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립싱크와 라이브 논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장르의 편중이나 출연과 관련된 여러 잡음 등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 방송이 대중음악에 끼치는 폐해는 심각하다. 물론 방송사에는 씨도 안 먹힐 주장이지만.
방송이 대중음악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덕분에, 우리나라는 ‘TOP10’에 드는 가수들을 매주 ‘모듬’으로 내보낼 수 있는, 국제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능력(?)있는 방송국을 세 개나 가지게 되었다. 좋은 음악이 방송에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에 소개된 음악이 좋은 음악이 되는 셈이다.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그룹 ‘Ex’와 보컬 ‘이상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채 음반작업도 끝나지 않은 이 그룹이 온갖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을 견인하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위기의 방송사를 구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이리저리 노출된다면, 신선함과 재기발랄함, 그리고 가능성은 셋업(setup)되기도 전에 김이 빠져버릴 것이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청년문화의 상징’인 대학가요제에 이들이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면, 그래서 방송사가 이 전도유망한 그룹에 애정을 갖고 지원해줄 요량이라면, 지금은 좀 놓아두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철저하게 기획되고 준비된 가수들도 3개월만 활동하면 밑천이 떨어지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이들이 좀더 롱런할 수 있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면 놓아주어야 한다.
<탁현민>
※수년간 라이브콘서트 기획과 연출을 담당하고 있는 탁현민은 ‘뚜껑열리는 라이브콘서트 만들기’(나무와 숲)의 저자이며 현재 한국공연예술원에서 대중음악 연출 강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