깅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했다. 건강을 위해 밤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향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체력 단련 프로그램으로까지 자리잡은 조깅 열풍은 이처럼 달리기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인간이 달리기에 매료된 역사는 유구하다. 인간은 이르면 200만년 전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달리는 능력 덕분에 원숭이에 가까웠던 초기 인류로부터 도구와 지성을 사용하는 현생 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다. 인간이 달리는 능력을 확보한 시점을 과학적으로 특정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러닝>의 저자인 노르웨이 민속학자 토르 고타스에 따르면 그렇다.

고대 왕국에서 달리기는 왕들이 왕국을 통치하기 위해 반드시 지녀야 했던 자격 요건이었다. 기원전 2094~2047년까지 수메르 왕국을 다스렸던 슐기 왕은 320km의 거리를 단 하루 만에 주파해야 했다. 두 도시에서 열리는 추수감사절 축제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유명한 파라오 람세스2세도 비슷한 처지였다. 66년 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른 그는 재위에 오르기 전 왕좌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피라미드 아래에서 혼자 달렸고, 재위 30년 후부터는 3~4년에 한 번씩 그렇게 했다.

불교 승려들에게 달리기는 수행의 과정이었고, 고대 그리스 청년들에게 그것은 조국과 자신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으며, 신발 제조업체에 그것은 막대한 부의 원천이었다. 저자의 펜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도부터 남미까지를 아우르며 달리기의 문화사와 달리기의 역사를 7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담아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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