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립현대미술관이 ‘실험용 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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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형 책임운영기관’제도 도입 1년 반 만에 또 ‘특별행정법인’ 검토

많은 예술인이 행정안전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법인화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많은 예술인이 행정안전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법인화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개혁! 혁신! 도대체 국민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어언 15년 동안 개혁을 단행했는데도 아직 개혁할 것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시대가 급변하는 탓에 지속적 개혁이 필요하겠지만 그간 개혁이 소리만 요란했지 피부에 와 닿지 않은 것은 개혁의 대상이어야 할 공무원들에게 그 칼을 쥐어 주었기 때문이다. 자기 살은 아파서 도려내지 못하면서 실적은 올려야 하는 그들은 ‘남 잡는 일’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만만하게 개혁의 사냥감이 된 것은 문화예술 분야다. 대한민국 공연문화와 전통문화의 ‘명예의 전당’이어야 할 국립극장은 책임운영기관이 되어 본래의 목적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책임운영기관으로 부적절하다는 미술계 의견에 따라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으로 개혁(?)했다. 전문기관인 미술관이 일개 행정기관이 되었다. 이렇게 본질이 훼손되어도 개혁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자체를 개혁해야 할 시기다.

미술관은 박물관의 하나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성과 비영리라는 성격이다. 개혁, 혁신에 이 원칙이 훼손될 수 없다. 미술관은 공공의 영역이다. 따라서 설립과 운영은 전적으로 국가의 몫이며 국립이 원칙이다. 국가가 국민의 안위를 위해 국방과 치안에 최선을 다해야 하듯 문화 주권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문화예술기관은 국방만큼 중요하다. 만일 실감나지 않는다면 일제 강점기에 그들이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 상기해 볼 일이다. 그런데 개혁한 지 1년 반 만에 이번에는 미술관의 특별행정법인화를 검토한단다. 그런데 이미 당시 책임운영기관, 특별행정법인, 특수법인화가 모두 거론되었다. 더욱이 순서대로 적용시켜보겠단다. 그럼 최선의 ‘특수법인화’ 제도는 다음 개혁 실적을 위해 유보한단 말인가. 개혁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희생이 따르니만큼 한 번 하면 10년, 100년 갈 제도를 찾아야 한다.

문화예술 개혁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만약 개혁을 또 해야 한다면 실패한 독립행정기관을 검토할 것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나 도입한 비영리 법인으로 민간화하는 것을 생각해볼 일이다. 하지만 기부금에 인색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미미한 상황을 고려해 한국에 맞는 옷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안은 공공재인 문화예술기관을 특수법인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와 개인이 출자이사회를 구성하여 최고 의결기관이자 심의기구가 된다. 유의할 것은 여타의 특수법인처럼 지휘 감독권을 주무부서의 특별관리 아래 둘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출자한 주주들과 매년 기부금을 내는 개인이나 기업인으로 이사회를 구성해서 여타의 특별법인을 관장하는 주무기관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이사회는 관장의 선임과 해촉권을 가지며 관장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형식이다.

아무튼 개혁을 위해 우선 할 일은 책임운영기관에 대한 평가와 분석 그리고 무리한 이 제도를 개혁적이라고 도입했던 담당자의 문책 이후에나 검토해야 할 것이다. 1차 수술이 잘못되었다면 수술을 담당한 의사를 징계한 후 다른 의사가 집도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2차 수술도 같은 의사가 담당한데서야 말이 되는가. 성격과 기능이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분리해서 다루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문화예술에 일자무식인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문화예술기관을 제물로 삼아 자신들의 개혁 실적만 달성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문화예술기관의 개혁을 전문인들에게 위임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준모<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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