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PD들의 휴가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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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 속에 여름휴가 시즌이 절정에 올랐다. 편집으로 매일 밤을 새는 방송국 PD들은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계절의 변화에 둔감하지만 달력은 어김없이 한여름에 와 있다. 올 여름도 연중행사로 휴가가 진행 중인데 통상 방송국의 휴가는 방송 아이템을 같이한 PD와 작가가 조를 짜서 팀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해야 매주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전력누수를 최소화하며 전투력을 상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부산 해운대에는 100여만명의 피서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합뉴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부산 해운대에는 100여만명의 피서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합뉴스

설레는 마음으로 ‘팀 휴가계획서’종이에 본인이 희망하는 기간을 적어서 제출하면 제일 고생하는 막내부터 우선권을 주고, 겹치는 사람들은 서로 합의한 후 각자 맡은 방송 아이템이 끝나는 대로 휴가에 돌입한다. 

밤 12시에도 눈치 보며 퇴근했던 평소와는 달리 휴가 때는 “아싸! 휴가 갑니다” 큰소리를 외치며 당당히 정문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휴가는 방송국에서 필요충분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국 내에서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 휴가 못 간 일을 알고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휴가를 내기란 쉽지 않으며 휴가 중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국 인사팀에서는 최저 휴일을 보장하고 ‘강제 휴가명령’도 내보지만 방송이 업(業)인 제작진에게 휴가라고 하여 온전히 정신줄을 놓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어려운 휴가를 가뭄에 단비 내리듯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방송국PD의 가족일 것이다. 총각PD는 휴가를 못가도 어찌어찌하여 보낸다지만 유부남PD는 자녀들이 “방학동안 뭐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관식으로 답을 길게 말하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출장이 많은 직종이라 아이 낳을 때도 아내 곁에 있어주지 못한 PD가 절반이 넘고 방송국 근무 10년차엔 이미 타인처럼 돼 버려 50점짜리 남편이다. 그렇다면 PD들은 자녀에게 몇 점짜리 아빠로 남고 싶을까?

PD를 아빠로 둔 아이들에게 스케치북에 아빠 얼굴을 그려 보라고 하면 아예 못 그리거나 귀퉁이에 조그맣게 얼굴을 그리는 현실 앞에서 눈 감고 고민해 본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 나이 30~40세가 되면 단위 시간당 생산성을 가장 많이 뽑아야하는 시기이지만 반대로 이 시간이 자녀들에게 아빠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당연히 방송국 PD 아빠들의 자화상은 언제나 새벽별 보기처럼 아이들에게 낯설음으로 다가온다.

회식자리에서 “빨리 들어오라”는 호랑이 같은 아내의 전화를 받으면 괜히 용기가 생겨서 핑계를 대며 2차 회식까지 가는 PD들은 봤어도, 아내 전화번호로 걸려온 아이들 전화 목소리에 10분 이상 회식자리를 버틴 사람을 본 적 없다.

그래서 모든 방송국 PD 아빠들이 휴가철에 민감해지는 것이리라. 물론 휴가를 떠나본 사람만이 알지만 휴가는 짐 챙기랴 휴, 한숨 나올 정도로 고생이기 때문에 휴가다. 그러나 매년 자녀와의 여름휴가가 기다려지는 것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아이는 아빠의 미래”라는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방송국 PD 아빠들은 바란다. 이번 휴가에는 자녀들과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자녀들과 저녁식사를 꼭 같이 하기를. 이런 하나하나의 약속들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대한민국 방송국 PD 아빠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이호석 PD |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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