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불과 2년 사이에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가 좌초하고 후퇴하고 내팽개쳐지는 사태를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조르조 아감벤 외 | 김상운 외 옮김 | 난장 펴냄
오늘날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민주주의자와 다른 것으로 부르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그만큼 민주주의는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이 됐다. 지난해 프랑스 라파브리크출판사 대표인 에리크 아장이 조르조 아감벤 등 여덟 명의 사상가에게 물었다. “민주주의는, 어떤 상태에?” 번역은 직설적이다.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같은 해 겨울에 한국의 휴머니스트 출판사는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한홍구 교수 등을 불러 강좌를 열었다. 제목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가 됐다. 본래 민주주의는 인민들이 스스로에 대해 권력을 지니는 것으로 간주된 실존이다. 민주주의는 국가를 고사시키는 열린 과정, 인민에 내재적인 정치다. 인민이 주인(민주)이고, 인민이 주권(민권)이고, 인민이 근본(민본)이고, 인민의 생(민생)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현실은? “사실상 민주주의는 극소수 사람들만의 통치, 또 말하자면 인민 없는 통치만을 허용하는 체제를 정당화하는 계급적 이데올로기가 됐다. 자기 자신의 기능을 무한히 재생산하는 것 말고는 일체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이 보이는 체제를 말이다.
견제도 받지 않고 규제도 되지 않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요구, 무자비할 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뤄진 반공산주의, 군사적 방식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수없이 많은 주권국가와 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 등 이 모든 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솜씨였다.(크리스틴 로스, 뉴욕대 교수)”
고개를 돌려 한국의 현실은? “2008년 이후 불과 2년 사이에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가 좌초하고 후퇴하고 내팽개쳐지는 사태를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국가 권력의 비민주적이고 반민주적인 오용과 남용, 정부 기관들의 반민주적 정책과 행태, 공권력에 의한 인권과 국민 기본권의 유린, 시민 위협, 사생활 침해, 언론 옥죄기, 지방자치단체들의 횡포와 공무원들의 비민주적 정신상태, 수임 받지 않은 사적 시장 권력과 언론 권력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 집권당 국회의원들의 민주적 역량 결핍 등 지난 2년 사이에 발생한 수많은 사건과 사례는 한국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퇴행과 반전의 충격적인 실상을 웅변한다. 물론 현 정권 이전까지 민주주의가 잘되고 있다가 갑자기 후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이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소수의 우두머리에게 ‘갈채’와 ‘합의’를 보내고, 언론이 이 공적 의견을 조직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구별되지 않는다(조르조 아감벤).”
그러면 주인들은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민주주의자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비-민주주의자들이 갈수록 파악하기 힘들어지는 불가항력적인 세계의 풍경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뿐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의 욕망을 조직하는 권력들의 작동(웬디 브라운)”을 외면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위기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품위를 깔아뭉개는 여러 ‘야만의 체제’에 대한 거부임에도 현실은 분명 야만적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이런 야만의 체제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최소 조건을 충족시키려는 체제이고, 그 최소의 필요 조건이 ‘자유’임에도 현실은 분명 구속적이다.
견디다 못한 도정일 교수가 미래 세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질문은 이어졌다. 질문에 대한 기억 여부가 당신의 품질을 결정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더 나은 세계란 누구를 위한 더 나은 세계인가? 나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지금 이 결정을 내리는가?” 민주주의라는 말이 누구나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싣는 텅 빈 기표라면 질문에 답하고 기억할 일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