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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가짜그림 유통 오래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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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빨래터 위작 확실한 증거 있어”

최명윤 소장이 기기를 이용해 그림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최명윤 소장이 기기를 이용해 그림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미술품 위조단 꼼짝마!’
국내 미술품 위작 시비와 관련한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최명윤(62) 국제미술과학연구소 소장이다. 2007년 10월 검찰이 발표한 ‘2800여 점에 달하는 이중섭·박수근 화백 위작 사기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그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2월 삼성 비자금 특검팀이 고가미술품 <행복한 눈물>의 검증을 의뢰한 이도 그다. 또 2007년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사상 최고가(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를 둘러싼 진위 공방이 최근 ‘법원’ 검증이라는 제3라운드에 접어든 데도 그는 중심에 서 있다.

문제의 <빨래터>에 대한 위작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2008년 1월 미술 격주간지 <아트레이드>의 류병학 편집주간. 하지만 최 소장의 협력이 없다면 류 주간으로서는 더 외롭고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 소장은 서울옥션과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가 문제의 작품이 진품임을 입증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마다 조목조목 논리적·과학적으로 반박해왔다. 그는 ‘스터디빨래터(www.studypaletter. com)’ 사이트까지 만들어 고군분투 중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싸움에 끼어든 것일까.

“이번 사건 박수근 살리는 계기될 것”
“솔직히 오래전부터 박수근 선생의 가짜 그림이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의 손을 통해 진품으로 둔갑해 유통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누구나 알 만한 전문가에 의해 가짜가 도록에 실리는 일도 있고요. 이는 박수근 선생은 물론 우리나라 근대미술이 무너지는 일이에요. 언젠가는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친구를 포함해 미술계 인사 여럿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던 차에 <빨래터> 사건이 터진 거예요. 서울옥션이 이 작품을 진품으로 입증하기 위해 <고목과 여인>을 비롯해 9점의 그림을 기준작으로 제시했고, <빨래터> 소장자라는 미국인 존 릭스씨가 1954~56년 서울에 근무하면서 박수근 선생에게 <빨래터> 등 유화 5점을 선물받았다고 했어요. <빨래터>가 위작으로 판정나면, 이 14점의 그림도 재검증해야죠. 저는 이번 사건이 오히려 박수근 선생을 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해요. 물론 <빨래터>가 위작이라는 것을 증명할 확실한 증거도 가지고 있습니다.”

“검찰 개입 수사하면 밝혀질 것”
최 소장은 문제의 <빨래터>는 1995년 이후 그려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진품 <빨래터>는 1950년대 후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박 화백에게 특별히 주문해 당시 한국에서 일한 미국인 의사가 임무를 마친 후 돌아갈 때 선물로 준 작품이다. 이후 이 그림은 오랜 세월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수집한 한국인 아트딜러가 구매, 1991년 한국에 들여왔다. 1995년 박수근 화백 30주기 기념화집을 만들면서 이 작품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최 소장은 “국내 모든 위작은 원본을 베낀 것이기 때문에 서울옥션을 통해 유통된 문제의 <빨래터>도 1995년 진품 공개 이후 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분이 나서길 꺼리셔서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빨래터>를 처음 한국에 들여온 분의 행적은 미술계에선 거의 전설로 통해요. 화랑을 운영했던 분인데 박수근 선생의 진가를 오랜전 간파하고 작품을 수집한 분이죠.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의 2차 특별감정 때 마침 한국에 들어와 계신 그 분을 감정위원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추천이 있었지만 결국 배제했어요. 그 분이 감정에 참여했다면 당시 감정연구소의 진품 판정은 나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문제는 법원이 주도하는 객관적 검증은 누가 할 수 있는지다. 2007년 10월 검찰이 밝힌 희대의 ‘이중섭·박수근 화백 위작 사건’은 2005년 3월 그가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외부 위촉 감정위원으로 위작 판정을 내리면서 불거졌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이중섭 화백의 둘째아들 이태성씨가 그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위작 사건을 맡은 검찰은 전문가를 찾지 못하다가 고소당한 최 소장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이번 사건을 미술계 거물의 의도적 비리 행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번 <빨래터> 위작 논란은 검찰이 개입해 수사를 하면 배후의 실체가 속속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빨래터>가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사정기관은 고소·고발이 없어도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번 사건이 한국 미술계를 정화하는 촉발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에도 미술계에는 끊임없이 위작 시비가 일었지만 대부분 어물쩍 넘어갔고, 그런 일이 쌓이면서 곪아 터진 게 이번 사건이 지닌 의미라는 것이다. 그는 “향후 미술품 위작을 줄이려면 국가가 나서서 감정사 자격증 제도를 마련함은 물론 그에 대한 교육도 해야 하고, 미술사 전공자, 미술평론 전공자, 경험 많은 화상, 과학자 등이 위원회를 구성해 그곳에서 감정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명윤 소장은 누구

[문화]“박수근 가짜그림 유통 오래된 일”

최 소장의 부친은 1940~5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 딱 세 군데 있던 화방 중 두 군데(명동, 종로)를 운영한 고(故) 최영소씨다. 아버지가 화방을 운영한 덕분에 어린 시절 그의 방은 외제 물감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모든 물감의 미묘한 색상차를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당연히 웬만한 아버지 심부름은 도맡아야 했다. 아버지는 그를 미술재료상으로 키우기로 작정했다. 나무를 다듬어 액자를 만드는 밑바닥 일부터 가르쳤다.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후엔 화방에 문제가 생겨 들어온 그림을 고치는 일도 있다. 하지만 화가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두식, 한만영, 한기주 등 대학 동기의 그림 실력을 지켜보며 자신이 화가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보존과학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를 마치고 1984년 프랑스 8대학 조형미술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랄페르기술연구소에서 복원기술을, 고등장식미술학교인 아르데코에서 벽화기술을 배웠다. 86년 귀국해 한서대에 예술품보존관리연구소를 만들었고 2005년부터 명지대 대학원 문화재보존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그림을 의뢰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사진과 분석기기를 통해 상태를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존과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미술품 분석과 감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가 국제미술과학연구소를 만든 것은 1년 전. 근·현대에 사용된 미술 재료를 과학기술사적으로 정립하는 게 이 연구소의 목적이다. 여기엔 박수근·이중섭 화백 등 근·현대의 대표적 화가들이 사용한 재료에 대한 정립도 포함된다. 이미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물감은 원소분석 연구를 통해 자료화했다. 시료도 만들어뒀다. 이 같은 연구소의 업적은 향후 근·현대 미술품 보존과 복원, 분석과 감정에 유효하게 활용될 것이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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