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BOOK]기지촌 여성들 ‘세상 밖으로’](https://images.khan.co.kr/nm/631/d3-1.jpg)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그는 초등학교 때 친척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한번 몸이 ‘훼손’되면 시집을 못 간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 더욱이 어린 나이에, 아는 사람에게 당한 성폭행이 여인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가 되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여인은 자학했습니다. 그러나 홀어머니와 자신의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별다른 수단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라남도 끝자락인 여수에서 서울로 갔습니다. 여자 몸으로 구두닦이, 책 외판원 등을 전전했지만 신통치 않았습니다.
1960년대 초반 서울에는 ‘부녀보호소’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로 매춘부들을 모아놓고 미용기술 같은 것을 가르치던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보니 그곳은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기보다는 수용소에 가까웠습니다.
그곳을 나와 갈 곳은 이제 동두천의 기지촌밖에 없었습니다. 동두천을 시작으로 송탄의 기지촌, 군산의 ‘아메리카 타운’ 등을 전전했습니다.
기지촌 생활에 빠져든 여인에게 “리어카라도 끌지 그랬냐?”는 동창의 말은 한가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BOOK]기지촌 여성들 ‘세상 밖으로’](https://images.khan.co.kr/nm/631/d3-3.jpg)
‘매춘’(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을 그만두고 여인은 신학공부를 시작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남은 생을 바치려 합니다.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쉼터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열심인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지촌 환경을 더 살 만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기지촌에 뿌리내린 여자들, 혼혈아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구제하는 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성심성의껏 일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합니다. 그 큰 목소리로 기지촌 여성들, 혼혈아들, 자기 자신을 위해 악을 씁니다.
그의 이름은 김연자입니다. 환갑을 넘긴 여인이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책을 냈습니다. 이 책에서 기지촌의 삶과 매매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길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말하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아픔을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바깥세상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바깥세상과 만나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습니다. 끝내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남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 여인을 만나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20세기 미술 한눈에 훑어보기
최초의 현대 화가들
현대 미술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저것도 그림이야?” “저것도 예술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오래 전의 그림과 조각처럼 보는 순간부터 이해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이 흔치 않다.
![[BOOK]기지촌 여성들 ‘세상 밖으로’](https://images.khan.co.kr/nm/631/d3-2.jpg)
여기 대표적인 현대 화가 12명이 있다. 독일 표현주의의 대가인 에밀 놀데, 20세기 조각의 선구자이자 “조각가들은 절대진리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미래파 조각 선언’을 한 움베르토 보초니, 형이상학적 회화의 대가 조르조 데 키리코,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
저자가 현대 화가 12명의 맨 앞자리에 폴 세잔을 두었다는 점은 특이하다. 20세기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19세기 화가를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세잔을 “새로운 미술을 연 최초의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잔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오늘날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다.
이밖에 스스로 “나에게 계시는 항상 동방에서 찾아온다”고 말할 정도로 동방의 평면적 회화에 큰 영향을 받은 ‘야수파’의 거두 앙리 마티스(야수파의 핵심이 바로 평면적 회화다), 추상조각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 ‘본질’을 포착하려 애쓴 콘스탄틴 브란쿠시(저자는 그를 ‘철저한 사실주의자’로 봤다) 등 저자는 20세기의 대표적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것들을 알고 나면 현대 미술의 윤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